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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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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Jan 04. 2018

한 살의 무게

한 해의 시작과 끝에서 


끝과 시작.


시간에 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세심하게 쪼개 놓은 시간의 분절. 무한의 시간을 먹기 좋을 만큼 촘촘하게 잘라놓은 조물주를 찬양한다. 인내가 부족한 나로서는 하나의 기간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다행이다. 지루하기도, 때로는 무척이나 고통스럽기도 했을 1년. 그 365일을 매일 같이 일어나고 매일 같이 잠들며, 매일 같이 씻고 먹고 마시며 보냈으리라. 한 해 목표를 채 이루지 못한 것이 뭐 대수랴. 한 해동안 수고한 나를 위무하기도 바쁘다. 그래, 이렇게 또 일 년이다.



한 살의 무게.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라는 놈 앞에 선다. 새해의 첫 날 적잖게 받은 질문은 바로 ‘올해 나이가 몇이지?’. 누가 꼭 짚어 기억하게 하지 않아도 나이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내가 몇 해나 살아 왔는지 따위가 뭐 중요하다고. 내가 살아온 해의 갯수만큼 삶에 더욱 능숙하기를 요구하는 사회라 그럴까. 하긴 나이가 찰 수록 인생의 경력직이 되어가는 셈인데, 나는 아직도 삶이 영 익숙치가 않다. 분에 넘치게 나이의 훈장을 달아버린 것 같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가장 싫어 하면서도 무작정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무얼까. 떼려야 떼어 낼 수 없는 나이의 무게. 철 모르던 시절,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던 호기로움이 그립다.



마음의 끈을 조이고.


이루지 못할 걸 알면서도 매년 새해 목표를 세운다. 지루할 정도로 한 해 꼭 한 번 반복되는 이 의식은, 스스로 마음의 끈을 조이는 과정이다. 2017년의 목표를 돌아보니 그래도 반절 이상은 성공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스럽다. 지난 해의 후회를 담아 다가올 해의 방향을 짚는다. 꾹꾹 눌러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일 년동안 나의 나침반이 되어주겠지.



지금까지 다섯.


연말에 치르는 또 다른 의식은 남편과 서로에게 카드를 쓰는 것. 연애때부터 시작해 벌써 주고 받은 카드만 다섯 개를 모았다. 올해는 특별히 그 동안 썼던 카드를 모두 꺼내어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우스운 것은 매해 '올해는 정말 특별했다.'는 문구는 빠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매해 특별하지 않았던 해는 없었겠지만.'..! 그 두 문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역시 '특별하지 않은 해'는 없는 모양이다. 앞으로 펼쳐질 1년 365일도 특별함으로 채워지겠지. 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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