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안토나치 저, 서태준/강환국 역
[듀얼 모멘텀 투자 전략 - 게리 안토나치]
[장기투자를 위하여]
모멘텀,
물리에서 운동량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금융시장에서 아주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뉴턴의 제1법칙 관성의 법칙이 자산시장에서도 작용을 하는 것인지, 자산군이 방향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맥락의 개념입니다.
전 로저 로웬스타인의 버핏이라는 책을 보고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을 보면서 주식투자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치판단의 기준 자체가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론을 통해서 형성되었습니다. 요즘은 지나치게 교조적이며 근본주의적인 기준을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기준이 중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멘텀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감을 갖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썩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투자를 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모멘텀이라는 개념이 허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 서평을 남겼던 '주식투자의 기술'이라는 책의 주제인 제시 리버모어라는 인물도 바로 모멘텀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투자를 통해서 큰 부를 일군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끝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에는 관측 가능한 증거가 많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멘텀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제 학부 전공 수업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서 시장과 관련된 가설이나 주장의 통계적 유의성을 검증해보는 수업이었는데, 제 손으로 직접 데이터를 만지고 결과를 받았는데, 분명 통계적으로 유의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물론 여전히 정서적으로는 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섭과 투자' 등 복잡계의 관점에서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저작물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금융시장에 나타나는 '군집행동'의 존재를 감안하면, 모멘텀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존재에 대한 인정을 했지만, 여전히 썩 달갑지는 않은 개념이라서 공부를 해본 적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듀얼 모멘텀 투자 전략'이라는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길래, 모멘텀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아볼 겸 가볍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워서 서평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다루기에 앞서서,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근거를 '논문'으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처럼 모멘텀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어설픈 경험담이나 썰을 풀었다면 아마 중간에 책을 덮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참고문헌이 13페이지나 될 정도로, 거의 모든 주장에 대한 근거로 논문을 들고 있습니다. 학계의 관점에 대해서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제대로 검증된 논문의 경우에는, 최소한 그 논문이 담고 있는 통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신뢰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렇게 논문을 근거로 주장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책의 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의 서두는 공짜 점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공짜 점심이란, '분산투자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위험 대비 수익의 개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짜 점심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더 이상 공짜 점심은 없다 혹은 아주 부실해질 것이다 라는 맥락입니다. 그 이유는,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자산시장의 동조화 현상 때문입니다. 특히 위기 시에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분산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공짜 점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분산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채권/원자재/대체투자(해지펀드, 사모펀드)의 장기 수익률이 썩 좋지 않다는 점도 지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이해가 잘 갑니다. 해당 자산 자체가 아주 매력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산투자의 장점을 위해서 해당 자산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투자자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자산군의 실제 내재가치에 비해서 수요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이로 인해 분산투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자산의 가격이 내재가치 위로 올라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내재가치보다 비싼 가격에 자산을 편입했기 때문에, 해당 투자의 장기 수익률은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위기 시에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올라가는 바람에 위험 대비 수익에 대한 기여도 줄어드는데, 자산의 본질적인 투자가치 자체도 낮아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금융시장에서 운용이 되어야만 하는 자산의 규모는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새로운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써 '듀얼 모멘텀'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듀얼 모멘텀이란, 말 그대로 2개의 모멘텀을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2개의 모멘텀이란, 절대 모멘텀과 상대 모멘텀을 의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절대 모멘텀과 상대 모멘텀이라는 이름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종단면 모멘텀과 횡단면 모멘텀이 더 확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절대 모멘텀(종단면 모멘텀)이란, 시계열 모멘텀을 의미합니다. 즉 자산 그 자체의 가격 모멘텀을 의미합니다. 모멘텀을 '관성'의 맥락에서 이해한 저 같은 사람에게는 종단면 모멘텀이 훨씬 이해가 쉽습니다. 쉽게 말해서 공을 오른쪽 방향으로 쌔게 굴리면, 공이 한동안 계속 오른쪽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특정 자산의 가격이 상승 주세에 있다면, 당분간 상승 추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책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자산의 초과수익, 즉 자산의 수익률에서 국채 수익률을 차감한 값'
을 절대 모멘텀으로 정의합니다. 보통 여기서 말하는 '일정 기간'을 '반추 기관'이라고 말하는데, 통계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반추 기간은 12개월이라고 합니다.
상대 모멘텀(횡단면 모멘텀)이란, 자산군 전체에서 반추 기간 동안 수익률의 상대 강도를 의미합니다. 즉 종단면이 특정 자산의 시계열 가격에서 모멘텀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횡단면은 특정 기간 동안 상대 강도가 가장 큰 자산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즉, 절대 모멘텀과 다르게 상대 모멘텀은 '항상' 상대 모멘텀이 강한 자산을 찾을 수 있고 동시에 최소한 2개 이상의 자산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듀얼 모멘텀이란, 절대 모멘텀과 상대 모멘텀을 모두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 자산군에서 상대 모멘텀이 강한 자산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해당 자산의 절대 모멘텀을 확인합니다. 절대 모멘텀 값이 (+) 면 투자를 실행하고, (-) 면 유보합니다.
각각의 모멘텀이 포트폴리오에게 기여하는 면을 살펴보면, 상대 모멘텀은 투자 수익률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기여를 하고, 절대 모멘텀은 손실과 변동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를 합니다. 대부분의 주식시장 붕괴의 형태를 보면, 보통 하루 이틀 사이에 붕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하락이 발생하고, 수개월 동안 서서히 자산 가격이 흘러내리는 형태를 보이는데, 절대 모멘텀은 이렇게 천천히 포트폴리오 가치가 잠식되는 상황에서, 잠식되는 부분을 비교적 적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멘텀 기법을 개별 종목 단위에 적용하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백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는 기록도 지수를 가지고 듀얼 모멘텀 투자를 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즉, 듀얼 모멘텀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긴 시계열의 확보와 모멘텀 이외의 기업 고유의 위험이 충분히 헷지 될 수 있는 넓은 투자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과거 기록을 보더라도, 실제로 어떤 모형이 충분한 수준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주 긴 기간이 필요합니다. 가끔 이런 차트를 보시는 분들께서, X축의 끝 근처의 큰 격차가 벌어지는 부분만 보고 '이런 전략으로 투자하면 돈 엄청 많이 벌 수 있겠네!'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수를 크게 이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혹시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매년 수십% 씩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약간씩이나마 지수를 이김으로써, 복리의 효과를 누려서 장기 시계열에서 격차를 벌리는 것입니다. 12개월 이동평균 수익률 자체는 아주 현격한 차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주로 깨질 때 덜 깨짐으로써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책을 보다 보면 수익률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런데 그 수익률은 이 전략을 택하는 분들이 받게 될 수익률과는 완전히 다른 수익률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수의 움직임이 다를 것인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투자기법은 지수를 추종하면서, 깨질 때 덜 깨짐으로써 장기적으로 돈을 더 벌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수익률이 미래에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서평을 썼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전 당장 듀얼 모멘텀 전략으로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1번뿐입니다. 시행 횟수가 1회라는 것입니다. 듀얼 모멘텀 전략이 과거 통계적으로 유의한 알파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게 미래에 제가 투자를 하는 시기에도 무조건 재연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차피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과거 기록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관찰된 방법론을 고려하는 것일 뿐이지. 내가 투자하는 그 시기에도 해당 전략이 잘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과거에도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통계적 유의성이 관찰될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직업 상의 이유로 국내 투자를 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그때는 어차피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 통계적 유의성이 검증된 어떤 전략을 선택해서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첨언이 너무 길었는데, 책은 분명 재미있었고 배울 것도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