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까지의 과정
저녁 11시가 되었다.
하필 한 달에 한 번 있는 오전 미팅이 오늘이라 잠과 함께한 시간이 3시간 정도였을까? 슬금슬금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오늘 오전 햇빛의 다정한 냄새를 맡으며 시작해 버린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의 판 사나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펼쳐 보려고 매고 갔던 가방을 본 순간, 아.... 지저분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하필 가방을 왜 바닥에 내려놓아선 그걸 보게 됐는지.
청소기에 머리카락 걸리는 걸 싫어하는 나는 바닥 청소는 빗자루와 물걸레를 이용한다. 그러니까 청소를 한다한 들 전혀 문제가 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층수는 2층이지만 1층에는 엘리베이터뿐인 빌라이기에 이런 나의 즉흥적 청소 욕구에 정말 쿵짝이 잘 맞는다. 결국 고생하는 건 내 몸이겠거니 하며 살짝의 거슬림만 해결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었다.
'청소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가볍게 쓸고 책 읽자.'
우습게도 바닥만 보며 청소를 하기에 이 바닥이 저 바닥이다. 그렇게 먼지가 있는 곳들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듯 아기자기한 먼지들을 따라가며 쓸다 보니 집 바닥을 다 쓸어 버렸다. 쓸어버린 먼지들을 어디에 버리는가? 바로 쓰레기통이다. 일반 쓰레기통. 타이밍 좋게 버릴 때가 되었고, 빌라에서 강조한 '쓰레기는 밤에 버려주세요.'는 오늘을 위한 문구 같았다. 그렇게 일반 쓰레기 봉지를 묶고 나니, 화장실 쓰레기통이 함께 버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듯하여 그 녀석도 함께 비워줬다.
'이제 진짜 책을 읽어볼까...'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비워놓은 쓰레기통에 쓰레기 봉지라는 새 옷을 입혀주기 전 한 번 멀끔하게 씻겨내주고 싶은 욕망이 일렁거렸기에 이왕 비워준 거 씻겨주기로 결정했다. 쓰레기통을 씻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괜히 비눗물로 씻어줘야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개운함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뚜껑과 분리하여 두 녀석들 다 씻겨주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화장실 바닥.
'그믄흐즈...'라는 이 악문 나의 생각과 다르게 본능적으로 화장실 청소 도구를 들고 약간의 물 떼만 벗겨낼 마음에 슥슥 문지르니, 역시 10여 년도 전부터 재밌게 해 왔던 기숙사 화장실 청소처럼(그 뒤부터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청소 구역은 화장실이다) 또 신이 나서 바닥을 다 닦아줬다. 아주 완벽하진 못해도 화장실에 들어올 때 느껴지는 깔끔함이란 역시 기분 좋은 쾌감이다. 이제 머릿속에는 화장실 청소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새로운 청소 도구들을 장바구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진짜 끝... 이 아니라 화장실 바닥만 하면 정 없으니까 변기까지 해주자.' 나는 정말 이렇게 즉흥적으로 청소를 해버리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청소를 할 거면 하고, 평소에 조금씩 닦아두는 게 만족스럽지 않으면 깔끔하게 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도 못하면서 늘 이렇게 즉흥적으로 청소를 해버린다. 항상 어정쩡하게 말이다. 그래서 변기까지 닦아주니 이제야 할 일이 비로소 끝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땀을 흘린 내 몸이려나... 이것도 씻기 전에 하던가. 다 씻고 자기 전, 책을 읽기 전에 벌린 일이니 이미 나는 다 씻었고 오늘은 샤워만 총 3번 하는 날인가 보다.
책 읽는 게 이렇게 험한 과정일 줄이야. 읽을 책은 미리 가방에서 꺼내는 습관의 필요성을 절로 느꼈다. 잠이 덮쳐오걸랑 잠시 미뤄두며 이제 정말 책을 좀 읽어 보려 한다. 내일은 오전 일정이 없는 것에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