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모부신 저, 투자 실력은 과연 공부하면 늘까?
투자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질적으로 갖고 있던 의문이 있다. "투자란 과연 공부하면 향상되는 종류의 분야일까?" 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하면 당연히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융업에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본질적으로 훈련을 통해서 양성되는 존재다. 경험을 통한 능력의 축적 효과를 누리기 때문에 '전문가'라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지. 만약 그게 안된다면 전문가는 존재할 수 없다. '로또 당첨 전문가' 웃기지 않은가. 그런데 조금 더 공부하고 난 후부터는 이게 정말 향상되는 것이 맞나? 싶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장 대학에서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통해서 시장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전문 '머니매니저'들 또한 장기간 지속적으로 탁월한 실적을 기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워런 버핏이었으니까, 워런 버핏이나 존 템플턴 등 장기간 시장을 이기는 위대한 투자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매우 소수이기도 하고 그정도 소수라면 아예 태어날 때부터 "주식재능"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드물게 선천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까지 들었다. - 물론 지금도 선천적인 기질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한동안 투자에 대한 흥미가 확 죽어버렸던 시기도 있었다. 아예 선천적으로 재능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뭐 굳이 공부를 해야겠나 싶기도 하고, 나도 뭐 그리 못난 수익률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에 나올만큼 탁월한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거둘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서 난 그 선천적인 재능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분야를 파 봐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몇몇 투자 대가를 만났다. - 물론 책으로, 그리고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
벤저민 그레이엄과 찰리 멍거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다들 알다시피 가치투자의 아버지, 창시자라는 소리를 듣는 대가다. 근데 그레이엄은 선천적 재능이 투자 실력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수익기회를 모색하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레이엄의 조언만으로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 투자 능력을 건전한 투자관과 철저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믿겠다. 그런데 그 분석력이라는게 과연 공부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만약 그 분석력이 공부를 - 독서 등 -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접근 방법을 완전히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암울한 것은 어디서 그런 경험을 쌓고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투자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투자회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투자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당장 버핏의 버크셔나 트위디 브라운 혹은 소로스의 퀀텀 펀드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 물론 그래도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1학년 때 바로 인턴십부터 했다. - 그리고 교육을 받자고 학교를 가자니 이것도 좀 애매하다. 학교의 - 정확히는 학계 - 입장은 "시장을 장기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는데 가서 "알려주세요" 한다고 무슨 답이 보이겠는가. 그래서 또 잠시 방황했다.
그때 찰리 멍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의 동업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 경영 동업자, 사업 동업자는 주주 모두니까. 나도 버핏 동업자다 훗 - 나도 처음에는 그냥 그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버핏에 대해서 파고 들다가 멍거라는 인물을 접하면서 그저 "워런 버핏의 동업자" 정도로 불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의 "정신모형 접근법"에 아주 흠뻑 매료되었다. "와! 이거다." 싶었다. 그야말로 인간 백과사전이 되어서 분야별 지식을 융합해서 훨씬 탁월한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모델이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어디가서 수술하거나 약을 먹어서 만들 수 있는 모델은 아니고, 스스로 책을 봐서 머리에 채워 넣는 방법으로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 - 환상적이다! -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진짜 글이란 글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읽고 있다. 물론 아직은 찰리 멍거의 정신모형 접근법의 'ㅈ' 정도 맛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진보하고 있는 것을 과정에서나 결과에서나 조금씩 느끼고 있어서 그후부터는 공부하는게 아주 즐겁다.
굉장히 썰을 길게 풀었다. 근데 길게 푼 이유가. 사실 이게 이 책의 핵심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모부신은 <산타페 연구소>라는 복잡계 연구기관의 회장으로 있는 사람이다. - 물론 대학교수이기도 하다. - 그런 그가 찰리 멍거의 정신모형 접근법의 방법론에서 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여러 분야가 아주 뒤죽박죽 섞여 있다. 심리학 등은 당연하고 거기에 통계학, 프랙탈 이론 등 물리학, 개미의 행태 등 생물학까지 정말 온갖 분야의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그래서 저자인 모부신 본인도 아예 서문에서 이 책은 굳이 책의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그냥 읽고 싶은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정말 다 섞였다. 근데 그 섞인 모든 이론과 개념 그리고 생각들이 전부 투자라는 한 분야를 향하고 있다. 그야말로 찰리 멍거의 정신모형 접근법의 요약판이다. 물론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찰리 멍거의 정신 모형 같은 수준의 모형을 갖을 수는 없다. 그저 틀을 갖게 되는 정도다. 다 읽고나서 독자들이 할 일은 이제 각 분야별로 점점 더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면서, 더 많은 지식들로 범위를 넓혀서 머리에 300페이지 짜리가 아닌 300,000페이지 짜리 자신만의 백과사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뭐 막막하긴 한데, 죽기 전에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말했다시피 이게 그냥 각 장이 다 따로 놀아서 요약을 하거나 추려내기는 좀 어렵고 간단히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나 소개 정도만 해보겠다.
