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평생 써 온 여러 소설들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뭐야, 이 양반은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그리고 그리고 <댄스댄스댄스>처럼 아예 연작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이어지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니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시 쓰다시피 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뚜렷한 연관관계를 가진 작품들은 아니더라도,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다 보면 등장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스토리는 계속 변주되고 있는데, 그 뒤에 깔려있는 어떤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같은 사람인 것 같고 말이죠. 각각의 소설을 쌓아가면서 결국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하면 좋을 어떤 사상 같은 것 역시 조금씩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도 같습니다. 아닌가요?
화가들의 경우, 평생 하나의 주제에 탐닉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듯합니다.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스타일을 형성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마크 로스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색을 해서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은 그저 하나이면서 또 개별 작품입니다. 거대한 화폭을 두세 개의 공간으로 나눈 뒤 그 안을 채워 넣은 색깔이 그 모든 그림의 전부입니다. 각 공간의 경계선은 찢긴 한지와도 같이 거칠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색채는 서로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슬쩍 오버랩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 공간의 분할이나 색채의 대비 등이 저 같은 사람이 봐도 예쁘게 보입니다. 미술의 전문가들은 같은 대상을 두고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을 테지만, 저 같은 사람이 ‘역시 예쁘네, 대가는 달라’ 하면서 피상적인 감상을 한다 해도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마크 로스코는 미국의 추상 화가입니다. 그의 이름이 낯선 분들이라도 그의 그림을 화면 속에서나마 접하면 ‘아, 이 사람, 색깔이 참 예쁘던데’ 하는 생각이 떠오를 겁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있었던 마크 로스코전을 통해 알게 되었을 수도 있고요(저도 포함입니다). 당시 그 전시의 기획자는.....(줄임)
그의 그림을 추상적이라고 부르는 건 타당한 것 같습니다. 실재하는 어떤 대상을 구상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니까요. 공간과 색채, 그것을 구분하는 명확하지 않은 선을 그림으로써 표현하고자 한 어떤 사상과도 같은 게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경험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는 그의 그림을 열네 점 전시해 둔 로스코 채플이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휴스턴에 갈 일이 있다면... 하고 다짐하고는 있지만, 굳이 그곳을 가보기 위해 휴스턴을 찾아 떠나기에는 약간 애매합니다. 로스코 채플만 보자고 휴스턴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까 싶긴 해서요.
로스코 채플은 특정 종교를 위한 장소는 아니라고 하고,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음악이나 무용 같은 여러 가지 공연도 자주 있는 모양이고요. 최근에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어 보수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과거의 성당이 그 시대의 미술작품으로 온 벽면을 장식했다면, 이 시대의 채플을 현대의 화가, 그것도 마크 로스코의 그림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은 참신하지만 또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 앞에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을 화면 속 이미지로 보면 작고 예쁘장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압도적인 크기로 눈앞에 놓여있을 때, 그들은 색채로 채워진 공간들을 바라보며 숨죽여 울거나, 소리 내어 오열한다고 합니다. 한두 사람이라면 그저 그 개인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하겠지만, 제법 여러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격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색채로 고정된 작가의 움직임 뒤편에 과연 어떤 것이 있었기에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을 이토록 뒤흔들어 놓을 수 있었던 걸까요?
미술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라 화가나 미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조심스럽긴 합니다. 게다가 저는 적록색약이라 선천적으로 평균치의 사람들보다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법 콤플렉스였는데요, 어찌 된 일인지 스무 살 즈음해서 갑자기 ‘그래,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색깔을 다르게 느끼는 게 뭐 대수야? 나는 나대로 보고 느끼고 이해하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타인의 시선을 적지 않게 의식하는 성격이라 제게도 낯선 일입니다만, 어쨌건 운 좋게도 색깔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구석으로 쪼그라들지 않고 잠깐이라도 기회가 오면 미술 작품을 빤히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