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의 주절주절

<귀멸의 칼날> 나의 행복 보자기

by 제이비

9월부터 나는 도망자가 되었다.

늘 쫓기고 숨 막히고 헐떡이는 마음.


시는 나오지 않았다.
문장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합평이 있었는데, 마음이 조급해서 늘 불안했다.
어떤 교수님께는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인정받고 싶었던 교수님께는 혹평만 들었다.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다.
모래주머니의 겉면엔 ‘절망’이라고 쓰여 있다.
멈추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방학은 더 괴롭다. 주어진 하루가 나에겐 늘 버겁다.
하루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하루를 통제해야 한다.
‘아, 오늘 책도 많이 읽고 시도 많이 쓰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보람차다’라고 느끼고 싶다.


하지만 하루에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은 많이 일어나고,
내 의지는 휴대폰이 삼켜 버리고,
나의 집중력은 문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다.


애초에 ‘보람차다’라는 걸 느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가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면서 깨닫는다. 쓴다는 것은 이런 것.
너저분하게 엉망이 된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
시는 아픈 사람이 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아, 브런치에 들어온 이유가 있다.
가을 학기 도망자 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남겨두고 싶다.


<귀멸의 칼날>

TV를 잘 보지 않지만, 이름은 많이 들어 본 애니였다. 제목부터 올드한 느낌이군. 싸우는 건가. 스토리는 영 아니겠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누군가 추천해서 보게 됐다.


서너 편을 볼 때까지는 애들 보는 거구나. 별로 재미없네. 그림이 귀엽네. 뻔한 스토리겠네. 생각하며 봤다.

혈귀가 된 동생을 업고 다니는 주인공이 불쌍했다. 아니, 조금은 대단했다. 온 가족이 비참하게 살해당한 걸 보고도 금방 슬픔을 이겨 내고 저렇게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주인공은 금방 슬픔을 이겨 낸 게 아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슬픔을 저 아래에 묻어 놓고 죽도록 훈련을 받는다. 주인공은 정말 긍정적이고 이타적이고 용감한 소년이다. 혈귀를 죽이면서도 ‘얘도 이전엔 인간이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순간 망설인다. 혈귀들에게도 다 사연이 있다. 평범한 인간들이 혈귀가 되는 삶을 선택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탄지로다. 나는 내가 탄지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니를 등에 업고 다니는 나는(언니의 우울증은 혈귀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탄지로처럼 극단적으로 이타적이지는 않지만, 그 마음을 좀 알 것 같아 안쓰럽고, 또 그럼에도 강한 탄지로를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생은 비극이다. 이 비극을 조금 더 당당하게 온몸으로 맞서고 싶은 마음.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키겠다. 그런 마음가짐.
그리고 작화가 매우 뛰어나다. 물론 캐릭터의 외모는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본의 고전적인 마을의 분위기도 좋고, 무한성의 구조 또한 기발하다.


일본 시리즈물 애니메이션은 <진격의 거인> 이후로 두 번째 봤는데, 보는 동안 쉽게 빠져들었다. 이렇게 오타쿠가 되는 걸까? 오타쿠는 행복의 보자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빠져들 만큼 좋아하는 게 있으니까.

행복의 보자기를 하나씩 모아 둬야지. 현실이 시릴 때 보자기를 하나씩 풀어 몸에 두르면, 조금은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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