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저, 매크로 트레이딩을 위한 기본서
전 이 책의 제목의 단어들 잘 맞지 않는 편입니다. 일단 '매크로' 거시경제 지표를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내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별 기업 단위로 확실하게 싸다 싶으면 사고, 알쏭달쏭하면 다른 기업을 알아보는 편입니다. '스윙' 맨날 보는 게 책이고, 책 외에 보는 것이라고 해봐야 1년에 한 번 나오는 사업보고서 정도만 봅니다. 주가 확인도 드물게 하는 편이고, 그 드물게 확인하는 종목 자체도 굉장히 적은 숫자라서 스윙 기회를 포착할 부지런함이 없습니다. '트레이딩' 트레이딩을 못해서 큰 방향성만 보고 기다리고 스트레스받으면서 투자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게으른 편이라서 '트레이딩'을 할 정도로 부지런을 떨지도 못하고 간이 작아서 가끔 트레이딩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하면 꼭 실수를 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제목을 이루는 단어들과 참 상극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저자가 트레이더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트레이더' 출신 저자들의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트레이딩을 해야 하는 트레이더들의 경우 자신만의 분석 체계, 논리체계가 꼭 필요해서 그런지 글의 논지가 명확합니다. 그래서 트레이더 출신 저자가 쓴 책은 읽고 난 후에 감상이 명확한 편이라서 일단 좋습니다. 또한 밥 먹고 하는 일이 트레이딩이라서 그런지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해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접 시장에서 거래를 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편이기 때문에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장에 대해서 근거가 되는 사례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고 현장감 있게 글을 쓰는 경향이 짙어서 트레이더 출신 저자의 책이라면 일단 읽고 보는 편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제목의 단어 중 뭐 하나 잘 맞는 단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더 출신 저자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역시 저자의 약력은 책의 성격에 관한 좋은 신호가 된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책은 글로벌 금융시장, 그리고 그 시장의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부분과 그래서 그걸 실제로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를 다룬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시장 참여자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은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금융위기에 대해서 논하면서 CDS, 대차대조표 불황, 재정적자, 출구전략, 무역 불균형 문제, 민스키의 금융 불안 정론, 옵션과 헤지펀드라는 주제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차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해서 명확한 데이터와 논리 그리고 이론을 제시하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CDS를 다룬 부분과 대차대조표 불황 그리고 녹아웃 옵션에 대해서 다룬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민스키의 이론이나 재정적자,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은 앞서 읽었던 <광기, 패닉, 붕괴> 혹은 폴 크루그먼의 저작을 통해서 이미 지겨울 정도로 접해서 그런지 비교적 새로운 CDS, 대차대조표 불황, 그리고 옵션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CDS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하면 "세상에 '나쁜' 금융상품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CDS를 "2008년 금융위기의 원흉"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금융 상품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강제로 거래하도록 하는 게 아닌 이상 매수자와 매도자 상호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거래가 체결되기 때문에 "나쁜"이라는 가치 판단의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상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그런 상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와 그런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것이지, 누군가 "나쁜" 생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식도로 연쇄 살인을 하는 흉악범이 나타난다고 해서 식도가 '나쁜' 상품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느낀 점은 "역시 공포 팔이에 당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하고 자료를 봐야 한다"라는 점입니다.