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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lany Aug 07. 2018

#서평 33 통섭과 투자

마이클 모부신 저, 이건 오인석 역

[통섭과 투자 - 마이클 모부신]
[찰리멍거처럼 사고하기]

 정말 오랜만에 마이클 모부신의 More than you know를 다시 읽었습니다. '시장이 어려워서 고전으로 돌아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읽은 것은 아니고, 새로운 역서가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책이었다면, 그리고 다른 역자였다면 굳이 읽은 책을 다시 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원서로 한번 읽었고, 국내 번역서(미래의 투자)로 다시 한번 읽었고, 서평을 쓴다고 다시 읽었으니 3회독을 한 책이라서 웬만하면 다시 안 읽었을 텐데, '마이클 모부신이건, 찰리 멍거'라는 3개의 키워드에 걸리는 책이고, 책 자체가 워낙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중간중간 망각한 부분이 있을 듯하여 책을 펼쳤습니다. 

 읽기 전에는 그래도 여러 차례 읽은 책이니까 금방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투자철학, 투자심리, 경쟁전략, 복잡계 이론이 그것입니다. 각각의 주제는 그 자체만 오롯하게 한 권의 책에 담기에도 어려운 거대한 주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거대한 주제를 4개나 담고 있으며, 심지어 적당한 깊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이후로 공부를 하고 이런저런 경험치를 쌓은 이후에 읽으니 더 버거운 책이 되었습니다. 예전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단락의 내용도, 느껴지는 깊이가 달라서 쉽사리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평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개운하게 읽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중간중간 놓친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 느껴져서 조금 더 읽고 서평을 쓸까라는 고민이 자꾸 들고 있습니다. 다만 이미 3주 이상을 읽은 터라서 더 읽어도 개운할 것 같지는 않아서 나중에 다시 펼쳐보기로 하고 이만 책을 덮기로 하였습니다. 

 3권의 책을 - 원서 More than you know, 역서 미래의 투자, 역서 통섭과 투자 - 읽어본 바, 느껴지는 감상이 달랐습니다. 우선 과거 역서였던 미래의 투자도 읽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라는 생각이 드는 번역은 아니었습니다. 번역의 질이 아주 좋다고 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저자의 의미를 곡해하는 번역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역시 이건 선생님의 역서는 참 좋습니다. 단순히 원서를 매끄럽게 번역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원서를 한국어 사용자가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놓은 느낌입니다. 사실 More than you know라는 책은 정말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규모부터, 그걸 다루는 저자의 수준까지 정말 환상적인 책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벽이 높은 책이기도 합니다. 글이 어렵다거나 내용이 난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다루는 개념의 넓이와 깊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오롯하게 한 권의 책을 소화시키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사상과 논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맥'에 대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을 줄여주는 이건 선생님의 번역서가 참 좋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아주 적어서 딱 내용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말해주는 각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엮어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토막으로 끊어서 하지 않고 계속 이어서 하던 차라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여주는 번역이 정말 좋았습니다.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을 쓴 만큼 서평을 쓰는데도 꽤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를 여러 차례이고, 다 넣자니 책 분량만큼 넣어야 하고, 뭔가를 빼자니 아쉬워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책을 펼치지 않고(책 분량만큼 다 넣을 수는 없으니까), 생각나는 모든 주제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즉, 서평이 퍽 길어질 계획입니다. 따라서 이하 부분은 예비 독자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차라리 책을 직접 보시는 것이 훨씬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서두는 투자철학으로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투자 철학서는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도 블로그의 서평 카테고리로 들어가 보시면 투자철학을 다룬 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의 투자철학에 대한 언급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저자는 투자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투자철학이 의사결정 방법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저는 투자를 시행착오를 적게 거치면서 배운 편입니다. 수업료도 거의 내지 않았고, 중간에 큰 틀에서 투자철학을 바꾼 적도 없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해야 했던 적도 없었습니다. 투자의 세계 자체가 복잡계이기 때문에 투자 실력 자체를 누적적으로 키웠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투자 철학이나 방법론에 대한 지식은 누적적으로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혜택을 본 까닭은, 어렸을 때부터 투자를 시작했기 때문에, 투자금 자체가 아주 작아서 투자 행위를 다양하게 하기 어려웠다는 점과 글 읽는 건 좋아해서 투자 철학서를 왕창 읽었다는 점의 시너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투자 철학서를 열심히 읽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줄 알고 열심히 읽었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당장 돈을 벌려면 투자 철학서가 아니라 회계/재무/산업에 대한 서적을 주로 읽고 '투자대상을 탐색하는 활동'에 집중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투자 철학서를 열심히 읽은 시간은 저에게 큰돈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적당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통섭과 투자의 투자철학 부분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특히 이 책의 투자철학 부분을 열심히 본다고 해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큰돈을 잃을 일을 줄여주고,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허무하게 놓칠 일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의사결정 방식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반가운 소식은, 투자의 세계는 복리의 세계이기 때문에 크게 잃지 않으면서 적당하게 기회를 잡기만 하면 장기적으로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확률적 우위를 이용하는 카지노의 주인이 되라는 말과 투자에 있어서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위와 같이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제 '방법론'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은 결국 '기댓값', '기댓값', '기댓값'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을 기댓값 기반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기댓값이란 '상승확률 * 상승 시 이익 + 하락 확률 * 하락 시 손실'입니다.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은 아주 확실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확증편향을 피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기댓값 의사결정은 '하락 확률 * 하락 시 손실'이라는 요소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의사결정입니다. 즉, 투자 의사결정을 하는 시기에 이미 '하락하는 시나리오'까지 고려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댓값 의사결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업데이트를 할 때, 상승확률/상승 시 이익/하락 확률/하락 시손 실 이라는 4개의 요소를 업데이트함으로써, 결괏값인 기댓값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시간이 흘러도 지속적으로 하락 시나리오를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에 확증편향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여지가 있습니다. 

