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읽다가 문득 하이에크, 미제스, 프리드만 등 경제학자들이 안타까워졌다. 그들을 존경하며, 그들이 남긴 철학과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위대한 철학자들을 필터링의 대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위대한 학문적 업적이나 사상을 남긴 인물들이 불반도에 끌려와서 참 많이도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서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에 극으로 가면 틀린다. 세상은 단순계가 아니고 복잡계이며, 정적계가 아니고 동적계이기 때문에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모든 상황에 답이 되어 주는 것이 매우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사상가들이 던진 극과 극의 철학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가의 극으로 간 철학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명 틀린 철학이지만, 극과 극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조금 덜 틀리는 방식으로 진보해나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 미제스의 경우도 그렇다. 그들의 자유주의 정신은 공부해야 한다. 극단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의미가 있는 물음이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가져와서 세상에 적용하려고 하면, 그건 좀 많이 틀린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미제스와 하이에크가 살던 시대는 GDP의 현대적인 개념도 나오기 전의 시대다.(현대적인 GDP는 Simon Kuznets에 의해서 1937년 등장함. 환경오염 다룰 때 나오는 Kuznets curve의 그 사람 맞다.) 당연히 어떤 주장을 할 때 충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치기에는 데이터도, 그 데이터를 다룰 도구도 턱 없이 부족한 황량한 시대였다. 계량경제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나왔고, 개념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도구들이 갖추어진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20세기 이전의 경제철학자들이 던진 사상과 가르침은 울림은 있으나, 너무 투박하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투박한 사상을 던졌다고 위대한 그들을 욕할 까닭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는 것을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욕을 먹어야 할 대상은,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내놓은 사상과 이론을, 충분히 검증하고 다듬을 수 있는 자료와 도구가 갖추어진 21세기에 살면서 20세기 이전의 이야기를 그대로 뱉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경제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회에 이야기를 던지고, 누군가를 비판할 때에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간 수많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다듬고, 검증해온 결과물은(최신판 경제학 교과서, 논문) 숙지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