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당시 "CDS 신용위험 60조 달러 규모로, 천문학적인 수준" 따위의 글을 본 기억이 있었는데 저자 분이 차분하지만 명확한 논리로 그런 공포 팔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꼬집어주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CDS는 계약을 체결한 후에 그 계약을 취소함으로써 위험을 헤지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경제적 효과를 내도록 CDS를 거래함으로써 위험을 헤지 하기 때문에 거래 규모 중 실제 신용위험이 되는 부분은 전체 규모보다 작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그리고 전체 CDS 중에서도 부도율을 감안해서 - 이 경우 저자 분은 10% 수준을 제시 - 부도율에 노출되는 수준 정도가 실제 신용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꼬집어 주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차대조표 불황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대차대조표 불황이라는 용어 자체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 이젠 20년인가요 - 을 이야기할 때 정말 자주 사용되는 용어라서 익숙한 편인데 실제 그 개념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차변과 대변 - 자산과 부채 - 에서 자산은 버블 붕괴로 가치를 크게 상실했지만 의무인 부채는 변하지 않으면서, 차변과 대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제 주체들이 부채상환에 몰두하게 되고, 이런 쏠림이 곧 경기 침체 나아가 불황을 촉발시킨다는 개념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부분이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채 상환 쏠림으로 지출이 위축되는 대차대조표 불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 누군가는 지출을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결국 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점과 연결되면서 불황 -> 재정정책 필요성 증대라는 연결 고리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진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옵션, 녹아웃 옵션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배리어 옵션과 트리거 옵션에 대한 개념 설명 - 녹아웃 옵션과 녹인 옵션 등 - 등은 옵션에 대해 무지한 제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이렇게 쪼개진 옵션 - 녹아웃, 녹인 - 의 경우 일반 옵션이 하나의 변곡점을 갖는 것과 달리 여러 개의 변곡점을 갖게 된다는 부분 등이 재미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래프도 그려보고 관련 책도 찾아보면서 유익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특히 더 좋았습니다.
이렇게 금융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제시한 후에 저자는 "그래서 한국에서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책이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바이 앤 홀드 전략으로 좋은 실적을 거두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MA크로스오버를 이용한 양방향 인덱스 투자를 통해 트레이딩 관점에서 접근하라"라는 것입니다. MA(이동평균) 크로스오버 전략에 대한 설명이나, 기술적 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등을 제시하는데 제 경우 기술적 분석에 대해서는 아예 공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서 더욱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차트의 패턴을 찾거나 특정 신호를 추적하는 등의 기술적 분석에 대해서는 좀 부정적이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MA크로스오버 전략 등은 '묻지 마 식 기술적 분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와 수리적 방법론을 이용한 경제학 모델에 가까운 느낌이라서 거부감이 훨씬 덜한 편이었습니다. 저도 사실 아직 완전히 이해하고 숙지한 것은 아니라서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책을 참고하시길 추천드리니다.
다만 저자가 제시하는 시장 흐름을 판단하는 여섯 가지 방법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1. 시장의 모멘텀은 강세인가 약세인가 중립인가 2. 시장의 화두, 초점 그리고 테마는 무엇인가 3. 경제 지표를 읽고 경제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라 4. 수급과 투자 심리를 파악하라 5.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라 6.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싼 지 비싼지를 고려하라]라는 6가지 기준입니다. 구체적으로 각 기준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예컨대, 모멘텀 파악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뉴스가 나왔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상승 추세라면 강한 모멘텀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던가, 경제지표를 해석할 때 중요한 건 절대적 수치보다 컨센서스를 상회하냐 하회하냐의 여부라던가 하는 것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사실 생소한 분야에 생소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책이라서 읽으면서 진땀을 좀 빼기는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기분이라서 독서를 마친 후에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책의 두께는 얇은 편인데 글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고, 그래프 등도 그려 보는 등 독서의 과정이 다소 험난했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볼 때 더 뿌듯했습니다. 제가 기술적 분석이나 매크로 트레이딩에 대한 지식이 아주 일천해서 솔직히 아주 탁월합니다! 혹은 정말 탁월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지식이 짧아서 논리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근거가 명확한지 아닌지 등을 따지면서 읽어 본 바로는 꽤 유익하고 배울 것이 많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200 MA크로스오버 전략은 따로 증권계좌를 개설해서 주 계좌와는 별도로 따로 운용을 해볼 생각입니다. 뭐 언제나 그렇지만 - 사실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손절을 해버리고, 서평도 안 올리는 지라 서평을 올리는 책은 대부분 추천하는 책입니다. - 강추합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