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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Apr 10. 2016

Summer Song

The Yellowjackets






  요즘은 좀 시들한 듯도 하지만, 한동안 실용음악과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입시생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에 이르기까지, 다시 말하자면 실제로 음악을 하는 이들이 꽤 좋아했던 밴드가 바로 이 옐로우자켓이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주로 듣고 연주해 오던 이들의 귀에 얼마간의 친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적절한 양으로 던져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옐로우자켓 곡 하나 해볼까? 하고 합주를 해보면 이게 들을 때는 부담 없이 들었는데 연주하기에는 전혀 쉽지 않은 곡들이라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사운드는 팝이 많이 섞여있는데 정작 내용은 만만치 않을 만큼 재즈가 담겨있다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물론 요즘 학생들의 숭배 대상은 오직 스나키퍼피인 듯하다. 걔네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에....


  사실 난 옐로우자켓에 푹 빠져 지낸 적은 없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하도 좋아들 하니까 궁금한 마음에 음반을 두어 장 사서 꼼꼼히 들어보곤 했다. 그리고는 음, 내 취향은 아니군.... 하며 내려놓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밝고 화창한 소리 나는 퓨전 음악은 시시하게 느끼고 뭔가 더 어둡고 음울한 기운이 서려 있거나 격렬하거나 한 음악만을 듣던 시기였으리라. 허비 행콕의 헤드헌터스나 웨인 쇼터와 조 자비눌의 웨더 리포트는 열심히 들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리핑톤스나 데이빗 베누아 등의 팝 퓨전을 듣던 이십 대 초반을 부끄러워하며 자기 부정하던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왜 저런 유치 찬란한 음악을 좋아했던 거지? 아 창피하군, 그런 심정이었다. 하긴 중학생 때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은 죄다 롹음악에 빠져 지냈는데 나는 사이먼 앤 가펑클 듣고 그랬던 걸 부끄러워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음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렇지만 유독 이 곡은 내게 와 닿았다. 이 음반의 다른 곡들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이 곡은 닳도록 반복해 들었다. 바비 맥퍼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바비 맥퍼린은 고등학교 시절 그 유명한 Don't Worry, Be Happy 때문에 알게 되어 요요 마와 함께한 음반 Hush를 제법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퀸시 존스의 Back On The Block의 여섯 번째인가 여덟 번째인가에 아카펠라로 각종 악기 소리를 더빙해 만든 곡 역시 많이 들었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종종 권하고 그랬었으니 바비 맥퍼린 이름이 트랙 리스트에 올라 있으면 좀 더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아니, 그저 곡이 시작되면 바비 맥퍼린의 목소리에 귀가 딸려가게 된다. 인트로와 헤드 부분은 바비 맥퍼린이 이끌고 가는 편곡이니 당연하다. 코드 진행이야 크게 복잡한 것이 없는 것이, 조성을 벗어나는 종류의 놀라움을 주는 코드가 나오거나 하지 않는다. 솔로 체인지는 그야말로 학생들을 위한 연습곡 수준이다. Cm Fm Dm7b5 G7 Cm 을 두 번 반복한다. 이건 뭐.... 굳이 말하자면 블루 보사의 앞부분과 같은 진행이고, 마이너 키에서 이보다 더 다이어토닉 하기란 불가능할 정도의 사운드이다. 그리고는 나란한 조로 이동해서 Fm Bb7 EbM7 AbM7 Dm7b5 G7을 거쳐 Cm키로 돌아오는 코드 진행이라면, 글쎄, 당시의 내가 코웃음을 치며 '이보세요 아저씨들, 이젠 좀 새로운 걸 찾아도 좋지 않을까요?'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밥 민쩌의 색소폰 솔로는 너무나 훌륭하다. 밥 민쩌는 굳이 찾아서 듣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이렇게 오다가다 듣게 되면 정말 너무나 훌륭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꼭 옐로우자켓에서만 아니라 다른 밴드에서도 그렇다. 자코 빅밴드를 듣다가도 그랬고, 존 패티투치, 존 애버크롬비, 피터 어스킨과 함께 한 음반에서도 그랬다.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사운드.... 밥 민쩌의 음색이 너무 좋다. 사실 연주자의 톤은 너무나 중요하다. 사람들이 톤에 관해 늘 하는 얘기가 자신만의 음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듣는 이들이 화성이나 리듬 등의 음악의 기술적인 면은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가장 먼저 알아듣는 것이 음색이라는 것이다. 근데 이 이야기를 뒤집어보면 가장 알아듣기 쉬운 음악의 요소가 연주자의 개성적인 음색이란 말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음색을 알아듣는 것은 -음악 감상의 첫 단계는 아닐지 몰라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음악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연주자들의 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의미를 부여할 때 뭔가 불편한 심정이 치밀어 오르며 거부감이 들고는 한다. 음색이야말로 개인적인 기호나 취향이 개입될 여지가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밥 민쩌의 소리와 마이클 브레커의 음색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기술이 아니며, 더 나아가 밥 민쩌(혹은 마이클 브레커)의 소리를 마이클 브레커(혹은 밥 민쩌)의 소리보다 더 좋은 소리라고 느끼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음색 이외에도 하나의 녹음에 담겨있는 음악적인 정보는 무한대에 이른다. 그 정보들은 우리 청자들에게 해독과 이해를 기대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은 그 첫 관문을 지나서는 자리를 펴고 앉는다. 그리고 더 듣지 않고 말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계발된 사운드를 갖고 있다'라는 것은 주관적인 호불호와는 또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곡에서 밥 민쩌의 소리를 들으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색인 동시에 이 양반은 정말 fully developed 된 사운드를 가지고 있군, 하며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멜로딕 하다는 것. 멜로딕 하다고 느끼는 것 역시 상당 부분은 주관적일 수 있는데, 마흔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음악을 하며 지내다 보니 솔로 할 때 정말 자신이 연주하려는 음 하나하나를 명확히 듣고 노래하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그 멜로디는 뒤에 깔려있는 화성과의 관계 위에 비로소 모든 의미를 갖게 된다고 믿는다. 이 부분이 아마도 일반 청중들에게 좀 어려운 지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진행하는 코드의 소리들 위에 솔로 라인이 쌓이고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색채감을 듣는 것, 그 세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법 훈련된 귀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 솔로를 따 본 건 벌써 십 년도 지난 이전 일인데, 오늘 다시 들으니 또 다른 지점에서 내게 놀라움을 준다. 그동안 내 귀도 많이 변해 왔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요즘의 내게 가장 중요한 화두 같은 거다. 밥 민쩌는 이 솔로에서 내게 감동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고 할까? 음악을 만들어 갈 때 굳이 말하자면 관조적이기까지 한 그런 태도가 있다. 분명 감정적으로 극도로 포커스 된 상태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동시에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나 자신이 연주를 통해 만들어가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어쩌면 최근 내 주위에서 자꾸 들려오는 음악들이 "자, 이제 곧 소리를 지를 테니 어서 감동을 받아라!"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잘 듣고 있기 어려웠는데, 그래서 이 음악이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 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불현듯 이 연주를 다시 들으며 곧 망할 것만 같은 트위터에 썼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요즘 왜 이리 나나 잘하자, 하던 생각에서 뭔가 다른 이들을 책망하듯 하는 말을 하고 싶은지.... 나이는 헛 먹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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