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비 파크 Nov 20. 2022

스무살 넘어 처음으로 극장에 만화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극장판 짱구[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를 보고 성과주의를 생각하다



누구나 어렸을 때 꿈꿨던 세상이 있다.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며 살아가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친절함으로 타인을 대하는 착한사람이 결국 이기는 권성징악의 세계. 그것들이 모두 동화같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아갈때 쯤 우리는 소주의 맛을 알아가고 슬슬 흰머리가 늘어간다. 만화영화에는 아직 우리가 어렸을 적 꿈꾸던 세상이 있다. 정의가 언제나 이기고 순수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에서 짱구와 친구들은 엘리트 학교인 '천하떡잎학교'에 일주일 체험학습을 간다. 천하떡잎학교는 품행, 태도, 모든 성적등이 실시간으로 숫자로 매겨지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숫자에 따라 계급이 매겨지며 계급에 따라 점심식사 메뉴가 달라지기도 하는 등 삶의 질이 결정된다. 천하떡잎학교는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살아가는 현실세계를 적나라하게 옮겨놓은 듯 했다. 효율성에 집착하는 성과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철수는 그런 천하떡잎학교에 매료된다. 점수를 빨리 얻어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반면, 짱구는 계급사회에서 한발 떨어져 느긋한 인생을 즐기는 엉뚱한 캐릭터다. 두 인물은 마지막에 극한으로 대립하며 달리기 시합을 벌인다. 엘리트가 되고싶어하는 철수와 속편하게 사는 짱구. 마지막 레이스에서 둘의 대화가 참 인상깊다.



철수는 미래를 부지런히 일구어나가 엘리트가 되고 싶어 한다. 반면, 짱구는 눈앞에 있는 현실을 제대로 즐기고 재밌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둘의 대립은 마치 내안에 존재하는 두개의 자아를 보는 듯 했다. 나는 철수이기도 하고 짱구이기도 하다. 나는 철수처럼 이 정글같은 도시의 시스템에서 살아남고 싶고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물질적 욕구가 충만한 현실주의자다. 동시에 짱구처럼 나만의 동화같은 세상을 늘 꿈꾸며 철없이 소년같은 마음으로 느긋하게 살아가고 싶은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철수처럼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노력하며 무언가를 일구어 나가고 싶은 것도 나고, 짱구처럼 지금 이순간을 즐기며 생각없이 살고만 싶은것도 나다.



영화는 성과주의와 엘리트주의 사회 속에서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청춘을 응원한다. 우리 모두는 철수 같기도 하고 짱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청춘을 이렇게 묘사한다. "청춘은 파이어와 같은 열정이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고 사랑이자 콤플렉스이며 후회이고 고독이며 의리이자 인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청춘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동화같은 삶을 꿈꿀 때, 만화영화가 있다. 공평하고 평등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 착한 사람이 대접받고 나쁜 사람은 벌받는 세상. 어린 시절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이 되었다. 미래를 고민하며 현실적인 고민에 둘러 쌓인 삶이라해도, 지금을 즐길 자격은 충분히 있다. 내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거였는지, 나이듦에 생각한다. 지금을 조금 더 즐겨도 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