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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26. 2020

2시간 42분 55초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낮에 동물원에 다녀온 아들 녀석이 많이 피곤했는지 저녁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곧이어 남편은 야간 근무로 출근하고 나 홀로 보낼 수 있게 된 토요일 밤. 평소 주말 이 시간이면 우리 집 두 남자가 꽉 채웠을 오디오가 꺼지니 적막한 공기가 집안을 메웠다. 낯선 고요함 속에서 격하게 나풀대던 것은 내 마음뿐.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시간에 대한 설렘으로 나는 냉장고에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맥주 한 캔을 깨웠다. 한 모금 들이키며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낼지 행복한 옵션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그 순간 지잉~ 하고 울리는 핸드폰. 20년 지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폰 액정에 뜬 친구 이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매 진동소리마다 아카시아 잎을 한 장씩 떼듯 받을까 말까를 반복하여 고민했다. 서로의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아 반기에나 한 번씩 통화를 할 수 있는 탓에 우리는 한번 수화기를 들면 수다로 가뿐히 두 시간을 채우곤 했다. 받는 순간, 오래간만에 주어진 혼자만의 여유가 사라질 것을 직감하니 그녀의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받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전화이기에. 결국 마지막 울림으로 추정되는 진동 끝에 밀어서 잠금해제. 그로부터 2시간 42분 55초간의 통화가 이어졌고, 혼자 하루를 평온하게 마감하려던 나의 계획은 그대로 틀어져 버렸다.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6년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사실 우리가 친해진 건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였다. 한 동네에 살았기에 서로 다른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우리는 학원과 독서실에서 만났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고민을 나눴고, 서로의 가족들과도 함께 교류하며 돈독한 정을 이어갔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할 즈음, 우리는 각기 다른 이유로 그 동네를 떠났다. 물리적으로는 멀어졌지만 그 후에도 우리는 비정기적으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대소사를 꼼꼼히 챙기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며 주 생활권이 멀어지다 보니 언제부턴가 직접 대면해 만나는 일보다 주기적인 전화통화로 안부와 근황을 묻는 것이 어느새 익숙해진 우리 관계였다.


20년을 함께했지만, 그녀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알아온 사이일수록, 그 사람을 설명할 적절한 표현을 더 떠올리기 어렵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한때 승무원을 꿈꾸었던 단아한 그녀는 따듯하고 바른 품성을 지녔다. 직관보다는 논리를 따르고 즉흥적이기보단 계획적이라는 면에서 나와 반대의 면모를 가졌지만, 우린 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누구보다도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응원한다는 점에선 매우 같았다.


받는 순간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 받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 보고 싶었다며, 일상 속에서도 몇 번씩 서로를 떠올린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며 반가움을 더했다. 우리의 지난 통화가 언제였는지도 짚어보고, 서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전 통화에서 나눈 이야기 중 업데이트된 후속 이야기는 없는지 물어가며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통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늘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가득한 느낌표 베이스의 여느 통화와는 달리 이번 통화는 특정 시점부터 서로에게 강렬한 물음표만을 잔뜩 남긴 채 성난 아쉬움으로 끝이 났다.  


#1

나 : 아빠가 코로나 때문인지 저번 주부터 반일제로 근무하게 되셨다 하더라고, 일이 줄어 아빠가 혹시 마음이 좀 씁쓸해하진 않으실까 싶어

친구 : 그래도 아버지 현직에 오래 계신 편이시기도 하고, 어머니도 계속 근무하시니까 이제 아버지 좋아하시는 취미 활동하시면서 오히려 여유롭고 좋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

나 : 응, 그러실 수도? 근데 만약 나라면 뭔가 내 존재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난 나중에 퇴직 후에 충분히 즐기며 살 수 있는 자산이 있다 하더라도 일은 계속하고 싶을 것 같아. 작은 소일거리라도.
 
친구 : 몇십 년 동안 근면 성실히 일하고 축적해서 번 돈으로 다들 노년기에 여유를 즐기며 사는 삶을 꿈꾸는데, 너는 그때 가서 굳이 또 일을 하고 싶다고?

나 : 으응.. 일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은 여행이나 골프가 주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니까...?


