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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Sep 12. 2018

꿈꾸는 비즈니스가
현실이 되는 마을

Transition Walk, 토트네스를 걷다 (2)

- Transition Walk, 토트네스를 걷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



REconomy Center : 새로운 도전의 길을 열어주는 마을



거대한 Earth Spring의 면면을 제대로 다 살펴보지 못했지만, 일정에 따라 다음 목적지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곳에는 '리코노미(전환경제)센터 REconomy Center'라고 표시가 있었다. 이곳에서부터는 그동안 가이드해준 할Hal의 바통을 이어받아 리코노미센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제이Jay와 함께 워크Walk를 이어가게 되었다. 


제이는 이 센터에서 진행하는 핵심적인 사업을 소개해주었다. 바로 로컬 사업가 포럼 Local Entrepreneur Forum(LEF)인데, 1년에 수차례 날을 정하여 열리는 이 포럼은, 현지 주민들이 모여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제 함께 사업을 만들어갈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이 되는 곳이었다. 누군가가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해와서 던지면(pitch) 이에 관심이 있거나 사업을 지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사업이 실제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제이는 수년간 이어져온 LEF에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실제 사업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다양한 사업들이 많이 시작되었고,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업도 꽤 된다고 했다. 


이외에도 리코노미센터는 토트네스 파운드 활용이나 로컬 가게 소비를 장려하는 캠페인 등 전환마을 토트네스의 지역 경제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센터의 공간 자체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이며, 로컬 사업자들의 공유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창업이라는 엄청난 도전에 마을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어줄 공동체. 창업에 그만한 동료는 없었다. 또 그런 성공 사례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전에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갖게 될 것이 자명했다. 각자도생 하는 일반적인 경제논리에 구조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토트네스의 또 다른 생동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리코노미센터의 전경


센터 내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워크의 두번째 가이드, 제이Jay



토트네스 둑 Totnes Weir : 생명이 살아나는 물길 만들기

센터를 떠나서 다음 목적지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을 걷게 되었다. 강이 있는 마을의 정반대 편까지 걸어야 했다. 그렇게 길을 내려오던 중, 철길을 지나며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문득 얼마 남지 않은 토트네스에서의 일정에 대한 아쉬움이 '훅'하고 밀려왔다. 어느새 이렇게 정이 들어버린 걸까. 보람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은 채 행렬을 터덜터덜 따랐다. 


그렇게 다트 강 River Dart 가에 다다른 뒤 숲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수력발전소였다. 그곳에 대한 설명은 제이Jay 대신 현장에 있던 담당자가 주도하였다. 이 둑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물고기를 위한 물길이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때마다 돌아와야 하는 연어들이 둑에 막혀서 떠나야 했는데 물고기들이 통과할 수 있는 구조의 발전소와 물길을 만드는 것을 통해 생태계 질서를 지켜주는 방식으로 수력발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양수기 Archimedes' screw 원리를 이용한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배경지식과 영어실력이 부족하여 정확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기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생산된 전기는 인근에 있는 학교에서 쓸 수 있는 정도의 양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개발을 하면서도 생태계 질서를 존중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 진행된 보 설치 사업이 떠올랐다. 자연의 개발을 경제논리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지 않는 것. 생태계 원리가 존중받는 것.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거대 사업이 놓쳐버린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풍부한 생명 감수성이 담긴 물길을 보고 있자니, 이런 개발이 가능할 수 있는 마을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심이 저절로 들었다.


철길 위 길에서 바라보는 토트네스 모습


토트네스 둑 앞에 모인 그룹


연어들과 물고기들이 다닐 수 있는 물길



공공 편의시설 부지 : 성숙한 의견 수렴의 산물


강가를 돌아 나오는 중에 한 공장 부지 앞에서 자리를 잡고 제이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기차역 옆에 있던 유제품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 부지를 1(토트네스)파운드에 마을공동체가 인수받게 되었다고 한다. 인수부터 활용 방안이 되기까지 주민 투표와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느라 오랜 기간이 걸렸다. 지금 결정되기로는, 전환마을 운동을 위한 오피스 공간이나 여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 편의시설 등 마을을 위한 공간으로 청사진을 그려지고 있다고 한다. 나와는 일절 관계없는 공간이 될 테지만, 왠지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며 내 마음이 설렌 건 왜였을까. 


