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랑 백 년 동안 같이 살아야 해, 알았지? 딸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난 뒤 언제부터 매일 밤 침대에서 몇 번이고 확인하는 물음이다. 아빠, 난 아빠랑 엄마 딸로 태어난 게 너무너무 좋은데, 안 좋은 점도 있긴 하네. 그게 뭔데? 아빠 엄마 닮아서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거. 아빠가 그랬잖아, 아빠랑 엄마는 마음이 단단하지 않다고. 난 영화 보는 게 싫어, 무서워. 그래, 아빠 닮아서 그래.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도 가지고 있고 안 좋은 점도 가지고 있는 거야. 아빠 좋은 점만 물려줬으면 좋겠는데 아빠 안 좋은 것도 물려줘서 미안해. 그러면 딸은 괜찮아, 하고 말하는 듯이 내 목에 팔을 감는다. 그리고 이마에 쪽, 하고 뽀뽀를 하고 말한다. 난 아빠하고 같이 오오오래오래 살 거야.
또 묻는다. 아빠는 할머니 돌아갈 때 어땠어? 친할머니? 응. 내가 너만 했을 때였어. 초등학교 이 학년 마치는 봄방학 날이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눈이 내렸거든. 삼 학년이었나? 하여간. 너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시간을 같이 많이 보냈잖아? 응, 할머니랑 잠도 같이 많이 자고. 근데 아빠는 그렇지 않았어. 일 년에 한두 번 봤나? 아빠는 서울에 살고 할머니는 대구에 계시고. 그래서 할머니를 잘 몰랐어.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많이 슬프지는 않았는데, 근데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가 우시는 거야. 헐, 할아버지가 우셨다고? 응, 아빠가 봤어. 그게 기억이 나.
잠시 하관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손에 끼어져 있는 흰 장갑, 삽 몇 자루와 깊은 구덩이. 그리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해주라고 내게 건넨 손수건. 그때 흰 장갑으로 눈을 훔치던 아버지를 보았다.
음, 할아버지한테는 아빠의 할머니가 엄마잖아? 아빠, 뭐라구? 헷갈려. 그치, 자 봐봐. 여기 네가 있고 그다음에 엄마 아빠, 그다음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잖아. 너, 엄마, 아빠, 하며 침대에 누운 채로 허공에 점을 세 개 찍는다. 고작 점 세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