 중간에 멍거 옹이 '버핏의 장점 중 하나는 의사결정을 의사결정 트리 방식으로 한다는 점'이라는 말을 했다는 인용문이 등장합니다. 전 이 부분에서 평소에 워런 버핏 옹이 '나에게 코카콜라의 시가총액만큼의 돈을 주고 코카콜라를 이기라고 말한다면, 돈을 돌려주면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 내용이 연상되면서, 저 말이 단순히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아주 튼튼하다'라는 맥락의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버핏 옹은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코카콜라와 관련된 하락 시나리오를 고려해본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승 확률'이 아니라 '상승의 기댓값의 크기 (= 상승 확률 * 상승 시 이익)'입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개념 아닙니까? 전 개인적으로 모니시 파브라이의 '단도 투자'에서 '벌 때 왕창 벌고, 잃을 때 조금 잃고'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상승 확률이 얼마인지, 하락 확률이 얼마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결국 내가 맞았을 때 얼마나 벌고, 내가 틀렸을 때 얼마나 날리냐, 내가 틀렸을 때 날릴 금액이 적으면 안전마진이 있는 투자이고 아니면 안전마진이 없는 투자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면 아주 보수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 구조 하에서는 '상방 포텐셜이 높다'라는 것만으로는 투자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방이 얼마나 막혔고, 만약에 하방이 뻥 뚫려있다면 하방의 높이는 얼마나 되느냐를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방이 잘 열린 투자대상을 찾는 것도 퍽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방이 막히거나 하방이 열려도 막상 떨어지는 건 얼마 안 되는 투자대상을 찾는 것은 정말 녹녹지 않은 일이고, 그런 경우만 투자한다면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의 장점은 '원래 주식시장은 기댓값의 세상'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이 높은 주제에 대해서 다루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모든 의사결정은 '기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기대'가 확률이 아주 높고 안정적인 '자산'에 대한 기대인지, 아니면 '이익'에 대한 기대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런 시장에 입문하는 시장 참여자는 철저하게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기댓값을 결정하는 요소들에 대한 자신만의 추정치를 내놓는 일입니다. 앞서 말한 상승확률, 상승 시 이익, 하락 확률, 하락 시손 실 이라는 요소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래는 불확실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오롯하게 요소에 대한 추정에 집중을 해도 맞추기가 녹녹지 않은데, 다른 소음에 휩쓸리는 순간 가장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은 투자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일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을 '능력 범위'라는 버핏 옹의 개념과 융합시키면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이 도출됩니다. 바로 기댓값의 '신뢰 구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댓값은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는 개념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인간이 미래에 발생할 결괏값과 그 확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최대한 덜 틀리기 위해서 노력을 할 뿐이죠. 이는 통계학에서 말하는 신뢰구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빈도 주의 통계학이나 베이지안 통계학이나 신뢰 구간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신뢰 구간류의 개념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빈도 주의에서는 신뢰구간, 베이지안에서는 신용 구간으로 등장하죠). 전 개인적으로 버핏 옹의 '능력 범위'라는 개념이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을 내리는 투자자들의 '신뢰 구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버핏 옹의 '능력 범위'라는 개념을 들을 때면, '몰라서 안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인터뷰 같은 데서 말하는 거 보면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그 능력 범위의 기준은 뭘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계속 이 부분을 읽으면서, 버핏의 능력 범위라는 것은 어쩌면, 기댓값 기반 의사결정에 필요한 요소에 대한 추정치의 신뢰구간 허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버핏은 훨씬 적중률 높은 추정치를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보다 적중률이 높다고 해서, 돈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적중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산업이나 상품의 특성상 유의미한 신뢰구간이 나오지 않는 경우나 혹은 상품이나 산업에는 문제가 없지만 버핏 스스로 자신의 추정치에 대한 신뢰 구간이 충분히 확보된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능력 범위 초과로 분류하여 미뤄두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투자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바로 투자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투자심리에 대한 책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결국에는 '결국 특별한 답은 없는데, ~한 편향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해' 정도의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통섭과 투자의 투자심리 부분에서 인용한 퍼기 피어슨의 '인생 만사가 심리'라는 말도 결국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잘 알겠으나, 행동 재무학 책을 봐도 그렇고, 다른 투자심리서적을 봐도 그렇고 애매해서 퍽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사실 통섭과 투자의 투자심리 부분도 썩 그리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유용한 방법론도(자연주의 의사결정법 같은) 포함되어 있지만 역시나 제게는 조금 애매해 보입니다. 그래도 좋았던 부분을 꼽아보면, 역시 자연주의적 의사결정(의사결정 트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체스에서도 고수의 경우, 의사결정시간을 촉박하게 줄 때와 넉넉하게 줄 때의 의사결정의 품질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지만, 하수의 경우 의사결정시간에 따라서 의사결정의 품질의 차이가 상당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당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 시사점 때문입니다. 하나는 '반은 놓칠 생각을 하자'라는 것입니다. 투자심리는 결국 주제 파악입니다. 그리고 주제를 파악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를 하수라고 생각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수는 의사결정시간이 촉박할 때, 의사결정의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럼 간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단위 시간 내에 의사결정을 적게 내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 수많은 기회를 흘려보내라'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 세계에서는 정말 이슈가 끊이질 않습니다. 

