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겨울날의 기록
뜨거운 전기장판에 취해 자는 내내 달뜬 꿈을 꾸었다. 남편과 여행을 가기로 한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 30분 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매해 버렸고 그 때문에 꿈속에서는 내내 달리기만 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티켓 결제를 해야 했는데, 얼마 전 카드 한도를 높인 덕분에 티켓을 무사히 살 수 있었다. 남편 말로는, 카드 한도를 높여서 비행기 티켓 샀다며, 잘했지? 하고 잠꼬대를 하더란다. 아무튼 꿈에서 내내 피곤하게 다닌 탓인지 자고 일어나도 영 개운하지가 않다. 심지어 늦잠. 마음도 개운치가 않다. 바쁜 아침일수록 짧은 머리카락은 성가시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 롤도 살짝 말아줘야 사람답다 하겠지만 시간이 없다. 눈곱만 겨우 떼고 까만 털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사진 되게 이상하게 나왔지?
어 왜 괜찮은데?
..... 그래도 실물이 낫지!
어디서 주워들은 정답 같은 대답이라 슬금 웃음이 삐져나온다. 출근길 아침, 등 뒤에서 들리던 한 연인의 대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보여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동네에 새로 가게가 생기려나보다. 공사가 한창이다. 동경 산책이라, 나쁘지 않은 이름. 맛있는 일식집이면 좋겠다. 가림막 사이로 흘끗 쳐다보니 인테리어도 그럴싸하다. 다음에 꼭 한번 가봐야지. 가게에 달린 작은 간판에는 불이 깜빡깜빡한다. 오픈을 준비하는 가게에 잘 어울리는 미완성. 불이 들어오는 모양이 꼭 누군가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 같다. 깜빡, 깜빡, 깜빡, 요 이 땅.
12월 첫 주인데도 겨울이 이미 ‘완연하다’. 12월에 막 들어선 지금, 완연하다는 말을 벌써 써도 되는 것일까. 괜히 실례를 범한 것 같다. 그래도 이미 성큼 다가온 겨울. 옷깃을 자꾸 여미게 되는 것도, 일부러 숨을 크게 쉬어 입김을 만드는 것도, 꺼내놓은 손끝이 아려 주머니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숨기게 되는 것도 모두 겨울의 증거다.
거리에는 화단마다 짚을 깔고 말뚝을 박는 어르신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흙마저 염려하는 손짓이다. 겨울이 추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얼어서 못쓰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그래, 나의 겨울도 얼지만은 않기를. 마음에도 짚을 성기게 깔고 말뚝을 박아둬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