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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Dec 07. 2016

고든 램지



고든 램지, 티브이를 보지 않고 살아간 지 십이 년째인 내 눈에도 익숙한 얼굴인 것으로 미루어보면 대단히 유명한 셰프임이 분명하다. 나는 인생은 다이어트와 요요의 연속이라고 늘 말하곤 하는데, 다이어트 시즌에는 아무래도 평소와는 달리 먹는 음식의 종류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야 먹는 양을 줄이지 않고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아침이면 자연스레 먹던 빵 종류를 조금 줄이고는 계란을 부친다. 사과는 껍질째 먹는 게 더 낫대, 하면서 깎는 귀찮음을 피한다. 점심때면 쌀 대신 고기를 먹는 게 살을 빼는데 도움이 되지, 하면서 두툼한 등심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구울 채비를 한다.


그때 필요한 이름이 바로 고든 램지였다. 스테이크를 먹어는 봤으나 어떻게 굽는지 알 바가 없었다. 그저 중얼거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디엄 레어로 주세요. 하지만 매번 스테이크 하우스에 갈 시간도 없고, 돈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결론은 코스트코에서 등심을 사 오는 것이 된다. 하지만 한 팩에 세 덩어리가 들어있는 등심은 집에서 보면 훨씬 거대해 보여서 살짝 겁이 난다. 저놈들을 적당히라도 구워내지 않으면 먹어치우는 것이 고역이겠구나 하고. 이쯤 되면 다이어트를 위해 고기를 굽는다던 가식도 멀리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다. 나는 오늘 저 등심 한 덩어리를 제대로 구워내고 말 테다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생각나는 셰프의 이름을 하나 떠올려서 구글에 도움을 요청한다. gordon ramsay steak라고 검색어를 집어 넣고 톡 하니 엔터를 두드리면 예상대로 동영상이 뜬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제법 맛있게 구워진 고기와 함께 엄청난 양의 버터를 먹게 된다.


그러다가 이 동영상을 보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동영상을 먼저 보고는 고든 램지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지 흐릿하다. 이 동영상을 본 지 꽤 되었다는 것만 분명하다. 페이스북이며 트위터-아직도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중 하나이다-에서 몇 번이고 돌고 돌았던 동영상이다. 한 줄 요약을 하자면 Masterchef US라는 티브이 쇼에 크리스틴 하라는 베트남계 시각 장애인 요리사가 나와 애플파이를 굽는 에피소드이다. 파이를 굽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던 크리스틴이 자신이 구워낸 애플파이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는 채 고든 램지의 평을 듣기 위해 그의 앞에 서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든은 제법 터프한 욕쟁이인 모양이다.


고든은 크리스틴의 애플파이를 크리스틴에게 설명해준다. 아주 멋지게 구워졌다고 하나하나 예를 들어 말한다. 가장자리는 바삭해 보이는 다크 브라운 색깔로 구워졌으며, 위에 뿌린 설탕은 녹아 반짝이고 있어서 프랭크(마스터셰프의 다른 참가자)의 것만큼 맛있어 보인다고. 그러면서 크리스틴의 눈을 보며 덧붙인다. So stop doubting yourself, be bold,라고. 크리스틴은 그 시선을 느꼈을까.


고든은 파이를 높이 들어 올려 확인하고는 바닥까지 페이스트리가 잘 익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프를 들어 파이의 표면을 긁는다. 어떻게 들리냐고 묻는다. 크리스틴은 Sounds good and crusty, 바삭하고 맛있을 것 같은 소리가 난다고 말한다. 고든은 그에 Good and crusty. So stop feeling upset with yourself, okay? 라고 한다. 한 조각을 잘라 크리스틴의 눈 앞에 들어 올린다. 조각이 부서져 나가지 않고 제 모양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입 맛을 보고는 말한다, And the flavor, the flavor is amazing, 이라고.


방송을 다 믿기에는 세상을 너무 많이 살아낸 탓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떠오른다. 시각장애인 요리사라, 워낙에 드라마가 되기 좋은 조건이니 웬만하면 쇼를 위해 끝까지 끌고 가겠지 하는 식의 가정 말이다. 시청률을 위해 크리스틴보다 나은 경쟁자가 있을까, 그렇다면 웬만큼 비슷한 실력이면 크리스틴은 계속 최종 승부를 향해 올라가겠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의심을 품으면서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분 이십 초에 불과한 이 영상을 통해 나는 고든 램지의 팬이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지독히 프로페셔널하려고 하다 보면 나이스 가이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성격 급하게 욕을 퍼부어대는 고든의 겉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크리스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하는 고든을 보았다. 그 모습은 타고난 방송인의 기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쇼를 위한 가식인지 그 사람 자체인지 알 수 없다면 나는 기꺼이 속는 편을 택하겠다. 고든은 그때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고.   






요즘 내게 가장 큰 인스피레이션을 준 사람이라면 단연 고든 램지입니다. 이것 말고도 고든 램지가 나온 몇 개의 동영상을 찾아보았는데 그때마다 그 차가워 보이는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굳이 말하자면 휴머니티라고 해야 할 그런 정서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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