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학생을 가르쳐오는 동안, 선생의 역할은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학생이 가진 음악적 문제점을 잘 파악해 내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증상을 통해 어떤 병인지, 왜 이렇게 아프게 된 것인지 진단하는 것과 유사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훈련을 통해 지금 당면한 음악적 문제점을 극복할 것인지 제시하는 것 역시 적절한 처방전을 써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연습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환자의 경과를 지켜보며 약을 바꾸거나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해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레슨 시간에 학생들에게 하고 있는 것은 학생의 연주를 초 집중하여 듣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문제점과 그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해 내는 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그다음에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당당하게 알려주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몇 가지의 처방을 생각해 내서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니까 굳이 험한 말을 쓰지 않아도 학생들은 무척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연주를 들어내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대체로 잘 간파해 내는 것을 경험하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그 과정을 잘 받아들이는 친구들은 이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가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저로서도 기분 좋게 성취감이나 보람 같은 정서적인 만족감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연주할 때입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타인의 연주를 분석하듯 듣고 흠결을 찾아내는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태도가 스스로의 연주를 향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말이란 자신의 사고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막연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에 그치는 것과, 그걸 명확한 언어로 소리 내어 말하고 난 다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훨씬 더 잘 기억나게 됩니다. 스스로의 연주에 가장 엄격한 비평가가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객석에 학생 중 한두 명이 보이는 날은 그래서 연주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날이 되고 맙니다. 학생들은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 ‘쟤네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수업시간에 말로는 그럴듯하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연주는 딴판인걸’하는 가상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실수 하나라도 하게 되면 정말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은 엄격하고 세밀한 지적질은 그만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디테일한 영역에 대한 관찰과 의견을 말하게 되는 때가 많이 있지만, 그럴 때에는 최대한 건조하게 들리도록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해서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조금이라도 빈정대는 것 같은 어투가 섞여들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대신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재즈를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가, 아니면 그저 복잡한 코드 진행을 쫓아가며 그럴듯한 멜로디를 얹어보려 하는 것에 급급한 건 아닌가, 내 안에 음악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는가, 나는 나를 둘러싼 동료 연주자들에게 그들의 연주를 한 단계 고양시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런 얘기들을 몇 년째 지속하고 있는 건 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갑자기 내가 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면, 부끄럽기는 해도 잠시 휘청이던 중심을 잡아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