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옥 시인의 '시 쓰기 전 준비운동'>
운동만 하면 몸이 아프다.
근육통이 아니다.
기운이 없고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남들은 운동을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체력이 향상된다고 하는데,
왜 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나?
원인을 알면 해결 방법이 있을까. 원인을 알 수는 있을까.
꽃들이 한 번에 피고 진다면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꽃은 만개하고, 어떤 꽃은 잎이 다 떨어지고, 어떤 꽃은 꽃봉오리를 닫고 있고.
일찍 시들어버린 꽃과 늦게 피는 꽃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원인을 안다면 한 번에 꽃을 피고 지게 할 수 있을까.
소풍을 가는 아이들 중 뒤처지는 아이에게 눈이 간다.
아이에게 손인사를 한다.
아이가 눈을 피한다.
서운한 마음이 든다.
신호가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는 앞차.
앞차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뒷차는 그 그림자를 볼 수 없어서
경적을 길게 울린다.
교수님이 자꾸 단정한 시 쓰지 말라고 해서 이야기 중심으로 쓰고 있는데, 쓰면 쓸수록 소설이 된다.
현실과 멀어지는, 일어나지 않는 꿈 이야기 같은 소설.
나는 일상을 쓰고 싶다.
일상이 얼마나 숨 막히는 건지,
일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일상이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쓰고 싶다.
아픈 사람끼리 돌려가며 보고 싶다.
너는 얼만큼 아팠어? 이 부분이 아팠어? 근데 이건 금방 나을 수 있어. 실제로 나도 그랬거든.
그런 위로를 닮은 시를 쓰고 싶다.
근데 잘하는 걸 먼저 하라고 한다.
솔직히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른다.
나는 잘 흔들린다.
불과 물이 함께 있는 사주 탓인지,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 잘 모른다.
수영은 못 하고 물은 좋아하고
겨울의 실내는 좋아하지만 찬바람이 불면 고통스럽다.
안미옥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10분간 아무거나 쓴다고 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쉬지 않고 아무 말이나, 아무 생각이나.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으면 “아아아아아”라도 쓴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지금 따라 해보고 있다. 근데 좋은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감정이 일정하다면 평화롭겠다.
바이탈 사인이 수평을 이루어야 불안이 멈출까?
산다는 것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왜 요동쳐야 하는 일인가.
흰 머리가 너무 많아졌다.
머리카락이 모두 하얀색이면 엘사처럼 신비할 텐데
흰 머리는 왜 검은 머리를 장악하지 못하고 드문드문 빛나는 걸까.
성가신 기억처럼.
아무 문장이나 쓸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런데 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괴롭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들 거야.”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말한다.
“뭘로? 지점토로?”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지점토로 시를 만들면 어떤 모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