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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01. 2020

내가 기록하는 이유

기록이 곧 기억이다.

아빠는 기록광이다. 평생을 신문기자로 보낸 탓에 생긴 직업병인지 아니면 오랜 기록의 습관 덕분에 기자가 된 건지 그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냉장고에 붙은 화이트보드, 탁자 위에 놓인 포스트잇, 그리고 아빠의 등산복 안쪽 주머니에 있는 메모지까지... 아빠의 걸음 뒤엔 언제나 크고 작은 기록의 흔적들이 뒤따랐다. 바쁜 신문사 생활중에도 아빠는 넘치는 에너지와 가족애로 '방앗간 집'이라는 가족신문을 매월 꾸준히 발간하셨는데, 독자라곤 우리 일가친척들밖에 없는, 지루하리만큼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도대체 왜 매달 기록하고 발간하시는지 어린 내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아빠의 해외연수로 비엔나에서 1년간 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집착적인 그의 기록 습관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장을 보고... 일상이 모험 같았던 좌충우돌 오스트리아 정착기를 겪으며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고, 정착 이후엔 자동차로 유럽 곳곳을 누비며 모래알 같이 반짝이는 추억들을 쌓았다. 1년을 빼곡히 수놓았던 에피소드들은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우리 가족의 대화 거리로 오랜 시간 식탁 위에 머물렀으나, 곧 서서히 각자의 생활 속에서 잊히고 오직 아빠의 기록 속에만 남았다.  


그의 집착적인 기록 습관에 대한 효용(?)에 대해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신문의 주인공이었던 아홉 살 소녀가 우연한 계기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빠의 기록을 들춰본다. 기억이 흐릿해져 빛바랜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아빠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홉 살 딸에 대한 감격, 걱정, 위안, 환희 등 그 모든 감정이 너무나 생생히도 그의 글에 담겨있었다. 기록이 사진보다도 더 정교한 기억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10대 때는 순간순간의 내 감흥이나 감상들을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언제고 꺼내볼 수 있을 정도로 눈과 마음에 생생히 담을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첫사랑의 아픔은 아로새긴 듯 영원할 줄 알았고, 당시 곁에 있는 친구들과 평생을 함께할 거라 믿었다. 때문에 소소한 사건들과 오르내리는 마음의 동요를 글로 옮겨 적는 작업은 그 수고로움에 비해 효용이 그리 크지 않은 것만 같았다. 20대 때는 드문드문 습관처럼 남겨진 10대의 기록을 보며, 동일한 일을 겪더라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 후에 떠올리는 흐릿해진 옛 기억들은 회상하는 시기의 프레임을 쓰고 재탄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소설의 구절처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란게 있는 법이니까. 그 간극을 여러 차례 느낀 후에는 기억/추억의 왜곡을 예방한다는 현실적인 목적에서라도 기록해야지 하고 여러 번 다짐했었다. 그러나 다짐을 실천하기란 늘 그렇듯 쉽지 않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플랫폼에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코멘트를 다는 것으로 그 다짐을 대리 실천했다.


"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 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 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 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                 김애란_잊기 좋은 이름 中


30대의 나는 이제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기록을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 일련의 굵직한 인생 사건이라 명명할만한 일들을 차례로 겪으면서 기록할만한 또는 기억하고픈 순간들이 많아졌기도 하거니와 시쳇말로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복잡다단한 삶을 굴리고 있기에 더 이상 내 기억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반짝이던 순간이라 믿었던 시간들도 지나고 돌아보면 압축파일화 돼 '좋았다' '재밌었다' '감동적이었다' 등 단순한 감상 표현으로 덧씌워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기록하지 못한 순간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커져갔다. 시계의 초침처럼 인생이 촘촘히 흐르던 날들도 있었는데 어느새 뭉텅뭉텅 흐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가 되니 물리적으로나마, 이렇게 글자로나마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아빠가 왜 그렇게 집착적으로 우리의 평범한 나날들을 기록했는지 내가 그 당시 아빠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어렸을 적 내 최애 영화였던 '스텝맘'을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가 딸에게 그녀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딸의 탄생부터 그녀와 함께한 추억들을 원단위에 출력하고 그것들을 이어 큰 퀼트를 만들어 주는데, 딸과 나란히 앉아 퀼팅 된 조각조각을 읽듯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언제봐도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 장면 중 하나다. 내 인생을 한장의 퀼트로 짤때 내가 가진 조각보들이 많았음 좋겠다. 그것에 담길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다채롭게 반짝이길 바란다. 그 작은 추억의 조각보들을 모아본다는 바람으로 이 공간에 내 기록들을 채워나가고 싶다. 내 기록은 곧 기억 자체로도 의미를 가지겠지만, 더불어 내 소소한 일상과 감상에 누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영화 '스텝맘' 中 재키가 애나에게 포토 메모리얼 퀼트를 선물하고 함께 얘기 나누는 장면 "You have made my life so wonde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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