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해서는 쓰지 않으리라, 이렇게 마음먹었었다. 죽음을 말하기만 해도 읽는 이들의 마음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진다. 무게가 제법 있다. 그 누구에게도 죽음이란 쉽지 않다. 다들 지금껏 살아오며 몇 번씩이나 가깝거나 먼 이의 죽음을 경험했고, 작가가 죽음을 언급하기만 해도 읽는 이들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그 경험이 되살아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죽음을 말하는 것이 때때로 비열하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죽어 나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읽는 사람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느껴질 때 말이다.
카뮈는 이렇게 소설을 시작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 두 문장을 읽었을 때,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게 되었다. 세상의 그 누가 이 문장을 읽고 마음에 동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 다음으로 무거운 죽음은 아마도 엄마의 죽음이리라. 자기를 이 세상으로 밀어내 놓고는 수십 년이 지나 먼저 불확실성의 세계로 도망가는 엄마. 그 죽음이 오늘인지 어제인지도 모르는 ‘나’. 그런 ‘나’를 독자 앞에 툭 던져놓는 작가에게 옆구리를 예리한 칼로 푹 하고 찔린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선제공격을 당하고 나면 읽는 이는 그저 작가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비열한 자식 같으니라고, 하며 카뮈에게 낮은 소리로 욕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그저 뛰어난 작가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비열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치게 강한 상대였던 것이다. 그저 가볍게 한대 날린 것이 결정타가 돼버리는 그런 상대. 뭐 그런 자라면 죽음을 말해도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다짐을 슬쩍 고쳐보았다. 최소한 나는 죽음을 이용하지는 않으리라.
며칠 전 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운동을 하겠다고 집을 나섰으니 아홉 시 반 혹은 열 시쯤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바람은 좀 더 선선하게 느껴질지라도 옷을 갈아입고 흰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나설 생각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나의 의지는 피로가 뒤덮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기 전이라야 무언가 힘을 쓸 수 있다. 몸은 이미 관성의 법칙-가만히 있는 물체는 계속 가만히 있으려 하는 성질을 지닌다는-에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몸이 훨씬 더 정직하다. 자연의 순리에 맞는 것이다.
일단 집을 나서 걷기 시작하면 할 만하다. 그저 걸으면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건 잡생각에 빠져들건 음악을 듣건 상관없다. 걸음이 느려지지 않도록 가끔 신경을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걷는 것 이외의 다른 운동을 좀처럼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리라. 주위를 둘러보며 역기를 들어 올릴 수는 없다는 것.
걷기 좋은 장소가 있다. 내게는 양재천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 서야 하는 신호등이 없어야 걸을 만하다. 집에서 이십오 분쯤 걸어서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는 그곳에 도착한다. 그리 넓지 않은 길인데도 이미 수많은 사람이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가끔 데이트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은 아주 느리게 걷는다.
그날 밤도 양재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을 나서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이렇게 방향을 틀면 큰 길을 만나게 된다.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서 걸으면 이내 사거리를 만난다. 예의 그 신호등이 내게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다. 멈춰 서 있자니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에 왼손을 짚고 허리를 구십 도에 가깝게 숙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우웨에에에엑 하며 토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양이었다. 그렇게 두세 차례에 걸쳐 시큼한 냄새가 날 토사물을 신호등 옆에 쏟아놓고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쭈그리고 앉아버렸다. 두어 명, 나와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약간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기껏해야 밤 열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주변에 술집조차 보이지 않는 그저 큰 사거리의 건널목 앞이라서 그랬다.
이내 초록색으로 보행신호가 바뀌었다. 신호등은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나는 얼굴이나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나쳐가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여학생은 그런 시선 따위를 느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부담 없이 쭉 위아래로 훑어볼 수 있었다. 길 바로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고개를 파묻고 있어서 단발로 자른 머리가 얼굴을 다 뒤덮고 있었다. 체구는 자그마했다. 아마도 키는 백육십이 안될 것 같았다.
길을 다 건너고 양재천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어떤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다 보았다.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여학생은 쭈그리고 있다. 그새 잠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이 험하긴 해도, 큰 사거리 옆이다. 가로등도 밝고 지나는 사람도 꽤 있다. 여학생의 등 뒤로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등산용품 상점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시간이 이르다. 저렇게 삼십 분쯤 잠에 빠져들었다가 제 발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아탈 것이다. 몸이 알코올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왠지 이대로 지나쳐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마음 저편에 있었다. 급하게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시간.
