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나귀를 좋아한다. 당나귀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걸 보니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학교 과제 때문에 민속촌에 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당나귀를 처음 봤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당나귀를 마주했다.
세상의 이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
당나귀는 아직 설익은 인간 여자를 보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서로에게 측은함을 안겨주는 사이, 그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가. (나의 망상이지만, 나는 그 망상을 고이 간직했다)
당나귀로 이야기 시를 써봤다.
제목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제목 짓는 일이 첫 행을 쓰는 일보다 어렵다.)
민속촌에 갔다
기와집 나무에 묶여있는 당나귀
가까이 다가가도 당나귀는 꼼짝하지 않았다
한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
눈가의 흰털이 눈물 자국 같아
나는 당나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제 그만 생각해도 돼
속삭였다
당나귀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 장면을 가끔 떠올렸다
당나귀 인형과 당나귀 그림을 사 모았다
당나귀를 닮은 남자를 만났다
그 사람이 당나귀를 닮아서 좋아한 건 아니었다
툭 튀어나온 입술을 벌리고 무표정으로 방어하는 그를
웃게 하고 싶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나를 앞에 두고도 혼자 앉아 있는 듯했다
그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라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술에 흰 거품을 묻힌 채로
천천히 말했다
선
인
장이요
선인장은
달고
새콤하고
씁쓸한 맛이....
나거든요
선인장은 가시가 많잖아요
내가 묻자
과육은 부드러워요
그는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그를 만날때마다 선인장을 선물했고
그는 웃었다
그에게 더 희귀한 선인장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선인장 농장에 다녀왔다
레인보우 선인장을 사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낡은 철문이 열려있었고 노란 폴리스라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라인을 넘자, 그의 정원에서 경찰이 나를 막아서며 말했다
더 이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사건 현장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여기 사는 사람이 독성 선인장을 삼킨 채 발견됐어요
경찰은 내가 들고 있는 레인보우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이건 당나귀 먹이예요 내가 변명하듯 말하자
당신이 저 당나귀 주인인가요? 경찰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의 정원 한 편에 묶여있는 당나귀
나를 응시하는 눈, 눈가의 흰털, 굳게 다문 하얀 주둥이
나는 고개를 젓고 레인보우 선인장을 던지고 도망쳤고
밤이면
베개 틈, 무릎 사이, 뒷목 아래로
하얀 털이 쌓였다
자기 시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이 시를 설명하고 싶다.
(시인은 하지말라는 걸 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었다. 참 좋은 핑계거리)
이 시에서 ‘선인장’은 사랑의 은유로 작동한다.
사랑은 달콤하고, 새콤하며, 씁쓸하고, 때로는 따갑고 아프다.
그 감각은 부드러움과 가시를 동시에 지니며, 어떤 형용사로도 포섭 가능한 다면성을 띤다.
사랑은 타인에게서 오는 감정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영향력은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처럼 작용해 상대를 해치기도 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그의 웃음을 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선인장을 건넨다. 그리고 더 희귀하고 특별한 선인장을 찾아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 그는, 화자가 준 선인장이 독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시 전반부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화자는 당나귀의 눈가에 굳어 붙은 흰 털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생각해도 돼’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 말은 대상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위안이자 체념이다.
동시에, 화자가 당나귀 인형과 그림을 모으는 일은 사랑할 대상을 원한다는 의미다.
그 의지는 사랑의 반복과 귀속 욕망으로 이어지며, 시의 전반을 관통한다.
이 시는 시점과 감정이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죄책감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며 반복되고, 그 순환은 끝내 끊어지지 않은 채 남는다.
독자는 이 반복 속에서, 사랑이 품은 아름다움과 폭력성을 동시에 목격하게 되길...
셀프평론 J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