한국 뮤지션의 음악에 대해 말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내던 이들이 대부분이고, 아직 만나서 통성명은 하지 않은 사이라고 해도 한 다리 건너고 나면 이리저리 얽혀있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케이스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재즈 피아니스트 이지영 님은 내가 25년 넘게 주인마님으로 모시는 중이니, 감히 가타부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공연과 음반을 함께했다. 그리고 두 사이드맨, 구본암과 임주찬 역시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이자 동료인 연주자들이다.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무척 좋아하는 후배들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젠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주인마님께서 이 음반을 녹음하고는 내게 믹스를 맡겼었다. 내 주업은 재즈 뮤지션이고, 가끔씩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음반을 믹스하기도 하는, 하잘것없는 아마추어 믹싱 엔지니어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원하는 바를 의사소통하기는 상대적으로 쉽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낯선 엔지니어와 의사소통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니면 그저 원가 절감이 최우선이었을 수도. 누가 뭐래도 나는 취미 수준을 조금 넘는 수준의 믹싱 실력을 가졌으니까, 용돈 조금 쥐어주고는 '적당히 잘해봐'하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트리오니까 단 세 명이다. 나는 셋이 대등한 관계라는 걸 믹스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한국의 믹싱에서 내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건, 메인 아티스트(대체로 보컬)를 너무 강조하고 다른 악기의 소리를 너무 눌러 놓는 것에 있었다. 연주 음악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저 멀리 배경으로 밀어놓고 나면 뭘 듣겠다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진 지는 오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드럼과 베이스를 전면에 끌어놓는 게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여러 엔지니어들과 협업한 결과였다. 아쉬움이 반복해서 쌓이면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그럴 바에는 내 손으로 하고 말지 하는 태도가 생긴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밸런스는 머릿속에 있지만, 그걸 구현해 낼 만큼의 기술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이 나의 문제였다. 원하는 밸런스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해 보다가 '이 정도면 not bad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멈췄던 기억이 난다. 그 때문일까, Not too bad이다, 지금 들어봐도. 이건 좀 자랑스러운데, 하는 선까지 가 닿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원했던 그림이 있는데, 그건 얼마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면에서는 턱없이 모자란 느낌이니 제아무리 관대하게 봐준다고 해도 not bad 정도이다.
다음 달에 이 곡을 연주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제는 아마추어 믹싱 엔지니어가 아닌 사이드맨으로 이 곡을 접하게 되었다. 악보를 받아 들고 곡을 익히다 보니 작편곡자로서 욕심을 많이 낸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성이건 리듬이건, 만만치 않은 음악적인 장치가 꽤 많이 새겨져 있다. 악보는 연주자에게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하지만, 듣는 이들이 들로 하여금 창작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이것 역시 상상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것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 공유해 보기로 한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건데, 연주자로서 이 음악을 듣는 것과 믹싱 엔지니어로 듣는 것, 그리고 감상자로서 듣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감상자로 들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수많은 월드 클래스의 음반과 비교하며 듣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나도 그랬다. 좋은 면이 많지만 아쉬운 점도 들리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이 곡을 연주한다고 생각하고 연습을 시작하니, 이 세 명의 연주자가 얼마나 뛰어난 연주자인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들의 녹음한 음원과 몇몇 라이브 영상을 통해 이 곡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들은 한 두 페이지에 적힌 악보를 통해 이 음악이 펼쳐질 세계를 상상해 냈기 때문이다. 그 창작의 과정은 동참해 본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다. 하지만 듣는 이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빡센 음악을 했어, 이 정도면 훌륭한 음악이야' 하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현대의 재즈가 품고 있는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려운 구조를 능숙하게 연주해 내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음악처럼 들리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 숨겨진 로직을 다 파악해 내서 '오우 쓋, 얘네들 보통이 아닌데.'하고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 그러나 생각보다 그 숫자는 적고 감동하는 이들은 그보다도 적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시대와 불화하는 음악이라고 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