 야구로 치자면,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정말 쉴 틈 없이 던져대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공을 다 치겠다고 방망이를 휘두르면 아마도 대부분의 타자는 금방 삼진아웃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타율이 높은 타자도 장기적으로 4할을 넘기 어려우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타자가 공을 그냥 보내도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냥 중간중간에 휙휙 뭐가 날아오긴 해도 무시하고, 타자의 자신의 리듬에 맞춰서 나도 준비가 되고, 공도 좋은 공일 때만 방망이를 휘두르면 아마 삼진아웃당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상황에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어려운 미션을 택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비교적 수월한 미션을 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삼진아웃당할 가능성을 낮추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편하게 반은 놓치고 시작하자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다른 하나는 '패턴'입니다. 다시 체스로 돌아가서 왜 촉박한 시간 내에 하수와 고수의 의사결정의 품질이 차이가 날까 하고 보니, 결정적으로 고수는 삽시간에 패턴을 파악하고, 거의 직관적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합니다. 즉, 고수는 감으로 찍어도 고수의 수가 나오는 것이고, 하수는 감으로 찍으면 정말 감으로 찍은 수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를 비롯한 하수 투자자들은 '패턴'에 대한 공부, 특히 '양질의 패턴'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패턴 학습은 주식시장의 시세 그 자체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기술적 분석), 아니면 과거 금융시장의 역사에서 거대한 흐름의 패턴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제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투자 대가들의 기록을 보면서, 그들이 접했던 시장의 패턴과 그때 투자 대가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의 패턴을 공부하는 것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투자심리에 대한 챕터가 끝나면,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 More than you know라는 책을 볼 때는, 사실 경쟁전략/혁신에 대한 부분이 크게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쓴 서평에서도 3줄 정도로 짤막하게만 다룬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요즘 시장을 볼 때나 실제 투자를 할 때, '혁신'이라는 주제만큼 모든 기업에 영향을 주는 주제도 많지 않다는 것을 체감해서인지, 이번에는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혁신은 투자자로서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기업의 흥망성쇠에는 혁신이라는 항목이 꼭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선 '혁신'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혁신을 정의하기 이전에 '부의 창출'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들이 어떤 현상을 보고 '혁신'이라고 규정할 때에는, 그 현상으로 인해 전체 경제의 부가 증진되었을 때에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부의 창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재학 중에 경제성장론에서 배운 이론을 기초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H대 재학 중인 분들이라면, 꼭 장형수 교수님 강의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부'는 '산출물의 규모'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산출물은 본질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산출물의 증가는 곧 소비의 증가를 의미하고, 소비의 증가는 효용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의 증진(or창출)을 경제주체들은 희망합니다. 

