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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Dec 13. 2016

김윤아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을 들어 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는 서로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지도 모른다. 굳이 물어보면 대화가 엉망이 되어버릴 수 있다. 김 과장, 자네의 꿈은 뭔가? 아니 이사님,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자네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을 게 아닌가. 이사님, 저는 그저 회사 내에서 언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어른들의 세계란 늘 이모양이다.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들끼리는 묻지 않는다. 이야기를 꺼내어 서로 난처해지기만 할 것이 뻔하다면 그런 상황을 피해가며 대화하는 요령쯤은 다들 주머니에 한가득 지니고 있다. 그러니 어른 중에서도 중년으로 접어든 내게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 있냐고 묻는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좀처럼.


  그러다 이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녹음을 준비하려고 전달받은 데모를 들었다. 딱히 복잡한 부분도 없고 해서 스튜디오로 가기 전에 두어 번 듣고 가면 충분할 터였다. 조금 더 마음을 쓴다면 오선지를 꺼내 슥슥 코드며 베이스라인을 받아 적으면 될 일이었다. 넉넉하게 잡아도 이삼십 분이면 족하다.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스튜디오에서 서로 의견을 맞춰가면서 녹음하면 된다. 그런데 자꾸 가사가 귀를 끌어당겼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동네를 몇 바퀴나 걸으며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몇 번이고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가 꿈을 말하는 것만으로 나는 서러웠다.


  오랜 시간 동안 꿈은 따스한 위로일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던 탓이리라. 하지만 짐이고 굴레이자 위안이었던 나의 꿈은 종종 차갑고 매서웠으며 고작 가끔씩만 포근하고 따뜻했었다. 지쳐버린 나, 끝없이 반복되는 실망과 좌절, 조그만 위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는 굴레.... 어른이 품고 있는 꿈은 그 모두였다.


  지난 몇 년간은 글을 쓰는 것에 좀 더 집중해서 남은 인생의 한 축을 글쓰기가 담당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랐었다. 음악으로 이루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하지만 최근 일이 년, 지금껏 해오던 일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일을 하게 되면서 그런 꿈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일에 치여 정신도, 신체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 보니 웃으며 작가 지망생입니다, 하고 꺼내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더 현실적으로 꿈을 꾸어야 했다. 그러니 다시 지금껏 해온 음악 안에서 꿈을 꾸어야만 했다. 내가 이뤄낼 수 있는 종류의 꿈을 꾸고 싶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가 되느니 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이 나았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해가며 애써 만족하려 했다. 가끔씩 너무 작아져버린 꿈을 맞닥뜨리면 애처롭게 보이긴 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내게 물어보았다. 지금 너의 꿈은 무엇인가 하고.


  나는 나의 연주에, 가사가 없는 악기의 소리에 막연하면서도 선명한, 실체가 느껴지는 감정을 담는 것을 꿈꾼다. 그 실체는 슬픔이다. 마치 스윙이건 발라드건 한결같은 슬픔이 느껴지는 빌 에반스의 연주처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말하겠지.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죽음으로 단단히 갈라질 수밖에 없다. 헤어짐 뒤의 세계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의 공간이다. 그 세계로 건너갈 때에는 혼자 가야 한다. 가장 두려운 순간에 가장 외로워진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이가 맞이하는 죽음이란 덜 슬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삶이란 그 자체가 외로움이고 슬픔이다. 그렇게 점점 또렷해지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인생은 참으로 슬프구나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소리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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