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ition Walk, 토트네스를 걷다 (1)
여행은 타이밍
우리의 이번 여행은 목적지가 정해지기 전에 떠날 날과 돌아올 날부터 픽스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우리가 갈 곳들의 일정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 동선을 짜게 되었다. 목적지의 스케줄이 후순위가 되다 보니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쉽게 놓치는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런던의 브로드웨이 마켓이나 에든버러의 축제 같은 것들...
하지만 토트네스만큼은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어떤 행사들이 있을지 미처 알아보지도 못한 채 일정을 먼저 픽스한 것 치고는, 소름 끼치게 타이밍이 좋았다. Transition Town Totnes(TTT)에서 펼치는 특별한 이벤트들이 많이 열리는 주간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10월 7일 토요일은 토트네스 일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었다. 오전부터 저녁 전까지 무려 세 가지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각각의 이벤트에서 전환마을 토트네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오픈 에코홈 Open Eco-Homes Weekend은 일종의 오픈 하우스 이벤트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친화적인 집들을 직접 방문해볼 수 있는 행사였다. 안내 리플릿을 살펴보니 총 16개의 공간에 방문해 볼 수 있었는데, 일반 가정집뿐만 아니라 기숙사, 묘지 등 다양한 건물들이 리스트에 있었다. 마을 곳곳에서 여러 기술과 공법을 활용하여 에너지 절약과 환경오염 방지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행사는 3일간 이어졌는데, 공간마다 방문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대가 정해져 있어서, 가보고 싶은 곳에 날짜와 시간을 맞춰서 방문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Pay What You Feel Cafe는 한 달에 한 번, 트랜지션 워크 Transition Walk는 5월에서 10월 사이에만 10회 정도 진행되는 특별한 행사였기에 우리에겐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트랜지션 워크는 전환마을 토트네스를 보기에 가장 좋은 이벤트라는 추천을 여러 번 받았기에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타이틀대로 직접 걸어 다니면서 마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였고, 우리는 에코홈 스페셜이자 2017년의 마지막 워크Walk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집은 내가 만들어 간다
오픈 에코홈 3일간의 일정 중, 토요일 오전에 갈 수 있는 한 집을 골라서 다녀오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흩뿌리고 있었지만, 우리가 묵고 있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금방 도착했다. 길가에 조그맣게 10번 집이라고 반가운 표시가 있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앞서면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마음.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은 마음인 듯한 보람의 손을 꼭 붙잡고, 언덕 위 집 앞에 다다르니 현관에 사람들이 조금 모여있었다. 먼저 방문해있던 사람들이었는데, 호스트는 투어가 거의 마쳤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앞서 온 방문객들이 떠나자 호스트가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며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크지 않은 2층 집이었지만, 집안 곳곳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묻어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거실 뒤편으로 확장한 Conservatory. 전체가 통유리로 된 이 곳은 좁은 집에 여유 공간을 줄 뿐만 아니라, 자연 채광이 좋아서 집 전체 난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가족들이 다 함께 쉬고 즐기는 공간이라며 해맑은 웃음과 함께 소개를 이어갔다. Solar panel과 air source heat pump를 이용하는 특별한 난방 시스템도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는데,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고, 생산된 전기로 히터펌프를 돌려 집 전체 난방을 하는 시스템이라 했다. 그 외에도 벽난로나 바닥 단열재 등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살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을 확장하는 것은 고치는 비용도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궁금했다. 호스트는 'listed'되지 않은 집은 일정 공간 이내에서는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다고 했다. (*Listed Building : 우리나라 문화재 같은 개념으로, 영국 내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로 지정되는 것인데 이들은 훼손이나 변형하기 어렵거나 절차가 까다롭다고 한다) 비록 법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해도, 여러모로 비용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 과정을 견디면서도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대로 집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마을을 걷자
10번 집을 떠나 Pay What You Fell Cafe에서 점심을 먹은 뒤 트랜지션 워크에 참여하기 위해 마켓이 열리고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도 보게 되었는데 며칠 전 트랜지션 네트워크 Transition Network 사무실에서 만난 벤Ben이었다. 그는 TTT에서는 'DoctorBike'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를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반갑게 웃어주며 우리 이름을 불러주니 고마움과 뿌듯함이 차올랐다.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날의 워크를 이끌어 줄 가이드인 할Hal도 도착했다.
