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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진범 May 12. 2016

시빌워 캡틴 아메리카를 위한 변호

(약간의 스포) 왜 캡틴 아메리카를 미워하시나요?ㅜㅜ

 지난 어린이날 시빌워를 보았다. 평단과 세간의 호평이 둘 다 좋은 수작이었던 탓에 기대치는 충분히 부풀려 있었다. 기대대로였다. 영화의 액션은 충분히 리드미컬했고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블랙 위도우를 통해서는 설레는 액션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이러한 액션 앞에서 비전의 대머리 빔은 조금 초라해 보였다. 영화의 드라마도 충분히 설득적이었다. 설득적이었다!!?고 반문할 분들을 위해 오늘 글을 시작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친구 때문에 이러는 거냐는 주변의 오해를 조금 벗겨주고 싶다.

 어린이날스러운 동심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이 영화 캡틴 아메리카 3이다.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캡틴 아메리카다. 모든 사건의 중심이다. 주인공이 이상하다 느낀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야기의 얼개인 갈등구조를 파악하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캡틴이 그렇게 이상한 걸까?

 주인공과 갈등 축을 이루는 인물은 누구일까?  우선 소코비아의 지모 남작이다. 지모 남작은 나름 복수에 대한 스토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갈등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지모 남작은 자기가 당했던 복수를 철저하게 되갚아주기 위해 사건을 계획한다. UN은 무기력할 정도로 지모에게 농락당하는데 이것이 과연 무능력해서일까? 이러한 고민을 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의 숨은 빌런이 보인다. 바로 미국의 국무장관이다. UN을 위시한 미국 세력은 영웅을 컨트롤하기 원하고 이를 압박할 근거를 원한다. 그 사건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복면을 쓴 버키 비스무리한 인물이 나왔으나 그 높은 과학기술력으로 이것을 따지려 들려하지 않는다. 캡틴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진짜 버키가 맞냐고 맞는지부터 확인하자 한다. 캡틴은 자기가 버키를 데리고 올 테니 조사를 해보자한다. 그런데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 버키는 이미 충분히 나쁜 놈이고 그것을 옹호하는 캡틴도 그르다. 위해를 옹호할 수도 있는 영웅이라며 압박할 수단을 찾은 것이다. 캡틴의 버키 옹호는 단순히 친구라서가 아니다. 죄가 확정될 때까진 우리는 누구나 무죄이며, 누구나 자기를 변호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성립과 법의 탄생 이후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놓은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캡틴은 버키 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제도의 대척점을 지킨 것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진짜 갈등 축은 아이언맨이다. 인간의 능력과 자유의지(특히 자신의 지혜)에 대해 무한히 긍정하던 아이언맨은 울트론을 만들어낸 자신의 방종을 자책하며 적절한 통제를 옹호하게 된다. 자신의 지혜를 그토록 믿었던 인간이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그 귀결은 통제였다. 캡틴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로 인한 개선 가능성과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통제를 받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통제하는 이가 책임지는 것일까? 자유로서 선택하면 책임지지만 통제는 누가 통제하고 책임지는가. 캡틴은 묻는다. 캡틴은 쉴드 내 하이드라 사건을 통해 적절한 통제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개인에 대한 말살 정책에 대해 깊게 회의한다. 이러한 둘의 대립에서 또 하나의 영웅이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바로 스칼렛 위치다. 영화에서 성인으로 보이지 않는(미국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파악이 힘들었다..) 그녀는 실수를 하게 된다. 스칼렛 위치에 대해서 아이언맨은 통제하려한다. 그것도 마블 슈퍼 사기 캐릭터 비전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자책하고 성찰에 들어간 스칼렛 위치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들고서는 그것을 보호라 말한다. 캡틴은 이에 실망한다. 스칼렛 위치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캡틴은 말한다. 아이언맨은 인간은 통제해야한다는 인식으로 치닫게 되면서 인간 스스로 할 수 있음에 대해서는 망각해버렸다. 누가 더 맹목적이었던 것일까? 캡틴은 어린 스칼렛 위치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개별 개인의 자유의지와 개선가능성을 옹호한 것이다.

 캡틴과 아이언맨의 갈등은 버키의 지난 날 사건에 의해  종국으로 치닫는다. 캡틴 아메리카는 버키가 선택할 자유의지가 없었고 그 때문에 책임이 없었음을 말한다. 이 갈등의 진면목은 가족이냐, 친구냐가 아니다. 진실은 자유의지를 옹호하고 이해하는 한 영웅과 잠시 이성을 잃은 한 영웅의 대결에 불가하다. 아이언맨은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판옵티콘형 수중 감옥에 수감된 다른 영웅을 통해 자신이 옹호하던 통제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깨달았었다. 허나 이 다툼을 통해 아이언맨은 이해할 수 있을만한 통제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자유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다시 방종이 그에게 밀려온 것이다. 캡틴은 방종으로부터 자유의지와 선택 그리고 책임의 관계를 이해하고 버키를 지킨 것이다.  

 캡틴은 자유의 가치를 신봉했고 세계 평화를 수호했던 과거 미국에 대한 자국민의 자긍심을 보여준다.(미국 영화다. 다른 나라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들한테 별로 안 중요할 것이다.) 반대로 아이언맨은 최첨단 하이테크놀러지와 지식으로 무장한 오늘날의 미국을 보여준다. 국제 외환위기로 자유의 방종을 깨달았음에도 아직까지 어떻게도 극복하지 못하는 표류하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을 보여준다. 토니 스타크 얼굴의 멍이 유독 진하게 보인다. 아이언맨의 친구 워머신은 절대복종에 따르는 미국의 군사력을 보여준다. 그는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한 비전에 의해 그의 하반신을 잃는다. 미래(vision)에는 군사력(워머신)이 필요한 것일까? 와칸다의 영웅 블랙팬서에게 법은 없었다. 그는 왕국의 전사이자 왕이었다. 오직 자신의 신념과 자기 판단에 따라 윈터 솔져를 죽이려 했다. 캡틴에 대한 추격을 통해 종국에는 법에 의한 지배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캡틴은 자유 의지의 수호자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그것이 친구라면 더욱더 존중한다. 아이언맨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가 이를 떠올리게 한다. 네가 너의 뜻으로 부른다면 나는 친구로서 달려가겠다. 그게 바로 캡틴이다.

배진범 소속 직업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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