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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낯선 생활
by 보람 Feb 05. 2018

영국 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영국의 맛 - Boring 한 걸까, Mild 한 걸까?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뭐야?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야?"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시작하기 전, 영원에게 던졌던 질문들 중 하나. 여행하는 스타일이 맞다면 함께 사는 삶의 스타일도 잘 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꺼낸 이야기였다. 대학 때 매우 즐겁게 읽었던 김어준 씨의 『건투를 빈다』의 한 대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니 누군가와 심각하게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전에 최소 보름 이상 - 한 달 정도면 충분하고 - 배낭여행, 한 번은 다녀오시라. 

『건투를 빈다』296쪽, 김어준 


결혼 전, 한 달 동안 여행 갈 시간도, 돈도, 심지어 저지르는 용기조차도 부족했던 나는, 질문 하나로 배낭여행을 퉁친 셈이었다. 여행을 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소득은 있었다. 무엇보다 '우린 정말 비슷해!', '우리는 완전 잘 맞지!'하며 가당치도 않은 운명설을 주장하던 나의 착각에 조금이나마 흠집이 생기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음식과 여행의

상관관계



다행히 여러 면에서 우리는 잘 통했다. 계획을 짜기보다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것도, 박물관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도, 남들이 안 가본 곳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보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더 좋아하는 것조차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여행 파트너였다. 하지만 단 하나, '치명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음식'에 대한 입장 차이. 나는 여행(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단연코 음식, 그리고 숙소를 꼽지만, 영원은 음식에 대해서는 큰 흥미가 없다. 연애를 할 때도 큰 의문 중 하나가 '우리 그때 먹었던 피자 있잖아.'하고 지나간 음식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영원은 '응? 우리가 피자를 먹었었나?'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나는 나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않는다며 섭섭해했고, 영원은 영원대로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별 의미 없이 먹었던 것을 기억해두고선, 굳이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나의 방식이 어색했던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할 때 의미 없이 배만 채우는 음식을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음식의 질이나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알려지지 않은 맛집이 아니어도 괜찮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더라도, '일본 편의점의 문화를 경험하는 식사'라면 괜찮지만, 돈 없고 배고파서 대충 먹는 거라면 절대 사양이다. 여행 중 맥도널드나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는 물론 사절이지만, 세계의 맥도널드를 비교하기 위한 경험이라면 좋다. 음식은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취향이 집약적으로 들어있는 콘텐츠가 아닌가! 때문에 여행 전 몇 날 며칠 공을 들여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으면서, 맛도 괜찮은 식당을 서칭 해놓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내가 했던 모든 여행 중 가장 최악의 기억 또한 음식과 관련된 일이다. 인도를 여행하며 세 끼 모두 비스킷과 바나나를 먹었던 기억이 바로 그 주인공. 도로에 설치된 휴게 음식점에 가길 간절히 원했지만 배탈의 우려가 있다며 동행했던 현지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내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분노와 불평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국에선

뭘 먹어야

하나요?



이번 여행에서도 나의 기준은 확고했다. 영국 요리의 높은 악명도 나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영국스럽게' 맛없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영국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 '피시 앤 칩스 fish and chips'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추천받은 음식점도 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케리비안풍의 음식점이거나 인도 음식점들 뿐이었다. 우리의 호스트 조쉬Josh도 영국 음식은 굳이 찾아먹지 않는다고 했다. 외식을 할 때는 태국 음식이나 인도 음식점에 가는 걸 좋아한단다. 거리에 즐비한 동남아계, 인도계 음식점들이 조쉬의 말을 뒷받침했다. 영국 음식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도 조쉬와 해티는 말을 아꼈다. 영국 요리 중 조쉬가 유일하게 먹을만한 음식으로 꼽은 건 쉐퍼드 파이 Sheperd Pie였는데, 슬프게도 이번 여행 동안 쉐퍼드 파이를 파는 레스토랑을 찾지 못했다. 


영국에는 인도음식점이 정말로 많다! 동네 짜이왈라Chai-Wala에서 먹었던 아침 식사.