기찻길 뒤편으로 공장 부지가 보인다



Incredible Edible : 함께 기르고, 함께 먹는 텃밭


남은 워크를 이어가던 중 보로우 공원Borough Park를 지나게 되었다. 꽤나 큰 공원이었는데, 언제 봐도 지겹지 않은 넓게 펼쳐진 초록 잔디, 곳곳에 자리한 아름드리나무들이 긴 워크의 막바지에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해주었다. 


공원을 떠나기 직전 출입구 앞에 작은 텃밭이 있었다. 제이는 그곳에서 사람들의 집중을 청했다. 토트네스 곳곳에는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을 기르는 작은 텃밭들이 있다고 했다. 이들 텃밭의 이름은 Incredible Edible. 인근에 사는 현지 주민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하는 이 텃밭의 비밀은 바로 수확물을 누구든 마음껏 가져갈 수 있다는 것! 가히 놀라운 개념의 텃밭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우려와는 다르게 필요한 사람들이 적정량만을 가져가면서 잘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공유 경제의 또 다른 성공 사례라니. 


보로우 공원의 초록초록한 모습


보로우 공원을 지나고 있는 행렬


보로우 공원 입구에 자리한 Incredible Edible 텃밭 



New Lion Brewery : 로컬 비즈니스의 탄생


우리 워크의 마지막 목적지는 뉴라이언 브루어리 New Lion Brewery였다. 전환마을 운동을 시작한 롭 홉킨스 Rob Hopkins 교수가 첫 번째 LEF에서 제안한(pitch) 의견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LEF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업으로 현재는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홉킨스 교수의 제안에 지역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았고, 양조 관련 지식과 기술이 있는 사람들과 이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 양조장에서는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같은 해 LEF에서 시작된 커피 찌꺼기에서 버섯을 재배하는 농장 사업과의 협업하여 버섯맛 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귀리Oat를 재배하는 지역 농장과도 제휴하는 등 지역 내 사업 간의 순환 구조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꿈으로 그칠 법한 이야기하들이 공동체의 힘으로 실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말 좋은 사례였다. 



변화는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일어난다


긴 워킹 투어를 마쳤다. 점심때 갔던 Pay What You Feel Cafe와 마찬가지로 투어 참가비는 자발적으로 내달라고 하며 제이가 봉투를 돌렸다. 팸플릿 상에 권장 금액은 20파운드이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느낀 값어치만큼만 하라고 되어있었다. ("We suggest £20 for visitors and £10 for locals, but please pay what you can or what you think it is worth - it's up to you. And we really mean that - even if it is nothing!") 느낀 건 많았지만 그만큼 주머니가 무겁진 않았기에, 우리는 둘이 합쳐 20파운드를 봉투에 넣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궂은 날씨에 예상보다 훨씬 길었던 거리를 걷고 나니 몸이 매우 피곤했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정말 상쾌했다. 돌아오는 길, 할Hal이 얘기해주었던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운동에 대한 생각들 중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정리해보았다.  


1. Transition이란 점진적인 변화(Gradual Change)를 의미한다.
- 트랜지션은 단숨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짧은 기간, 눈에 띄는 변화가 한 번에 일어나는 것보다 차근차근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를 지향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2. 진짜 의미 있는 변화는 행동behavior의 변화이다.
- 건물의 겉모습이 바뀌는 것(태양광 패널 설치 같은)보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의 변화가 우선이고, 전환마을 운동은 이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3.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 일에 들어갈 비용부터 걱정하지 말 것.
-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현실적인 고민으로 좋은 아이디어의 출발을 막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토트네스는 조그마한 변화들이 천천히 쌓이면서, 집집마다 태양열 패널이 설치되고, 지역 내 농산물을 소비하는 문화처럼 좋은 결과들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다고 토트네스가 완벽한 마을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할은 토트네스 역시 여러 문제들에 당면해 있다고 했다. 그가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지역 주민의 평균 수입과 집값의 갭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외부 자원과 인구가 유입되면서 점점 더 그 차이가 심화되고 있고,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집값에 대한 문제는 힘겹게 서울 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 문제와도 너무나 닮아 있어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기대가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문제와 변화가 순환고리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토트네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그들의 내일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 졌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는 희망. 어쩌면 그 해결책이 서울에서 먼저 시작될 수도 있겠구나.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기분 좋은 상상이 계속 이어졌다. 






적당히 낯선 생활 인스타그램 @our_unusual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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