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비 파크 Dec 29. 2022

낮술의 기하핰

성실하게 꿈을 쫓으면서도 낮술 한잔의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



요즘 즐겨보는 콘텐츠가 있다. 낮술의 기하핰. 뮤지션 장기하가 지방 소도시에 가서 혼자 낮술을 하거나,친구들과 소소한 수다를 떨며 낮술을 하는 아주 심플한 영상이다. 대단한 이벤트나 기획은 없다. 단지 장기하라는 사람이 낮술을 하면서 풍류를 즐기고 그때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추천한다. 컨디션 스틱이나 데일리샷 같은 적당한 PPL이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별거 없는 이 콘텐츠가 좋다. 정확히 말하면 장기하라는 사람이 주는 바이브가 좋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거 같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가 낮술을 하는 동안 한적한 시골동네와 어우러지면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은근한 힐링이 된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곳의 음식과 술을 페어링 하는 재미를 느끼고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는게 콘텐츠의 전부다. 정갈하고 소박한 즐거움이다.


낮술의 기하핰은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어서 좋다. 장기하는 식당에 갈 때마다 은근히 예의 바르게 식당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섞는다. 그는 연예인임을 내세우지 않고 오버하지 않으며 담백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과한 리액션 없이 말을 예쁘게 하는 역량도 가졌다. 바람 선선한 연극촌 앞 밀양식당에서의 장면을 보면 그의 그런 특성이 잘 묻어난다. 이 콘텐츠가 나에게 힐링을 주는 요소중에 하나다.

 

 

“이거 묵고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지 마이소”

 

“알겠습니다, 노력 해보겠습니다”

 

 

잔잔한 풍경과 어우러지는 뮤직 페어링도 이 콘텐츠가 주는 은은한 재미의 요소다. 햇살이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한적한 시골 식당에서 조용히 음식과 술을 즐길 때 빌 위더스의 Lovely day 와 같은 아날로그한 음악이 페어링 된다. 음악 선곡도 항상 이 콘텐츠와 결이 맞게 모나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이 모든것이 자연스럽다.

 

낮술 콘텐츠에서 당연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낮술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왜 장기하를 낮술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아마도 낮술이 가진 망중한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남들은 일하고 있는 낮 시간에 술을 마시는 사람은 놈팽이거나, 해야할 일을 미리 끝내놓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매력적인 모습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장기하는 후자에 가깝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도 해낼 것을 다 해내는 사람. 그가 즐기는 낮술은 보상에 가깝다.

 

장기하는 묵묵히 잘 해내는 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 '앨범모드'라는 요란한 떠벌림 없이도 오랫동안 한국 음악사에 길이 남을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이끌어 왔고 개인 단위 작업물에서도 큰 거부감없이 즐길만한 오리지널리티를 잘 보여줬다. 글쓰는 일에도 열심이여서 그의 첫 에세이 [상관없는거 아닌가?]에서도 단순히 유명해서 잘 팔리는 책이 아닌 장가하만이 쓸 수 있는 수준급의 에세이 실력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장기하가 보여주는 낮술은 열심히 살면서도 망중한의 여유를 잃지 않는 삶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낮술의 기하핰 같은 바이브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부단히 성실하게 내 할 일을 해나가면서도 낮술 한잔의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 대단한 기획과 이벤트 없이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콘텐츠를 보면서 삶의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내년에는 또 목표한 일들을 차근차근 이뤄내고 싶다. 그리고 수고한 내 자신에게 낮술 한잔 풍류의 시간을 선물로 줄 것이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오늘도 그저 별일 없이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