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떠나며 후회가 남는 것은 왜일까
후회로 찍은
마침표
일요일에 왔다가 일주일을 꼬박 보내고 월요일에 브리스톨행 기차에 올랐다. 7박 8일의 시간, 길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한 도시를 덜 가더라도 토트네스에 더 오래 있을걸.' 하는 후회 섞인 말이 아침부터 목구멍으로 새어 나왔다. 한 장소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서 일까, 배운 것이 많은 여행지라 그럴까. 떠날 때 아쉽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토트네스를 떠나는 일은 유독 더 진한 미련이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일정 모두 토트네스에서 보내고 싶지만, 여행 스케줄 조정하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떠나는 기차표는 정해져 있고 더블린으로 우리를 실어다 줄 비행기도 환불이 안 되는 데다가, 다음 숙소의 호스트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쉬운 소리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
왜 언제고 마지막은 후회로 마침표를 찍을까.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이라지만, 늘 반복되는 패턴에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혐오에 빠져버렸다. 이러다 진짜 버나드 쇼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하는 묘비명을 세우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이런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 원인을 파고들다 보니 언제나 그렇듯 욕심이 문제다. 그리 길지 않은 여행인데 뭐 그리 많은 것을 담으려 했을까. 이것도, 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화를 불렀다.
떠나기 전
커피 한 잔
섭섭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식사는 어김이 없다.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캐리어 두 개를 야무지게 쌌다. 일주일 동안 지내며 짐은 불어날 대로 불어난 상태. 영국의 날씨를 우습게 보고 얇은 옷만 챙겨 와 겨울 옷들을 사모은 결과다. 아침 바람이 차가워 떠나기 며칠 전 샀던 패딩 조끼를 꺼내 입었다. 두 손은 무거워졌지만 역시나 사길 잘했다 싶은 순간. 세컨드 샵이 아침부터 문을 열었다면 쇼핑 한 번 더 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덜 부지런한 토트네스의 가게들 덕에 주머니 돈이 굳었다.
대신, 매번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보지 못했던 카페에 잠깐 들렀다. 레게머리를 풍성하게 한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헤어리 바리스타 Hairy Barista>. 오고 가는 길목에 있어 지나칠 때마다 향긋한 커피 향기로 우리를 유혹했던 곳이다. 아침 기차라 시간이 빠듯한데도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니 꼭 가보고 싶다며 영원을 졸랐다. 호스트에게 짐을 맡겨두고 카페로 쪼르르 달려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베이커리며 라테며, 특히 오트밀 우유로 만든 라테가 무지하게 궁금했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 마침 아메리카노 한 잔이 딱 고플 때라 오랜 망설임 끝에 아메리카노를 외쳤다.
다시,
낯선 생활
낯선 삶, 다른 생활을 보고 싶어 무작정 찾아온 곳. 토트네스에서의 일주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지나온 일주일을 되짚었다.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 또다시 토트네스가 그리워졌다.
건강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풍성하게 차려지던 아침 식탁. 돌아가면 아침 식사를 하자며, 아침 식탁의 효용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우리 둘. 덜 벌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지켜가던 사람들을 보며 돌아가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며 약간은 체념 섞인 미래를 그렸던 때. 공동체의 힘을 보여줬던 마을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에 감탄하며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끄적였던 순간. 그뿐일까. 다트 강과 끝없이 펼쳐지던 푸른 언덕들, 드넓은 자연만큼 여유로웠던 하루하루, 푸른 놀이터에서 놀며 해사하게 웃던 영원의 얼굴….
헤어지는 연인들처럼 토트네스와의 추억을 세었다. 토트네스에 미련이 남는 그만큼, 아일랜드에서 보낼 시간들이 염려스러웠다. 이미 익숙해진 여행지를 떠나 다시 낯선 공간으로 가는 두려움. 낯선 생활을 하겠다고 왔으면서, 어찌 이럴까. 여행의 시작이 이리 기대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을까. 기차가 달리는 내내 남은 여행도 좋을 거라며 서로를 다독여 봤지만, 한 번 생긴 불안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이런. 지난 시간이 너무 좋아도 탈이다.
적당히 낯선 생활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