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조선학회 편, 조선산업에 대한 길라잡이
[조선 기술 - 대한조선학회 편]
[조선 산업에 대한 길라잡이]
오늘 서평을 작성할 책은 한국조선학회에서 편찬한 [조선기술]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선박의 개념을 시작으로 영업, 설계, 건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도 아니고 관련 전공자도 아닌 제가 이 두꺼운 책을 사서 읽게 된 이유는, 현대중공업 투자를 위해서 조선산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좋은 교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조선산업에 대해서 공부를 해나가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 자체는 선박과 해양구조물에 관한 기술 전반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1장 선박 및 조선 일반, 3장 선박 설계, 7장 선박 추진기관, 10장 의장 시스템, 11장 선박 건조에 대한 부분입니다.
선박과 조선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1장은 조선 산업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기에 좋았습니다. 선박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현재 한국 조선 업체들의 현황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규모가 대규모이고, 그나마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경우가 많은 조선소에 대한 부분도 좋았지만 특히 조선 기자재 산업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유용했습니다. 사실 업계 관계자 분들이나 전공자 분들이라면 익숙하시겠지만, 비전공자들에게는 조선 기자재라는 것이 확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선가에서 개별 기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어림짐작이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가에서 차지하는 기자재별 비중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각 기자재와 해당 기자재를 생산 공급하는 업체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박의 설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3장은 조선 산업 관련 정보를 해석할 때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3장에서는 취역 항로에 따라서 선박의 제원이 왜 달라야 하는지 이해하는데 필요한 각 운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박의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포스트 파나마 막스급’, ‘파나마 막스급', ‘수에즈 막스급' 등 용어의 뒷배경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벌크선의 항로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주요 자원별 수출입항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철광석'이라는 자원의 주요 항구 중 하나인 호주의 Newcastle의 수출입항 제약 조건이 전장 290m, 폭 47m, 최대 홀수 15.3m, 공 홀수 18.5m 에 이른다는 정보 등이 해당합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국제 해상 운송을 위해서 사용되는 선박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각종 국제 기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줍니다. 국제해사기구에 대한 소개나 선박 설계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IMO 협약, 각국의 주무관청과 국제기구 등에 대한 정보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제가 조선산업에 대한 자료를 공부하면서 올렸던 환경규제(MARPOL, BWMS)에 대한 첫 힌트도 이 부분에서 얻었습니다. 이 밖에도 선급 기준이나 국가 기준 등 선박 설계 단계에서 고려해야 하는 주요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직접 선박을 설계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선주와 조선소 간의 계약 단계에서 주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고 있다면 조선 산업의 미래 현금흐름에 대해서 추정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박의 추진기관 즉 엔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7장은 앞에서 언급된 환경규제와 관련해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LNG 추진 선박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야기되는 대부분의 LNG 추진 선박의 경우 DF 형식의 엔진을 채택합니다. DF는 Dual Fuel 의 약자로서 말 그대로 2가지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MAN 사의 ME-GI 엔진이나 Wartsila 사의 X-DF 엔진이 해당합니다. 천연가스와 벙커C유 연료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의 엔진을 의미합니다. 책이 편찬된 지 시간이 지났고, 이후 개발된 신기술이나 업계의 동향 등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책에 있는 내용만으로 LNG 추진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수의 엔진 제조사에 발간한 기술문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쌓기에는 적당한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다음으로 선박의 탑재되는 각종 설비를 의미하는 의장 시스템에 대해서 다루는 10장이 있습니다. 10장은 기자재 산업에 대해서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단 기자재 산업 자체가 의장 시스템을 비롯해서 선박의 각종 기자재를 제조, 납품함으로써 현금을 창출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선박에 탑재되는 시스템의 큰 형태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기자재 산업을 분석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공기정화설비와 오염 방지설비, 그리고 배관장치에 대한 부분이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선박의 건조 공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11장은 조선 산업의 사업 사이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선 산업은 수주 - 설계 - 건조 - 의장 탑재 - 도장 - 진수 순으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건조 공정은 다시 가공 - 조립 - 탑재 - 후행 의장 - 잔여 공정으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산업의 업무 흐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보통 헤비테일 형태의 계약을 맺는 조선 업계의 관행과 연결해서 각 단계에 있는 기업의 실적이 언제 변화할지 추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헤비테일 형태로 대금을 결제받는 조선소의 경우, 위의 일련의 과정이 전체적으로 끝나야 현금이 다량 유입되기 때문에 시차가 얼마나 될지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재 업체에 투자할 때는, 해당 기자재 업체의 제품이 건조의 어느 단계에서 사용되는지 생각해봄으로써, 대규모 조선소에서 대규모 수주 공시가 나왔을 때 그 실질적은 효과가 언제부터 실적에 반영될지 가늠해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산업 자체의 흐름을 이해함으로써 조선 산업을 바라볼 때 조금 더 사업가적 관점을 가져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가볍게 한번 읽어서 숙지가 될만한 수준의 분량이 아닙니다.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 저 같은 경우에도 벌써 4~5차례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아직도 책을 덮고 기억을 되짚어보면 빠뜨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평에서 언급한 부분 외에도 보다 기술적인 사항도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산업을 공부하는 것이 쉽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밥그릇이 걸려있는 '산업'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어렵고 지겨운 과정이고, 당연히 이 책을 읽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가 될 테지만, 분명히 그렇게 공부를 하고 나면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조금 더 여유 있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같은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려니 확실히 쉽지가 않네요. 서평이 엉망이라고 책도 엉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조선업에 소중한 자산을 투자할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 천천히 공부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