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언젠가는 한두 번쯤 있을 법 한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파릇하다 못해 눈이 부시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니. 젊은이들은 해마다 용케도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진절머리를 내며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더 이상은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하는 이들이 나오곤 했다. 그러니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올리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아 사람들 앞에서 한 말씀 해주십사 하고 청할 법도 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결혼식의 주례 이야기다.
나는 주례를 맡기에는 조금 젊었다. 이제 마흔여덟, 무섭게도 몰아쳐가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보면 직장이건 뭐건 이곳 저곳에서 밀려나고도 남는 나이다. 하지만 주례만큼은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헛된 사랑의 꿈 따위는 다 잊어 버린지 오래며, 그 텅 비어버린 가슴에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다 채워 넣은 때가 되어야 신랑 신부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 낡은 주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조금 놀란 이유는 내가 비록 젊지 않으나 아직 충분히 늙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시간강사였다. 십칠 년 째.
다들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라도 해야 하는 듯이, 주례만큼은 양가의 부모들이 끈을 댈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맡기곤 했다. 나도 적지 않은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전직 국무총리의 주례사를 들은 적도 있다. 그 날이 누구의 결혼식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엄청난 화환이 호텔을 가득 채웠던 광경은 선명하게 남았다. 늘 그런 식이다. 누가 주례를 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주례사는 짧을수록 좋다. 그게 대한민국다운 것이다.
그러니 오늘 유석이와 선혜가 찾아와 주례를 부탁하자 당혹스러운 기분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얘네들 학교 다닐 때도 철이 없더니 아직까지 그대로네 싶은 기분이었다.
“선생님, 저희 둘 선생님 수업시간에 같은 조가 되어 만났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저희 둘 맺어주신거나 다름없어요. 선생님께서 축하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야, 너희들 결혼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축하한다, 축하해.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결혼하는구나?”
기어이 결혼을 하는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거구나. 그래, 그 나이에는 그렇게 보이는 법이지.
“근데, 아 글쎄, 나 같은 사람이 주례라니 말도 안되지. 원래 주례는....... 나는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너희 부모님들 앞에 서야 하는 건데 좀 더 어른을 모시는 게 어떻겠니?”
원래 주례는 그럴듯한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하는 거야, 그 말은 속으로 삼켜버렸다.
“교수님, 저희가 지금까지 만나온 분들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분이 교수님이에요. 그리고 저희 결혼식, 그렇게 딱딱하게 격식 차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형편도 그렇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편하고 기쁘게 서로를 축하하고 기념하고, 그런 결혼식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서 본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 교수님만큼 모범적으로 가정과 음악활동 양쪽을 잘 지켜내는 분도 없고요. 이렇게 마주 보고 말씀드리기는 좀 쑥스럽긴 한데, 교수님이 제 롤 모델이시거든요.”
유석이는 늘 그랬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졸업하고 나서 드문드문 연락을 할 때에도 음악을 한답시고 인생을 패대기치는 선배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가정을 지키고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나를 꼭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게 싫었지만 새삼스레 시간 강사를 교수라고 부르면 직업을 사칭하는 거야, 이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결벽이라고 해도 좋다.
롤 모델이라....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많이 들려오는 단어였다. 멘토니 롤 모델이니 하는 말들. 그들은 모른다. 행복해 보이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는 나의 가정, 그 관계 안쪽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갑자기 유석이와 선혜를 앞에 두고 이 모든 것들을 쏟아놓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결혼 생활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 참을 수 없이 미워할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라고. 부부가 서로 한 몸이 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고, 내 생각과 마음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야 한 몸인 거라고.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이 된다는 건 가능하지 않고, 그렇다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발을 가진 장애를 떠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또 모르지만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용케도 참아냈다. 그리고 늦은 밤, 식탁에 앉아 주례사를 쓰기 시작했다.
‘.... 연애의 감정이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죠. 부부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지금껏 몇몇의 사람들과 연애 감정을 느껴봤을 테죠. 그 경험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실 것이고, 여기 제 앞에 선 신랑과 신부도 잘 알 겁니다. 하지만 그 특별한 감정도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 이후로 겪게 되는 인생의 경험들은 오직 지금 옆에 서 있는 이 사람과만 나누게 됩니다. 그것을 약속하는 것이 결혼 서약입니다. 허니문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그 환상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면 함께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이 남아 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며 지칠 것입니다. 벅찬 현실에 서로를 할퀴고, 권태기가 찾아오고, 그걸 극복하려 노력하다 어느새 한결 지치고 늙어버린 상대방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 그것을 약속하는 게 결혼입니다. 이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허전한 가족이 되기를 허락하는 것, 그게 결혼입니다.....’
그쯤 하다가 조용히 노트북 컴퓨터를 덮었다. 머리를 벅벅 긁고는 부엌 찬장 윗칸을 열어 엄지손톱만큼 남아 바닥에 찰랑찰랑하는 글렌리벳을 꺼냈다. 아무래도 내게는 너무 이른 주례사였다.
다른 건 오해하셔도 좋은데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마흔여덟이 아닙니다, 시간강사인건 맞지만. 그저 short short story, 짧은 소설 이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