그 자리에 서서, 반대편의 여학생을 지켜보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이제 막 길을 건넜으니 나머지 세 방향의 신호등이 제각각 보행신호를 켰다가 꺼야 할 판이었다. 그 와중에 여학생은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길가에 다시 한 번 토했다. 아마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사람일 것이다. 무언가에 화가 나서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퍼부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기를 뻥하니 차 버린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그런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치미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이유이건 결국은 죄 없는 자기 몸뚱어리에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건너 그 여학생 곁으로 갔다. 하지만 쓸데없는 오지랖이란 생각에 선뜻 말을 걸기가 뭐했다. 그렇게 삼십 초 정도 우물쭈물하다가 어깨를 톡톡, 하고 건드려 보았다. 최대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조금 움찔하는 듯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한 번 더, 약간 힘을 더 주어서 노크하듯이 어깨를 두드려보았다, 톡톡톡. 그러자 갑자기 고개를 홱 하고 들어 올렸다.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었다. 머리카락이 막 달라붙은 얼굴에 화장기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도 술집 화장실에서 몇 차례 얼굴을 씻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을 것이다.
저, 지나가던 아저씨인데, 길가에서 이러면 위험할 것 같아서. 왜 말끝을 툭 자르고 반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앳된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말을 붙였다. 저기, 집이나 친구에게 전화해줄까요? 여기 이러고 있으니까 걱정이 좀 되어서.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했다. 네에, 고맙습니다. 근데 저 그냥 내버려두세요. 괜찮습니다.
그런 말투가 있다. 지극히 공손한데 억양만으로 모든 의미를 담아버리는 그런. 그녀의 말투는 정확히 이런 말들을 했다. 난 지금 너를 상대하기 싫다,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버겁고 결국 이 문제는 내가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당신은 내 인생의 저편 끄트머리에도 걸쳐져 있지 않은 지극한 타인이다, 지금 당신이 나를 도와줄 방법이 있다면 나를 외면해서 나의 가장 초라한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자니 뒤편의 등산용품 가게에서 아주머니 한 명이 나왔다. 아는 사이예요? 아니요, 지나가다가 걱정이 돼서요. 그냥 놔두세요, 저래도 다 제정신들은 가지고 있다니깐, 괜히 잘못했다가는 아저씨만 성추행이니 뭐니 해서 엮일 수도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래도 걱정이 돼서. 여기 사거리라 씨씨티비도 있고 괜찮아요, 저러다 가겠지. 그렇게 말을 마치더니 아주머니는 가게로 돌아가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아마 밤 열 시까지 영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무안해져서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려 길을 건넜다. 이제 나도 내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신호등은 때가 되면 신호를 바꾸고, 나는 길을 걷는다는 식으로.
이틀 뒤의 아침이었다. 유난히 커피가 당기는 아침. 집에서 적당히 내려 마시는 커피로는 만족이 되지 않을 느낌이 온다. 그럴 바에는 슬슬 걸어나가 커피를 사오는 것이 낫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는 에스프레소 샷을 하나 추가해야 카페인양이 그럴듯해진다. 정신이 좀 돌아올 것이다. 적당한 반바지를 입고 한 손에 지갑과 휴대전화를 든 채 길을 나섰다. 이내 횡단보도의 신호가 깜빡이며 숫자가 6, 5, 4, 3, 2, 1, 이렇게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보행신호를 놓치지 않겠다고 멀리서부터 뛰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다. 신호등 아래 멈춰 서자 길바닥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 바닥 위에 은색 스프레이 락카로 외형을 따라 그려놓은, 타원을 이리저리 또 찌그러뜨린 듯한 모양. 누군가의 의미 없는 죽음의 흔적. 신호등 옆 이 미터쯤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호등의 기둥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토록 토악질을 해대었던 그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또 한편으로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그냥 앉아서 쉬는 거지 분명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거라고. 그녀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고. 설령 그녀라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가던 길을 되돌려 깨워서 말을 걸고 도움을 주려 했었다고. 그걸 거부하고 무안을 준 건 그녀였고, 누가 뭐래도 사고가 날 만큼 몸을 못 가눌 상황은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