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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B 진범 Readen Aug 01. 2023

저도 누구를 보며 이해받는 기분이 들고 싶어 졌어요

[북 리뷰] 김건희, 김지연 편지 '당신을 보면 이해받는 기분이 들어요'

 

 내게 편지는 일회성 수단이다. 군대에서 어머니께 보내드린 편지 세 번이 가장 길게 타인과 주고받은 편지이다. 글재주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없는 편도 아니라서 쓸 법도 한데, 편지는 진실되어야 할 것 같고 무거워야 할 것 같으며 개인적이어야 할 것 같은 수단이라 망설여진다. 이 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싶어 졌는데, 부칠 대상이 없다.

 전회를 좋아한다. 무엇인가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움직이다. 가끔 획획 돌아섬을 좋아한다. 변수가 생기고 다른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편지의 전회에 대한 글이다. 다른 사람 둘이 돌아서 만든 전회의 글이다. 한 다가선 사람에게 다가서진 사람이 쓰자해서 만들어진 글이다. 가장 개인적인 글인 편지가 가장 공개적인 글인 책이 되어버린 전회이다. 

 두 사람의 소개로 글이 시작하는데 참으로 덤덤하게 꾸미지 않고 본인들을 써 내려간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책을 사달라 해도 모자를 세상에 너무 덤덤해서 나도 덤덤해진다. 자연스럽게 편지에 녹아들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서문을 작성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작지 않은 전회다.


건희라는 작가는 검은색을 자주 입으며, 본인의 감성을 본인의 언어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 같다. 아는 것을 티 내고 싶어 하는 욕망보다는 아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어 단어를 고르고 고른 것이 표가 난다. 편지라면 힘을 뺄 법도 하지만, 매사 고르고 고르지 않았을까. 꽃봉오리 피기 직전 미움새를 표현할 때에도 단어를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안 예쁘다 하지만, 안 예쁘다고만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미라는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본인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외려 이때는 당당하다. 자신의 이야기라 그런 걸까 많이 정리가 되어 그런 걸까.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고르던 사람이 이때는 당차다. 작가는 단어를 고르고 고르지만 당찰 때는 당찬 사람인가 보다. 

 이 작가는 사유를 사랑한다. 사유가 사치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를 저주하지 않으며 받아들이며 자기 사유의 길을 찾는다. 글 곳곳에 세상을 미워할 법도 한데 미워하지 않으려 발버둥 대는 것이 보인다. 울어버릴지언정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용기가 있어 그런 걸까. 문득 생각한다. 나는 혼자 그럴 수 있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건희 작가는 현실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둘 중 어느 것 하나 값지지 않은 것이 없다. 건희 작가의 관철해 온 삶의 태도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동생과 페미니즘 관련해서 나온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삶을 살고 사랑하는 듯하다. 천안 호텔에서 겪은 이야기도 얼마든지 슬프고 가련하게 쓸 수 있다. 자기를 연민할 수 있다. 하나의 문장도 자기를 연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도 이내 드나, 그것이 고독 예습이라는 삶의 태도에서 무엇 하나 보탤 것이 없다.  길지 않은 <헤어질 결심>에 대한 메모도 조금 길게 들어보고 싶다. 현실과 사랑에 대한 영화이니까 할 말이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

 '예술 작품이 왜 이렇게 어렵지요'라 묻는다면 건희 작가는 웃으며 고르고 고른 언어로 잘 설명해 줄 것 같다. 책에도 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는 이보다는 그녀가 대하는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유할 수 있는 나의 공간이 있어야 예술이 내게 남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도 사랑도 삶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불면증을 겪는 작가가 어떤 그림 앞에서 한 없이 푹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단어를 고르지 않아도 되는 그림 앞이라면 더 좋겠고, 사랑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옆이라면 더 좋겠다.  


 지연 작가는 알록달록한 옷이 잘 어울릴 만큼 글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평론가라는 무게를 덜어놓을 때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성찰이 잘 배어 나온다. 작가의 연애와 사랑관에서 작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연애 말고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 이 문장 하나가 계속 내 마음에 치받았다. 이때부터 지연 작가의 글은  사랑하려는 이의 자세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이 리뷰를 적기 위해 쓱쓱 내려갈 때에도 그녀가 미술 평론가임에도 예술에 대한 부분보다는 이 사랑에 대한 태도에 마음이 간다.

  다가선 이에게 당신과의 편지를 글로 엮어보자는 생각부터 타인을 받아내는 태도가 온전히 느껴진다.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지 않을까. 몇몇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는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측은지심은 아닌 것 같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좋아하는 것이 많아 알록달록한 것일까

 건희 작가가 단어를 고른다면 지연 작가는 글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며 자기와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인연도 사랑도 이리 맺지 않았을까. 일단 써 내려가고 맞추어가는 그런 사람. 발걸음을 맞추기도 하고, 맞출 수 없을 때는 이내 보낼 지도 아는 그런 사람. 퇴고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잘 고쳐쓸 수 있으면 쓰는 거고 아니면 지우는 거니까. 

 확신을 경계하는 모습도 지연 작가스럽다. 알록달록하려면 특정 색에 대한 확신이 없어야 한다. 누구와 맞추려면, 배우려면 확신의 구역이 없어야 한다. 다만 그런 작가도 결심을 하는 부분이 있다. 사랑을 하는 일. '사랑은 어쩌면 결심의 문제예요'. 불분명한 경계선에서 그나마 경계 안으로 누군가를 들이는 일, 마음의 시차를 맞추는 시간을 보내는 일. 확신의 불분명한 경계를 사랑만은 넘나드는 거 아닐까.

 그래서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경계로 들이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태도가 더 와닿는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두려움이 커지는 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작가는 사랑의 마음으로 경계를 연다.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고, 내가 모르는 퍼즐 조각이 항상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작가는 사랑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무너졌다 할지라도, 사랑의 경계를 허문 것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 화가 나더라도 이해하고  다시 화가 나더라도 또 이해하고 화를 가라앉힌다. 

 아마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알록달록함을 유지할 수 있는 자세와 계속 경계를 고치고 사랑하는 자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너그러움과 여유는 그런 경계의 조정과 색의 다양함에서 나오나 보다. 참으로 입체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고자 한다면 어때야 할까? 아마도 사랑의 마음을 갖고 예쁜 눈으로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알록달록함을 보다 더 잘 알록달록하게 하고, 경계마저 비슷한 사람과 함께하고 있기를 바란다.

 


불현듯 약간 걸리는 게 있다. 내가 두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한 걸까. 뭐 책에 나타난 것만 판단한 거니까 아마 두 사람 모두 다음 문장처럼 말하겠지 "쉽게 판단하는 태도에 나를 맡기지 않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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