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인

시/ 촉진하는 밤 <김소연>

by 제이비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쓰는 김소연 시인


정제된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인

시를 읽고 있으면 내 마음을 시인에게 들킨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시들이 가끔은 서럽고 아프게 부딪혀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속이 얹힌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나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

본능적으로 슬픔에 눈길이 가고,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그리고, 자꾸 무엇인가 잃어버리는 상상을 한다


김소연 시인도 나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마음인 듯하다

그래서 자꾸 시인에게 애착이 간다


이해하지 못하는 시들도 몇 편 있었지만,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시다


어둠을 두려워하다가 어둠이 되어 버린 사람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빛을 발견하는 순간 곧 어둠을 기대하는 사람

안도와 불안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경지에 오른 사람


김소연 시인은 그런 사람 같다


이제 <수학자의 아침> 읽어야지




촉진하는 밤 / 김소연


열이 펄펄 끓는 너의 몸을

너에게 배운 바대로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느라

밤을 새운다


나는 가끔 시간을 추월한다

너무 느린 것은 빠른 것을 이따금 능멸하는 능력이 있다


마룻바닥처럼

납작하게 누워서

바퀴벌레처럼 어수선히 돌아다니는 추억을 노려보다

저걸 어떻게 죽여버리지 한다


추억을 미래에서 미리 가져와

더 풀어놓기도 한다

능멸하는 마음은 굶주렸을 때에 유독 유능해진다


피부에 발린 얇은 물기가

체온을 빼앗는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열이 날 때에 네가 그렇게 해주었던 걸

상기하는 마음으로

밤을 새운다


앙상한 너의 몸을

녹여 없앨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마침내 녹을 거야

증발할 거야 사라질 거야

갈망하던 바대로

갈망하던 바대로


창문을 열면

미쳐 날뛰는 바람이 커튼을 밀어내고

펼쳐둔 책을 휘뜩휘뜩 넘기고

빗방울이 순식간에 들이치고

뒤뜰 어딘가에 텅 빈 양동이가

우당탕탕 보기 좋게 굴러다니고


다음 날이 태연하게 나타난다

믿을 수 없을 만치 고요해진 채로

정지된 모든 사물의 모서리에 햇빛이 맺힌 채로

우리는 새로 태어난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유격이 클 때

꿈에 깃들지 못한 채로 내 주변을 맴돌던 그림자가

눈뜬 아침을 가엾게 내려다볼 때


시간으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

참 좋구나


우리의

허약함을 아둔함을 지칠 줄 모름을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더딘 시간을

이 드넓은 햇빛이 말없이 한없이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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