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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May 19. 2015

밤의 노래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날이 있다. 다시는 마주하기 싫다던 사람을 몇 년만에 맞닥뜨려버리는 날 말이다. 나란 사람은 지극히 평범할 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말로 행동으로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날 말이다. 아무리 아등바등하여도 일은 끝나지 않고 실수만 겹치는 날 말이다. 오늘, 그녀의 하루는 그런 날이었다. 아니, 그 모든 날들이 오늘 하루였다. 매일매일이 오늘이었다.

         

  그녀가 대책 없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에 들어선 것은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 때였다. 집이라....... 언제부터 사람들이 방 한 칸을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조그만 창문으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무릎 아래만 겨우 내다볼 수 있는 방 한 칸, 그곳을 그녀는 집이라고 부른다. 벽지 안쪽으로는 꾸준히 곰팡이가 피고 몇 년에 한 번씩 장마철에 물이 드는 반지하 월세방. 방 번호는 103호이다. 아무도 1층이라고 믿지 않는다. 허울뿐인 번호는 누구도 속이지 못했다.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간 뒤 몸을 살짝 오른편으로 틀어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맥없는 철문 하나가 세상과 그녀를 단절시켜줄 리 없으니 그녀는 문 안쪽에 들어선 채로 여전히 불안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방 한 칸 안에서는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다. 바닥에 핸드백을 던지듯 내려놓고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켰다. 이내 천장에 달린 등을 꺼버렸다. 그리고서야 침대 위에 털썩, 하고 엎어졌다. 슬픔의 크기란 어제건 오늘이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익숙한 만큼만 슬프다. 이 슬픔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길은 무얼까 생각해본다. 그녀의 마음 속에 꾸준히 떠다니는 그 한 가지의 길,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있을까. 삶이란 그것 이외의 다른 길을 찾는 것일까.

         

  일단 잠을 자자, 어쩌면 좋은 꿈을 꿀지도 몰라. 노인이 아이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그런 꿈. 깨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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