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P. 그라이너 저, 퀀트 투자의 정석
[벤저민 그레이엄의 정량분석 QUANT - 스티븐 P. 그라이너]
[퀀트 투자의 정석]
오랜만에 서평을 작성합니다. 얼마 전 포스트를 통해서 알린 바와 같이 1월 말까지 12권의 서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가능할지는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스티븐 P. 그라이너의 <벤저민 그레이엄의 정량분석 QUANT>라는 책입니다. 증권분석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 철학을 계량분석적 방법론을 통해서 따라가 보는 책입니다. 가치투자 철학을 따르는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벤저민 그레이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입니다. 증권이라는 금융상품을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투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벤저민 그레이엄의 철학을 배움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직접 저술한 <증권분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간된 지 수십 년이나 지난 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예시나 사례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은 여전히 현기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투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할 때, 이정표가 되어준 책도 <증권분석>이라는 책이었습니다.
투자의 철학을 세우고 큰 뼈대를 잡는 것은 <증권분석>이라는 책만큼 좋은 책이 없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책이라서 구체적인 예시나 사례를 우리의 현실에 직접 적용해보기가 어렵습니다. <증권분석>이 출간되었던 시기와 현재의 경제 환경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권분석>을 통해서 투자 철학을 세우고 뼈대를 잡은 이후에‘그래서 이 철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단계가 구체적인 투자에 접근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가치투자라는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투자자들이라고 해도, 그 철학을 실천하는 각론에 있어서는 방법론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양한 투자 방법론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고민을 해보아야 하는 첫 번째 부분은 투자자 자신의 능력 범위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성적 분석을 하고 집중 투자하는 스타일의 방법론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재무자료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회계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숫자 너머 경제적 실질을 추론해볼 수 있는 산업, 기업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심리에 대한 부분을 공부해서 정성적 분석을 통해 집중 투자하는 스타일의 방법론으로 투자를 실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계나 재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경제/산업/기업의 환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나갈 생각이 없다면 정성적 분석을 통해 집중 투자하는 스타일의 방법론은 잘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투자 방법론은 정말 다양합니다. 당연히 그런 분들을 위한 방법론도 있습니다.
우선 워런 버핏이 추천하는 방법은 S&P500 인덱스펀드를 사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S&P500은 그 자체가 아주 좋은 포트폴리오입니다. 그러니 괜히 그중에서 나쁜 종목만 골라서 사는 우를 범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S&P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S&P500 인덱스펀드를 사실 분들은 아마 제 블로그에서 서평을 보고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직접투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굳이 블로그까지 들어와서 서평을 찾아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회계/재무/경영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계속 공부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왜 제 평생 목표가 ‘주간 최소 500페이지씩 읽기’ 인지 생각해봐 주십시오.) 정성적 분석을 통한 집중투자 방법론은 맞지 않으신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계량적 방법론에 의한 투자를 자신의 투자 방법론으로서 고려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블로그의 다른 책에 대한 서평들을 통해서 밝혔다시피 전 퀀트 투자(정량적 분석을 통한 투자방법론)에 대해서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일정한 기간 이상’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직접 투자를 위해서 공부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투자의 목표가 워런 버핏 정도 되는 주식 부호가 되는 분들은 몇 없으실 것입니다. (계시다면 일단 단념하십시오. 버핏은 신입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엄청난 대부호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고통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제적 문제로부터 고통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상태, 즉 경제적 자유의 달성 여부는 결국 수익률 수준이 아니라 수익금 수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수익금은 장기적으로 복리의 혜택을 누린다면, 적당한 수준의 원금을 확보하고 적당한 수익률을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적당한 수준의 원금은 저축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쉽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당한 수익률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행스러운 소식을 하나 전해드리자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주식이라는 자산은 우리에게 최소한 적당한 수익률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기업의 생산성이 퇴보하지 않는 이상 엄청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은 수익률을 선사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러면 중요한 것은 ‘크게 실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정량분석에 기반한 투자, 즉 퀀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퀀트 투자 방법론으로 투자를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합니다. 최근 퀀트 투자라고 하면, 자꾸 백테스팅을 통해서 과거 수익률이 높은 전략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속칭 '천하제일 수익률 대회'라고 일컫어지는 풍토 말입니다. 그런 방식의 접근은 다소 위험 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과거를 통해 배워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위한 투자를 하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퀀트 투자는 결국 통계라는 방법론에 의지하는 방법론입니다. 그리고 통계학에서 시계열 데이터를 분석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가정이 'stationarity assumption'입니다. 정상성 가정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시간이 흘러도 해당 확률 변수의 '확률분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확률변수의 분포가 바뀌어버리면, 사실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가설을 검증하고, 그 가설이 미래에도 유효하리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학문적 논의 전개를 위한 '가정'입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현실에서는 정상성 가정이 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과거 백테스팅 결과만 갖고 수익률 높은 전략을 선택하는 방식의 퀀트 투자는 암묵적으로 주가라는 확률변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확률분포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공격적인 가정을 해야 유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고, 이론이 말해주듯이 주가라는 확률변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확률분포가 완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변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정량분석 QUANT> 같은 책을 보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투자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벤저민 그레이엄의 아이디어를 실제 모형으로 만드는 과정 전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관련 개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떠올린 어떤 투자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량화하고, 그 효과를 검증해서, 실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큰 흐름을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정량적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집중투자 스타일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런 방식의 투자가 당장은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학습'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탁월한 결과를 선사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대의 이면에는 매주 500페이지 이상 꼭 읽어가면서 제 자신의 역량 자체를 성장시켜나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지만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정량분석 QUANT>라는 책은 퀀트 투자라는 방법론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학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내에서 절판이 된 책이기도 하고, 번역이 워낙 지랄 같아서 원서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