 그런데 부의 창출(or증진) 메커니즘이 이론적으로 설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결국 경제성장은 '자본축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솔로우의 모형이 나온 것이 1950년 대의 일입니다. 솔로우는 모형에서 경제의 성장은 저축률(자본투자), 인구, 기술진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솔로우의 모형은 본질적으로 약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요즘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바로 기술진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해버렸기 때문에, 솔로우의 모형 속에서 기술진보의 메커니즘을 유추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즘 전 세계 인구가 성장함으로써, 저축률이 증가함을 써 성장하나요? 네, 아닙니다. 결국 요즘 세계의 경제성장은 기술진보에 의해 설명되는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은 폴 로머라는 경제학자가 1990년 내놓은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라는 논문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폴 로머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The raw materials that we use have not changed, but as a result of trial and error, experimentation, refinement, and scientific investigation, the instructions that we follow for combining raw materials have become vastly more sophisticated. One hundred years ago, all we could do to get visual stimulation from iron oxide was to use it as a pigment. Now we put it on plastic tape and use it to make videocassette recordings.

 

 투입되는 자원은 차이가 없지만, 투입하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위 문단이 혁신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투입되는 자원에 변화가 없더라도, 조합 방법의 변화를 통해서 엄청난 산출량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투입량에 변화가 없거나 적지만 상당한 산출량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혁신이고, 이 혁신을 통해서 인류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한 가지 시사점을 더 도출합니다. 바로 지적재산물은 대부분이 '비경합재'라는 점입니다. 비경합재는 물리적으로 희소한 자원이 아닙니다. 비경합재를 창출해낸 경제주체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서 구조적으로 희소하게 만든 자원이지 본질적으로 희소한 자원은 아닙니다. 따라서 해당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모든 인류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이는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머의 논문에서 볼 수 있다시피 동일한 자원을 투입해도 기술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 이제는 동일한 제약 조건 하에서 더 다양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생산성의 향상은 더 가속화되고, 인류는 더 부유해졌습니다.

 여기까지는 인류의 관점에서 본 혁신입니다. 그런데 투자자의 눈에서 보면 조금 혁신이 다르게 보입니다. 인류 전체의 부가 증진된다는 것이 '모든 인류'의 부가 증진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볼 수 있는 예로써 HDD 산업의 예가 있습니다.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은 기술 진보와 경쟁에 의한 혁신 등을 통해서 더 큰 용량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대부분의 인류가 그 혜택을 봤습니다. 하지만 디스크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80개에 이르던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업체의 숫자는 20여 개 이하로 감소하였습니다. 인류는 더 부유해졌지만, 사라진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업체의 주주는 더 가난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슬픈 소식은, 이런 혁신의 속도가 아마 우리가 투자를 해야 하는 미래에는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업체의 경우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당연히 이런 변화가 발맞추어 과연 투자하는 기업이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얼마나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을지 체크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로버트 위긴스와 티머시 리플리의 초과수익의 지속성에 대한 실증분석 연구가 인상적입니다. 

 두 학자는 4가지 가설에 대해서 실증분석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렸습니다. 

 1.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기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2. 하이테크뿐만 아니라 대부분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이 나타났다.
 3. 기업들은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적인 경쟁우위를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4. 산업 집중도나 시장점유율이 높을 때,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한다. 

 그리고 결과는 1,2,3번 가설은 유의한 것으로, 4번 가설은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습니다. 다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3번 가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1번 가설과는 상충되는 느낌이 있어서 고민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승자 기업이 아무래도 패자 기업에 비해서 더 오랜 기간 경쟁우위를 유지하는데, 이런 식으로 승자기업이 누리던 경쟁우위의 기간 자체가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은 앞으로 초과이익을 누릴 기업은 더 희소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업을 찾아야만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희소한 초과이익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기업은 더 비싸질 것이라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걸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면, 복잡계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지만 이미 서평이 길어질 대로 길어지기도 했고, 저도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해서 복잡계 이론에 대한 부분을 요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를 꼽으라면, 투자철학에 대한 챕터와 마지막 복잡계 이론에 대한 챕터(찰리 멍거의 사고 모형 부분까지)를 꼽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More than you know라는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찰리 멍거 옹의 '정신적 격자 모형'이라는 개념을 정말 인상 깊게 생각하는데, 멍거 옹의 정신적 격자 모형을 따라 하는데 가장 좋은 책이 바로 More than you know(통섭과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투자의 세계는 복잡계적 특성을 보여준다는 증거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복잡계는 자기조직화와 창발 등의 특성으로 인해서 정말 예측하기가 어려운 계입니다. 그래서 사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누적적으로 성과가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제가 More than you know라는 책을 처음 볼 때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자 고민도 바로 그 부분이었고요. 다만 지금까지 수차례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나름대로 터득한 바는, 최대한 확률적 우위와 충분한 시행 횟수를 확보해서 지지 않을 상황을 마련해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마련하고(정확히는 마련한다기보다는 알아채는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준비하는 데는, 어떤 부분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하고(환원주의가 통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쌓아두고 분석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처음에 읽을 때는 처음 읽기 때문에, 여러 번 읽은 후에는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버거웠던 책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꼭꼭 씹어서 소화시키고 싶은 내용이 많은 책이기 때문에 투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리는 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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