일단 제일 유명한 피시 앤 칩스부터 섭렵하기로 했다. 올드스피탈필즈마켓에 피시 앤 칩스로 유명한 Poppies Fish&Chips 체인점이 있다길래 주저 않고 도전했다. 가격은 생각보다 꽤 비쌌다. 레귤러 사이즈가 12.20 파운드. 한화로 따지면 18,000원 정도다. 그래도 외관은 썩 나쁘지 않았다. 경양식집에서 흔히 봤던 생선가스 같은 생선 튀김과, 포카O 같이 얇고 바삭한 감자칩을 생각했는데, 꽤 크고 묵직한 생선 튀김 아래 두껍게 썬 감자튀김을 곁들인 음식이었다. 생각보다 푸짐했고, 요리다운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맛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튀긴 감자와 생선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그야말로 튀긴 대구와 감자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상상한 그대로라 오히려 좋았다. 단순하고 정직한 맛이었다. 간은 약간 심심한 편이라 소스를 추가 구매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극적인 맛에 워낙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는 그런 심심함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점심으로 먹었던 Poppie's Fish & Chips, 그리고 Cafe Caribbean. 카리브빈에서는 자메이카풍의 저크치킨 Jerk Chicken을 올린 볶음밥을 먹었다.



피쉬앤칩스의 영롱한 자태! 하지만 저크치킨이 더 맛났다.



식사를 먹기 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지루함Boring과

담백함Mild

사이



몇 가지 영국 음식을 체험하고선, 나와 영원이 내린 (어쩌면 섣부른) 결론. 영국 요리의 장점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담백함이 아닐까. 단순함이란 것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엄청난 단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어느 요리도 가지지 못한 장점이기도 했다. 소금과 후추만 주로 쓰는 단순한 양념과, 굽거나 삶는 간편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복잡할 것 없는 일차원적인 맛. 계속 먹다 보니 그 단순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왠지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조쉬와 해티에게 이런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니, 'Yes, I know. It's very boring.'이라고 맞받아쳤다. 해티네 고향에서는 당근이나 브로콜리를 삶아서 그냥 먹기도 한다며,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 있냐며 질색했다. 한국에서는 요즘 건강을 위해 그렇게들 먹곤 한다고, 건강에는 좋은 요리법이라며 작은 위로(?)를 전했다.


이후로도 영국 음식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됐다. 피시 앤 칩스로만 영국을 기억할 수는 없었으니까. 런던을 지나 토트네스부터 에든버러로 이어지는 여정 중에 정말 훌륭한 영국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음식부터 서비스까지 꽤나 훌륭한 레스토랑이 많았고, 벤치마킹하고 싶은 기발한 콘셉트의 음식점도 종종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하기스 Haggis나, 스카치 에그 Scotch Egg, 블랙 푸딩 Black Pudding는 지금 떠올려도 입에 침이 고이는, 꼭 다시 먹고 싶은 음식들이다. 영국 곳곳의 펍들은 또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는지. 킹스맨에서 봤을 법한 멋진 외관도 그렇지만, 펍 주위를 가득 둘러싸고 서서 맥주를 마시는 런더너들의 모습도 가히 장관이었다. 날이 추워도 그들의 거맥(거리 맥주)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맥주잔 한 잔을 들고 거리에서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맛있는 영국'이었다. 그뿐이랴. 런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국 로컬 샌드위치 체인점 잇 EAT. 과 프레타 망제 Pret A Manger도 잊지 못할 영국의 맛이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하고 맛 좋은 수프를 먹고 있노라면 요리로 위로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며 과한 감상에 젖기도 했다. 



그리니치마켓에서 만난 스카치에그. 스카치에그는 자고로 스코틀랜드에서 먹어야 한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가는 발걸음을 잡은, 스카치에그의 비주얼.


요즘 가장 핫하다는 해크니의 펍에서. 안주(?)가 진정 맛있었다!


프레타망가에서 주문하기!



프레타망가의 스프. 쌀쌀한 날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채워주었다.


영국 요리의 악명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혹자는 금욕주의적인 청교도의 산물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도시 생활자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도입되었던 산업혁명 시절을 거치며 생긴 문화라고도 했다. 그 구체적인 내막이 무엇이든, 수백 년간 영국인들의 삶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그 맛을 만들어 왔다 생각하니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그들의 근면함과 그들의 아픈 역사까지도 담겨 있는 한 그릇이라면, 그게 어떤 음식이든 값지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방문했던 영국의 '모든' 가정집들은 제이미 올리버의 책을 한 권 이상은 가지고 있었다. 방문하는 서점마다 제이미 올리버의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도 놀라웠다. 요리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이 맛없기로 인정한 나라, 하지만 요리에 대한 관심은 그칠 줄 모르는 이상한 나라. 이 나라의 맛은 또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 지금의 영국인들의 삶은 또 어떻게 쌓이고 쌓여, 어떤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려나. 언제가 떠날 다음 영국 여행이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AT.에서 제대로 eat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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