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그린블라트 저,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
제목을 뭐라고 붙여볼까 고민하다가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인데 따로 부제를 붙여야 하나 싶어서 그냥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이라고 명명했다. 진지하게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조엘 그린블라트의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이라는 저자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본 이익률과 이익수익률의 조합을 통해서 투자종목을 선정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시장을 크게 초월하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처음 그 책을 읽은 것이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1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충격적이라서 반쯤 "이거 꾼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했었던 기억이 있다. 분명 흥미로운 방식이긴 해서 HTS와 엑셀로 코스피 종목 순서를 구해서 30개 종목을 월 주기로 리밸런싱 하면서 따라 해 봤는데 꽤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반신반의하면서 한 투자라서 금액이 적어서 절대적인 금액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금액이었지만 수익률 자체는 시장지수보다 높았었다. 물론 수익률도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배움과 경험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어서 - 수익률 자체도 따로 고른 포트폴리오가 더 높긴 했었지만 - 지금은 마법의 공식대로 투자를 하고 있진 않지만 저자가 꾼이 아니라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저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알아봤는데, 알고 보니 '꾼' 취급당할 분이 아니었다. 와튼 MBA 출신에 고담캐피탈이라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면서 20년간 연 40% 가까운 수익을 꾸준히 거둬온 그야말로 투자의 대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 후부터는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이라면 별 고민 없이 사서 보는 편이다. 그래 봐야 <주식시장을 이기는 큰 비밀>과 이번에 읽은 <주식시장의 보물찾기> 정도 수준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자는 청담동 누구 같은 꾼 아니다. 그러니 책의 내용 믿어도 좋다. 시장의 트랙 레코드와 그의 커리어가 보증한다.
<주식시장의 보물찾기>라는 책 자체는 합병, 기업분할, 구조조정, 유상증자 등 이른바 이벤트에 따른 투자법을 다룬 책이다. 이런 이벤트에 대한 투자는 수많은 투자 대가들이 좋아하는 투자 중 하나다. 워런 버핏 또한 그의 며느리인 메리 버핏이 공저자인 <워런 버핏의 실전주식투자>에서 워런 버핏이 파트너십을 운영할 당시 담배꽁초 투자로 수익이 잘 나지 않을 시기에는 여러 가지 아비트리지 거래를 통해서 수익률을 관리해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워런 버핏이라고도 불리는 바우포스트 그룹의 세스 클라먼 회장 또한 이런 아비 트리 지성 투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바우포스트 출신의 스타 펀드매니저 -인데 역설적으로 은둔형 매니저 중 하나인 - 데이비드 에이브람스는 아예 부실채권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검증받은 투자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기간 높은 수익을 보여주는 투자 분야는 당연히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이런 이벤트성 투자의 경우에는 진입장벽이 더 높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합병, 기업분할, 구조조정 같은 분야는 뉴스에서 봐도 머리가 아픈데 이걸 이용해서 내 돈을 투자하라니 읽기 전부터 겁부터 난다. 근데 역시 투자철학을 너무 쉽고 명료하게 밝혀서 "꾼 같은" 조엘 그린블라트는 이런 이벤트성 투자에 대한 설명 또한 쉽고 재미있게 써 주었다.
우선 왜 이런 이벤트성 투자가 높은 수익을 자랑하는지 이유부터 밝힌다.
1. 이런 이벤트성 투자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보유자가 원해서 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딸려온 부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관투자자를 비롯해 많은 투자자가 일단 던져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대체로 가격이 싸다. - 가격이 싸면 당연히 잠재적 수익 기회가 존재한다 -
2.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딸려온 부산물'이 생각보다 가치가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면 과매도로 가격이 하락한 자산이 제 가치로 회복되면서 수익이 발생한다.
이런저런 다른 이유를 서술하는 부분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요점은 이렇게 두 가지다. "가치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분야고, 어쨌든 가치를 회복하니까 수익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1. 기다리는 것이다. - 일단 그런 물건이 나와야 뭘 하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는가 - 2. 그런 물건이 나오면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싸다 싶으면 사고, 아니면 패스하는 것이다. - 우린 굳이 항상 투자해야 할 필요가 없다. - 3. 이왕이면 잘 알아서 확신이 드는 물건을 기다리는 것이 수익률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정도다. 자세한 상황별 방법론은 저자가 아주 친절하게 - 개념 설명해주고, 방법론 설명해주고, 실제 사례로 확인까지 시켜주는 - 설명해주니까. 거기까지 내가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조엘 그린블라트의 이벤트성 투자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단도 투자"로 유명한 모니시 파브라이의 "잃을 때는 조금만, 벌 때 왕창"이라는 단도 개념이 떠올랐다. 이벤트가 발생해서 과매도 구간에 들어간 금융상품은 사실 더 나빠질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 그리고 그런 상품만 투자해야 한다. 그린블라트도 책에서 분명하게 언급한다. 잠재 수익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 그런데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의미는 만약 '뜻밖의 상황'이 - 생각보다 자주 벌어지는 - 벌어지면 큰 수익을 선물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의 투자는 원래도 내가 좋아하는 투자이기도 해서 꽤 인상 깊었다.
또한 버핏이 애용한 리스크 아비트리지 기법이 이미 너무 높은 경쟁 수준으로 인해서 수익 기회는 별로 크지 않으면서, 위험만 높기 때문에 절대 하지 말라고 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증권분석이나 버핏 관련된 책을 보다 보면 꼭 나오는 개념이 리스크 아비트리지라서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곧 잘 했었는데, 그린블라트가 자기 돈으로 비싼 수업료 내면서 배운 경험을 통해 그런 생각을 단념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책값은 한 것 같다.
아쉬운 점은 꼽아보면, 미국인 저자의 미국 시장에 대한 책이라는 점이다. 물론 큰 방법론 자체는 한국시장이나 미국 시장이나 큰 차이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것저것 친절하게 참고할 보고서의 종류, 사이트, 책들 등을 추천해주는데 만약 한국인 저자 분이 쓰셨다면 저런 부분들도 다 유용한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아쉽다. 이점 빼고는 전체적으로 흠잡을 곳 없는 책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역시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답게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 동시에 구체적이면서 실용적이다. 그리고 이건 조엘 그린블라트의 책이 아니라 저자의 특성인 것 같은데 투자 방법론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고 쉽다. 예컨대, 기업분할 부분에서 분할 기업의 가치를 예상할 때 고차원적인 재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해당 사업부의 순이익과 업종의 평균 멀티플을 곱해서 단순히 계산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한 예상 가치와 현재 가격을 비교해서 싸면 사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 접근법인가,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꽤 많은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본질은 정말 간단하다. -그래서 조엘 그린블라트 책을 보면 "오! 투자 개꿀! 하다가 막상 해보고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 - 이런 명료한 방법론은 저자 본인이 얼마나 '투자'라는 행위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역시 실망스럽지 않은 좋은 책이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