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으로

초임

by 째비의 교사일기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은사님을 계기로 제 꿈은 교사였습니다. 절 사랑으로 키워주셨고 항상 절 자랑스러워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저는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이 교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갔고, 23년에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개학하고 한 달간은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조례하러 들어가서는 어떤 말로 시작해야 될지, 종례 때는 어떤 말로 맺음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학교생활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음에 좋았습니다. 교과수업 때는 말도 버벅거리고,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었지만 졸지 않고, 적극적으로 내 수업을 들어줌에 감사했습니다. 업무부터 담임, 수업까지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한 달은 지나가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렇게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원래도 성격이 온화하고, 화를 잘 못 내다보니 생활지도가 특히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에도 웃어 넘어가고, 따끔하게 혼내기보다는 좋게 타일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도를 지나치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에 팔굽혀펴기를 하는 아이, 수업 중에 욕설을 하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유독 심한 장난을 치는 아이 한 명을 훈계를 하고자 불러서 청소를 시켰습니다. 아이는 제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를 쓸어 담는 게 아니라, 구석으로 쓱 밀었습니다. 그래서 뭐 하는 짓이니 화를 내고 다시 쓸어 담게 시키니 아이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얘야 표정이 왜 그러니? 쌤이 뭐 잘못이라도 했니? 내가 시키면 안 될 거라도 시켰어?


쌤이 계속 지랄하잖아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학년실에 들어와서 앉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고, 내가 은사님께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는데, 내가 어떤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반은 갈수록 엉망이 되었습니다. 조례하러 들어가도 아이들은 폰을 내질 않았고, 폰을 내라고 실랑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은 폰을 손에 꽉 쥐고는, 무릎 쪽으로 숨겼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다 보았기에 아이한테 폰 숨긴 거 다 아니 내라고 좋게 타일렀습니다. 아이는 들은 둥 마는 둥 제 말을 무시하며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5분 동안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폰을 내라고 실랑이했습니다. 마치 옷이 발가벗겨진 채로 사육장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 들었기에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밖에도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는 우울증 학생을 상담하는 일, 매 시간 우리 반 수업태도가 왜 이렇냐고 선생님들께 원망 듣는 일, 이런 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학교에서 어떤 존재지?

차라리 나 말고 다른 능력 있는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았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자책은 계속되고, 우울감은 쌓여만 갔습니다.


한계에 도달하니 죽고 싶었습니다. 제 손으로 죽을 용기는 없어서 출근길에 차에 치이길 바랐습니다. 일요일 밤만 되면 출근 생각에 손과 발이 떨려왔고 잠들면 눈이 떠지질 않길 기도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힘든 상황을 말해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께 힘든 상황을 터놓으니 ‘네가 어떻게 붙은 시험인데 그만두려고 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박한 마음에 관리자에게도 상담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관리자는 별일 아닌 듯이 웃으며 본인 때는 더 힘든 아이들도 많았다고 버티라고 하셨습니다. 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밀려오는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참다가 더 이상 못 참으면은 죽는 거고, 아니면 운 좋게 물에 휩쓸려 육지에 도달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숨을 참다 보니, 결국 다음 해라는 육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 끔찍했던 초임은 그렇게 막이내렸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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