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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

by 최은창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난감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예기치 않게 아홉 시쯤 잠이 드는 것이나, 그러다가 깊은 밤, 두 시 십오 분에 깨어나는 것 말이다. 지난 하루에는 한 끼 밖에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고속도로 휴게소의 라면이었다. 일단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진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나면 잠은 달아나버리고 머리는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벌써 네댓 시간쯤 자고 난 다음이니 당연하다.


그는 밀린 허기와 쓴 입맛만이라도 잠 재우기로 했다. 이럴 땐 제법 달콤한 것이 필요하다. 좁은 부엌을 돌아봐도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유기농 식빵과 유기농 딸기잼, 그리고 버터. 새벽 두 시에 먹어대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충분히 건강을 해칠 만 하다. 내 몸을 그렇게까지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래도 유기농이니 좀 낫겠지, 하는 생각이 필요한 순간이다.


아마도 이대로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새벽이 되기까지 몇 시간 동안은 제법 주변이 조용해진다. 안 들리던 주변의 소리가 들려온다. 형광등은 켜 놓기만 해도 찌이 하는 소리가 나고, 보일러도 우웅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에는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제법 크게 들린다. BPM 60의 발라드를 연습하기에 제격이다. 혹은 두배로, 네 배로 생각해서 BPM 120의 미디엄 스윙이나 BPM 240의 미디엄 엎에서 패스트 사이의 애매한 템포를 연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악기 소리를 내어서는 안된다. 오로지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두시 십오 분부터 새벽까지의 적막한 공간과 악기의 소리. 그의 인생에서는 좀체 잘 섞여들지 않는 두 가지의 조합이다.


창밖이 제법 밝아질 때 쯤이면 졸음이 몰려 올 것이다. 이미 다섯 시간 정도 잔 셈이니 그 다음의 하루를 버틸 만도 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꼭 자야 하는 시간대가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그 수면 시간대를 지켜주지 않으면 신체와 두뇌의 성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 해가 뜨고 나서도 한참 뒤인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기란 쉽지 않으니, 결국 피곤한 다음 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피곤한 하루를 보상해 줄 만큼 늦은 밤의 시간이 의미 있게 쓰여져야 한다.


하지만 제약이 많다. 누구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고, 큰 소리를 내어도 안된다. 고작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거나 책장을 넘기는 것 정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미 잠은 훨씬 더 멀리 달아났고 커피가 간절히 마시고 싶어 졌다. 하지만 드르르르륵, 하고 원두를 갈 수도 없다. 며칠 전, 커피는 갈아 드릴까요? 하고 묻던 매장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어느 날 등 뒤에서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한 번쯤 스윽, 돌아볼 게 될 만큼 그 목소리는 그의 머릿속에 새겨져 버렸다. 물론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난감한 밤이다.


삼십 분쯤 지나 그는 원두에 끓는 물을 부어보았다.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말하자면, (갈지 않은) 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