비가 왔다 갔다 하는 궂은 날씨였지만, 우리 말고도 꽤나 많은 인원이 모였다. 할이 출석 체크를 하며 참석자를 확인했는데, 얼핏 봐도 스무 명이 넘는 육중한 그룹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안내에 잘 따라달라는 부탁과 함께 앞으로 서너 시간 가량 이어질 일정에 대하여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주고는 지체 없이 마을 걷기를 시작했다.
자연과 친하게 살려는데 왜 돈이 있어야 하나
이번 워크는 '에코홈 스페셜'이라 그런지 목적지 중에 오픈 에코홈에 참여한 집이 한 군데 포함되어있었다. 이 특별한 집에는 이름도 있었는데, 이름부터 자연 냄새가 폴폴 나는 Earth Spring. 외관 역시 심상치가 않았는데, 압도적인 사이즈의 2층 집은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나있였다. '대체 뭐지 이 집은?'하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Q&A 타임에 맞춰서 온지라 우리 그룹 외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6~70명은 돼 보였는데, 그 모두를 아랑곳 않고 수용할 만큼 거실은 거대했다. 아마도 이전부터 관심을 많이 받아온 집인 것이 틀림없었다.
호스트 부부와 건축가가 집 소개를 해주었다. 모든 자재와 구조가 철저하게 에너지 효율을 고려해서 건축된 집. 바닥재와 벽재는 친환경 소재(나무의 일종이었다)로 단열이 잘되도록 했다. 특히 바닥은 무려 30cm 이상의 두께로 제작했다. 이 바닥과 벽재는 외부에서 오는 열을 간직해 실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준다고 했다. 거기다 자연채광이 잘 되도록 뒤뜰로 향하는 남쪽 문은 통유리로 제작했다. 그래서 한낮에는 실내 바닥의 2/3가 햇볕에 노출이 되는데, 그렇게 들어온 햇볕에서 바닥과 벽재는 열을 품어 자연스럽게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호스트 부부는 아무리 그래도 난방 없이 겨울에 춥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놀랍게도 실제 겨울에 집안 온도가 큰 변화 없이 일정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지붕 전체는 Solar Panel이라 물 끓이는 데에도 전혀 가스를 쓰지 않을 정도로, 온수 기타 난방은 모두 태양에너지에서 얻는다고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건축 공법과 자재들로 집에서 나올 수 있는 환경 파괴를 없애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또 호스트 부부가 점찍어두고 있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작업을 한 덕에 인테리어적으로도 흠잡을 데없이 아름다운 집이었다.
대략적인 소개를 마치고 참석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Q&A 타임이 진행됐다. 얘기가 꽤 진행되고 나서 '그래서 얼마가 들었느냐'는 한 사람의(모두가 하고 싶었을) 질문에는 '그동안 모은 걸로 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대답은 피했다. 비록 구체적인 숫자는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일반적으로 쉬이 모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집을 둘러보고 나니 이상한 아이러니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자연의 도움을 받는 삶을 살려고 하는데 돈은 왜 더 많이 필요할까?'
에코홈 두 집을 방문해보니, 자연친화적인 집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든 있던 집을 고치는 것이든, 그것은 엄청난 고비용, 고투자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그 이후로 드는 유지비용은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긴 하지만, 일단 시작을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이 바탕돼야 했다. 일단 '내 집'이 있어야 하는 것에서부터 눈물을 한 번 훔쳐야 했다. 거기다 모든 건축 자재나 공사, 거대한 유리창이나 Solar Panel 등 자연과 가까운 방식으로 살려니 이상하게도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오픈 에코홈 이벤트가 있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그런 집을 더 만들어갈 수 있게 자극과 정보를 주기 위함인 것은 틀림없었다. 힘든 시작이지만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함께 사는 지구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집중해야 했다.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방식이 자연에서 너무 많이 멀어져서, 다시 돌아가는 데 그만큼 더 힘들게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우리에겐 너무나 먼 길 같이 보이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에서부터 천천히 시작해야겠다.
적당히 낯선 생활 인스타그램 @our_unusual_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