책의 목적성 자체는 '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보다 더 나은 투자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 맞춰서 저자는 투자철학에 대한 소개, 투자 심리학에 대한 소개, 혁신과 경쟁전략에 대한 이야기, 과학과 투자 그리고 복잡계 이론 이라는 네 가지 큰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우선 투자 철학 부분에서는 역시나 리스크와 불확실성, 그리고 예측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서 인상 깊은 부분은 빈도에 대한 부분이다. "내 포트폴리오의 종목 중 51%가 상승하면 좋을텐데" 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맞는 소리처럼 들린다. 근데 정말 맞는 소리다 - 타격 당하는 소리 - 결국 투자라는 분야 자체가 불확실한 분야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기댓값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내 포트폴리오의 종목 중 51%가 상승" 해봐야 다 1%씩 오르고 한 종목이 휴지되버리면 - 비중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 내 포트폴리오는 손해를 본다. 기댓값은 '예상빈도(확률) * 결과값' 이다. 여기서 빈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큰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하게 기댓값을 기준으로 생각하자. 이런 생각은 정규분포와 펫테일 분포의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그거까지 전부 쓰려면 너무 길어지니까. 직접 읽어보시라.
그리고 기대효용이론과 전망이론을 비교해준 부분도 재미있었다. 기존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과 행동경제학의 전망이론의 차이를 '의사결정의 틀의 넓이의 차이'로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다. 기대효용이론은 이익과 손실을 투자자의 총량적인 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고 - 당연히 합리적이다. 애초에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니까. - 전망이론은 손익을 부의 제한적인 요소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특정 주식이나 특정 포트폴리오의 가격이 변화하듯이 말이다. - 당연히 비합리적이고, 현실에서 인간은 비합리적인 때가 많으므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해준다. - 이 개념은 다시 '시간 지평'에 따른 투자자의 효용과도 관련이 된다. 주식시장이 연간 10퍼센트의 기하평균수익률과 20.5퍼센트의 표준편차를 보인다고 가정했을 때, 시간 지평의 길이가 1시간인지 100년인지에 따라서 - 책에서 표로 1시간부터 1일 1주 1개월 1년 10년 단위로 쪼개서 보여준다 - 투자자의 효용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 지 계산해서 보여준다. 결국 시간 지평이 짧아지면 (-)효용에 노출되고, (-) 효용은 스트레스를 의미하므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이건 이전에 나심 탈레브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걸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본지가 기억이 안나서 인용을 못한다.
그리고 투자심리학 부분에서는, 다 재미 있긴 했는데 "스트레스와 함께 굿모닝"이라는 장이 기억에 남는다. 얼룩말은 왜 궤양에 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리스크 판단력>의 내용과 일맥상통 하는 분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요컨대, 현대 인간과 얼룩말의 차이는 물리적 위험에 대한 단기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느냐, 혹은 정신적 위험에 대해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느냐에 차이에 기인하는데,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지금의 얼룩말처럼 물리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대해서 여전히 얼룩말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데, 노출되는 스트레스가 변하면서 얼룩말보다 훨씬 큰 대가나 피해 - 위궤양- 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다. - 진화가 문제다! 진화가! - 이에 대해 다시 투자지평의 관점에서도 살펴보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혁신과 경쟁전략 부분은, 좀 암울하다. 젠장 앞으로 기업들은 더 짧은 초과이익만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요점이다. 그래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타이거우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하는 '적합성 지형'에 대한 부분, 그리고 PER의 오류에 대한 부분이었다. 적합성 지형에서는 이걸 기업의 혁신과 엮어서 풀어내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마지막 과학과 투자 그리고 복잡계 이론이라는 부분에서는, 우선 왜 시장이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개미의 두뇌, 벌의 행태 등 군집화의 효과에 관점에서 설명한다. 물론 시장이 비합리적인 패닉과 과열을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합리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이야기일텐데 왜 합리적일까?에 대해서 다른 분야의 사례를 통해서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자기조직 임계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건 복잡계 이론에 대한 부분인데, 요점은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가 일정 임계 수준에 이르면 자기조직적으로 방향성을 찾아간다는 것인데,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그 외에도 파워법칙에 대한 부분, 라플라스의 악마를 통해 시장에서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하는 행태의 문제점 - 대부분의 변동성은 이유가 없다. 미친 놈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같이 미치는 수 밖에 없으니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그리고 앞에서 다룬 팻 테일에 대한 부분이 투자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파워법칙과 함께 설명하는데 '첨도가 높다'라고만 들을 때와 이해의 깊이가 다르다. 재미있다!
쓰고보니 엄청 어수선한 서평이다. 근데 이건 책이 원래 어수선해서 어쩔 수 없다. - 본격 책에게 책임 떠넘기기 - 근데 어수선하고 복잡해서 어떤 명확한 경향이나 규칙성을 찾기 힘든건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현실도 마찬가지라서, 오히려 이런 무질서함에 익숙해져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도 든다. 뭐 항상 그렇지만 - 애초에 책 상태가 별로면 서평을 안쓰고 책을 중간에 접으니까 - 역시 추천한다.
P.S 아 그런데 이 책이 안타깝게도 아마 절판되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More than you know> 라는 원서로 읽었고, 우연히 한역판 도서를 구해서 한국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원서도 영어 수준이 엄청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고, 원서는 도저히 싫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중고 서점을 잘 찾아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