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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Apr 29. 2016

Wayne Shorter Quartet






  한창 유학 중이던 시절, 미국 땅에서 나는 Wayne Shorter Quartet을 만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2년, 그것도 봄이었다. 그 한 두해 전부터 예상하기 어려웠던 멤버들의 조합으로 공연 일정이 꾸준히 지속되는 듯하더니,  공연 실황이 녹음되어 발매된 Footprints Live!로 많은 재즈 팬들과 재즈 뮤지션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얻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엄청난 밴드라는, 정말 흔치 않은 밴드라는 소문을 몇 번이고 들은 채로 마침내 나는 그들의 연주를 경험하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음악적인 자유로움은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표현의 폭은 끝 간 데 없이 넓었다. 웨인의 곡을 연주하고 있어도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리지 않았고, 즉흥으로 어떤 모티브를  연주하면 이내 완결된 하나의 곡처럼 연주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강력한 무언가를 터뜨리면 그 충격에 관객들은 실제로 함성을 지르고 다 같이 몸을 움찔하는 물결을 그려내었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 역시 서로서로의 연주에 놀라 소리를 지르고 때론 폭소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여타의 재즈 밴드들이 연주하던 모습들을 순식간에 너무나 정형화된 것인 양 느끼게 했다.


  그로부터 약 십 년 뒤, 봄이 시작되려는 무렵에 서울 땅에서 Wayne Shorter Quartet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연은 브라이언 블레이드의 섬세한 드럼 연주로 시작되었다.  한참 뒤, 누구도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다닐로 퍼레즈가 피아노 뚜껑을 쾅하고 내던져 닫아버렸다.  그것으로 한 시간에 가까운 한 호흡의 연주가 끝났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긴 호흡이었다.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무대 위의 그들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내가 지켜본 것은 그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 위에 네 명의 뮤지션들이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 광경이었다. 


  그들은 십 년 전의 그들과 동일하면서도 달랐다. 경계나 제약이 없이 열려있는 가능성을 끝없이 탐구하는 것이 동일했다. 십 년 전에는 마치 재즈 곡 하나하나를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프리 연주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곡을 연주하기도 했었고, 어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발전시켜나가고 그것을 정리하면 하나의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소위 말하는 집단 즉흥 연주라는 점, 그러나 혼란스럽지 않게 하나의 곡처럼 만들어 내는 음악적 역량이 놀라웠다. 그렇기에 듣는 사람들은 조금 아웃하게, 조금 아방가르드하게 연주하는 곡 들의 연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연주는 호흡이 비교할 수 없이 길어진 채로, 아이디어에는 막힘이 없었다.  웬만한 공연의 1부 정도의 분량을 밴드의 집단 즉흥 연주로 끌고 간 것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넘나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이전에 연주되었던 어떤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그 주위로 다른 부분의 연주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 주제와도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모습이나 부분 부분의 연주가 너무나 완결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아이디어로 넘어가는 그 전이의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점 등을 통해 마치 교향곡과 같이 큰 그림의 편곡을 가지고 그 안쪽의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연주한 것이 아닐까, 이 밴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그렇게 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때때로 멤버들이 악보를 넘기는 광경을 보게 되면서 그러한 추측은 더욱 힘을 얻는 듯했다. 그리고 한 번의 박수 이후 다시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확연히 어떤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멜로디와 코드의 진행이 명확하게 들리는, 그러나 멤버들이 그 곡에 아직 낯설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연주가 얼마간 진행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니 첫 번째 연주는 도대체 어떻게, 얼마만큼 짜여지고 준비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더더욱 궁금해지고 말았다.


  공연 후의 늦은 밤, 운 좋게도 다닐로 퍼레즈와 몇몇의 뮤지션들이 모여 그날의 공연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들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특히 그 첫 한 시간에 대해서. 그에 따르면, 그 첫 한 시간은 완전한 집단 즉흥 연주였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다시금 충격에 빠졌다. 그 안쪽에 채워져 있는 부분 부분의 음악들이 즉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등장하던 그 멜로디나 완결되게 들리던 그 구조는 무엇이었던가? 마치 오케스트라 곡의 편곡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는 이야기를 하자 다닐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란 듯이 놀라며 기뻐했다.  그렇다면 그 악보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을 연주한 게 아니라면 왜 악보를 넘기고 있었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것들은 웨인이 혹시 연주하게 될지도 모르니 준비해 두라고 한 곡들이라고 했다. 연주 중에 낯익은, 그러나 무슨 곡인지 잘 알 수 없는 멜로디가 들릴 때면 그 곡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뒤적거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즉흥으로만 연주를 하다 보면 무언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음악적으로 뚫리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도 물어보았다. 그럴 수도 있는데, 웨인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 어떤 모양으로건  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밴드가 혼돈 속에 빠져있지 않게 된다는 것. 


  그것이 웨인의 존재였다, 혼돈 속에서 길을 보여주는 존재.  웨인은 그들에게 색소폰 주자가 아닌 guru였다. 그 사실을 무대 아래의 우리가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몇 년 전, 모 잡지사의 의뢰로 웨인 쇼터 퀄텟의 내한 공연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생각이 나서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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