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성장로드맵 여섯 번째 이야기
공학에서는 관심 있는 현상을 조립하고 정리하고 재정의하여서 방정식을 도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재료가 되는 방정식들은 그 유명한 뉴턴의 운동 법칙부터 시작해서 푸리에 변환, 쉽게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이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앞과 같이 한 번쯤 들어봄직한 방정식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사용되는 고유의 유명 방정식들이 존재한다.
실무에 가까울수록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를 요인들을 고려하기 위해 여러 방정식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방정식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방정식 시스템이라고 굳이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를 쓴 이유는, 특정 목적에 맞춰 방정식을 조합하고 적절한 해를 구해야 하는 공학 실무자들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즉, 기존에 존재하는 무수한 기술들을 특정 목적에 맞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공학자의 주요 직무이다.
필자도 공학자로서 이와 같이 시스템을 열심히 구축하다 보니, 언젠가 인생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말하자면 매우 불확실하고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어느 정도는 공식이 정해져 있다고 느껴졌다. 각자의 가치관이나 상황 등에 맞춰 이 공식들을 조합해 나가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인생계획이 인간으로서의 주요 직무일 것이라 결론에 다 달았다.
인간은 (아직까지는) 시간에 종속적이어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각자 고유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 계산된 결과가 최선이라고 믿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결과가 진짜 최선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를 스스로 분별해내기는 정말 어렵고 최선이 아니라고 해도 시스템이 뱉어준 결과와는 다른 선택을 하기에는 매우 불안한 마음에 원래 결과를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공학자가 특정 목적에 맞춰 구축한 시스템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 또한 정확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안정성과 정확도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실무에 사용되는 시스템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쓸만하다고는 할 수 있다. 공학자들은 발생할 오차를 예측하고, 이를 감수해서라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분석한다. 최종적으로는 어느 정도 쓸만한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 생산 시 불량품 발생 확률과 이에 따른 비용을 산정한다거나, 구조물의 최대 응력과 이에 필요한 안전계수를 산정하는 등의 분석을 수행한다. 정확하게 자동차를 항상 100% 하자 없이 만들지 못해도, 계산된 구조물의 최대 응력보다 더 큰 응력이 발생할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는다는 말이다. 이로써 쓸만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인생에 있어서는 오차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시스템에 입력되는 값 자체가 모호하고 그만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일어날 사건(입력값)을 모두 예측하고 분석하기는 불가능하고, 만약 가능하더라도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지게 된다. 이런 인생의 불확실성은 결국 시스템을 보수적이게 만든다. 혹여나 급진적으로 선택을 하였다가 자칫하면 안전이나 생리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극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차에 대한 안전계수와 비용은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고 그 말은 즉슨 대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애초에 큰 자본을 가져 입력값이 넘쳐날 경우에나 다양하고 무모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못한 경우 보수적이어지고 소심해지는게 보통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환경에 따라 개인차가 매우 크다. 즉, 자신이 가진 자본 이상으로의 모험을 하고 싶다면 공학자들이 만드는 시스템과 동일하게 얼마나 구체적으로 오차(실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길로 인생을 해쳐나갈 수 있다(물론 천재지변은 못 막겠지만..).
공학에서 이런 오차를 분석하기 위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오차를 하나하나 분석하기도 하고, 입력되는/입력될 값들에 따른 변화를 분석해 시스템이 오차를 크게 나타내는 취약한 곳을 귀납적으로 찾아내기도 한다. 인생에 적용할 예정이니 블랙박스 중 최고봉인 인생이라는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어 후자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았다. 입력되는/입력될 값을 초기 조건과 경계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조건은 지금 현상태를 의미한다. 현 상황을 명확히 알아야 지금 운용 가능한 어떤 자원을 사용해서 인생을 살아갈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내 자산을 알 수가 없으면 당장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이다. 투자를 할 수 있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인데 하지않았다면 내 자산 상태를 알지 못했기에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경계조건은 특정 시공간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조건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꾸준히 예상되는 값이나 사실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쇠약해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금수저라면 큰 이변이 없는 한 부모님이 계속 후원을 해줄 것이라는 선망 정도가 있겠다.
아, 그리고 인생을 관통하여 고정되어 있는 상수값도 존재할 것이다. 키, 대한민국 거주, 성 등이 있다. 물론 이 또한 변할 수는 있지만 상수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인생의 요소들을 초기 조건, 경계조건, 상수값의 관점으로 분류했을 때 깔끔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공학자로서 익숙한 언어로 인생의 요소들을 해석할 수 있는 프레임이 생긴 것이다. 이로써 얻은 통찰(?)은 무수한 자기계발서에서 설명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익숙한, 그리고 적용해봄직한 언어로 다시 한 번 그 조언들을 소화해내었다는 의미를 얻었다.
초기 조건은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값이 부정확하다고, 보기 싫다고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은 값이다. 초기 조건에 따라서 수렴 속도가 조금씩 다를 뿐,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조건에 따라 최적화된 목표에는 (그 근처에라도) 어떻게든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조건이 어떠냐에 따라서 최적점이 Global optimum 일수도 local optimum 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혹 초기 조건을 명확하게 알았다면 local optimum이 아닌 global optimum에 가깝도록 먼저 초기값을 세팅하는 방법도 존재할 것이니, 초기 조건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접목해보자면 초기조건을 아는 것은 발전하고 싶은 부분에 대한 현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수준, 알고있는 어떤 강의나 연설, 책 따위의 학습통로, 알고일는 멘토의 존재 여부 등 많은 것들을 현 상황에서 점검해 봐야한다. 그리고 이미 잘하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그 후에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점검하고, 경계조건을 정의하고 그에 따라 나아가면 된다.
사실 이렇게 프레임을 씌워 생각해보기 전에는 무턱대고 계획을 짜기 바빴다. 바로 관련 강의를 찾았고, 책을 찾아보고 즉시 결제했다. 그러다보니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을 두 번 듣게 되고, 정작 필요한 내용은 아주 짧은 학습시간이 확보되었다(복습이 길어져 새로운 개념을 배울 힘이 딸렸다). 꾸준하게 배워도 배우는 속도가 느린 이유이다.
그렇다. 사실 초기조건을 잘 파악해야하는 또다른 이유는 최적점에 빠르게 수렴시킬 수 있는 경계조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상황을 분석하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경계조건에 반영하여 최종적인 삶의 목표로 더 빠르게 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계조건이 수렴의 방향이 아니라 아무 패턴 없이 계속 달라지는 값이라면 최악의 상황에는 수렴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언제나 삶을 치밀하게 운용할 수는 없으니 이를 포기하고 발산하여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는 길을 즐기는 태도도 괜찮은 인생철학이라고 생각한다만, 인생계획과는 거리가 먼 얘기니 이만하겠다.
어찌 되었든 경계조건은 최종 수렴되는 모양을 결정한다. 세상의 경제가 우상향 한다는 전제가 참이라면 매월 100만 원씩 거대 기업에 10년간 투자하겠다는 경계조건은 경제적 자유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세상의 경제가 죽을 때까지 우상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렇길 바랄 뿐이다. 위와같이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의 우상향하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상수로 취급한다. 상수라는 것은 시스템 전체에 계속해서 같은 값으로 영향을 주다보니, 시스템은 이를 포용해야한다. 만약 인생계획을 이에 민감한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있다면 인생이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가령 키가 150인데 시스템을 이에 민감한 센터 포지션 농구선수가 되는 길로 구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혹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상향한다는 사실을 잘 이용하면 때부자가 되겠지만, 상수라 생각했던 값이 변수가 되는 순간 아주 불안한 시스템이 된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시스템 자체에 최적점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있다. 이것은 그냥 순전한 신념이고 믿음의 차원인지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각 조건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삶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성장에 대한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점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어떤 이의 시스템은 현재의 만족을 위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이의 시스템은 미래의 만족을 위해 어느 시점까지는 고통을 감내할 기능이 있을 수도 있다. 어느 것도 옳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최적점을 위해 달리는 것이며 그 최종 최적점이 자신이 만족하지 않는 위치라면 적어도 미래의 만족이라는 변수의 오차를 예측해내지 못한 것이고 누구를 탓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정확도(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공학자의 미덕이니,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공학을 배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만족하지 않더라도 만족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거고, 그게 아니라면 공대생으로서 취직의 문이 넓어져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경계조건을 단단히 매어 인생을 수렴시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