#2

나 : 아이가 크면서 집이 좁아 보이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넓은 평수 옆동네 아파트로 이사 갈까 싶어

친구 : 내가 너희 지역 부동산 경기는 잘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옆동네는 실거주 목적 외에 특별히 오를만한 요인이 없을 것 같아. 오히려 평수가 좀 작더라도 00구 라든지 투자가치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나 : 응. 네 말처럼 그 옵션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투자가치는 높지만 번잡하고 좁은 평수로 가야 하는 00구 보다는 녹지공간도 많고 평수도 넓은 옆동네 아파트가 현재로선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선택 같아서. 나도 고민 중이야.

친구 : 음, 지금 그냥 옆동네로 이사 가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 : 음... 미래의 불확실한 금전적 이득을 위해 현실의 편의를 유보하는 것이 꼭 옳다고만 할 수 있을까


많은 이견들이 가득했던 이번 통화해서 기억에 남는 위의 짤막한 두 대화는 어떤 쪽이 옳고 그르다는 정답을 가진 주제는 아니었다. 개개인마다 어떤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따라 답이 무수히 다양한 주제이기에 우리의 답이 달랐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늘 서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다고 믿었고, 같은 가치를 선택해 왔던 우리기에, 자연스러운 의견 차이에도 당황했고 그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서로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반복되는 서로의 주장으로 대화는 도돌이표를 몇 순배 돌았다. 우리는 "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며 말끝을 흐린 채 대화를 정리했지만, 내심 설득의 과정을 거쳐 같은 의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밤늦도록 이어진 우리의 통화는 가족끼리도 하면 안 된다는 정치 이야기로 흘렀다. 어렸을 적 우리는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정치적 견해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그녀, 서로 각기 다른 삶의 경험치들을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가치관이 공고 해졌을 테고, 전과 같이 우리가 모든 정책의 효과를 동일선 상에서 느끼는지, 같은 정당에 힘을 싣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 굳어지는 동안 우리가 해당 주제로 깊게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으니,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서로 적잖이 놀라 했다. 서로의 관점이 일치하는 접점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각자가 판단키에 너무도 반박이 불가능한 정책이나 가치들을 끌어왔으나, 우리는 그날 어떤 부문에서도 완벽한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기를 바랐던 마음으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 씁쓸한 시간이었다.


우린 언제 이렇게 달라진 걸까. 각자가 사는 곳이, 하는 일이, 가정을 꾸린 방식이 달라져서일까? 우리는 결국 더 하고 싶은 말들을 서로 꾹꾹 눌러 담은 채,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왜 고작 정치 이야기로 얼굴 붉혀가며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어색하게 웃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서로 목소리를 들어서 너무 반가웠다고, 언제나 네가 무얼 하든 네 편이라며 다급히 마무리한 후 다음에 또 통화하자며 끊었다. 서로 통화를 종료하자고 한 시점과 그 이유만이 슬프게도 그날의 통화 중 서로의 생각이 깔끔하게 일치했던 유일한 사안였다.




그녀와 나, 우린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관이 말랑말랑하던 어린 시절엔 그 가치와 생각들을 분명 서로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포지션이 확실해진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지켜야 할 영역들이 달라지면서 다른 사고를 인정하기 어려워졌는지도, 아니 나와 다름을 그른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졸음이 쏟아진다며 전화를 끊은 나지만 한참 동안이나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정치적 신념이 깊은 사람도 아닌데, 시원하지 않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또 괜스레 차오르는 성난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잠든 아들 옆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며 어쩌면 내가 실망하고 화난 대상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 있었다. 인생을 조금 더 경험해봤다는 이유로 젊은 친구들의 가치를 함부로 폄하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을 가르는 어른들의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았다.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와 넓은 시각으로 다른 세대를, 다른 취향과 가치를 표용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정확히 가르되, 다름의 문제에선 언제나 열린 사고를 지향하자 다짐했다.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고 헐뜯고 전쟁까지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비웃었던 소녀는 어디 갔을까. 비단 친구와의 통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가며, 내게 축적된 경험치를 바탕으로 확장된 사고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경험해봤는데, 내 말이 맞아'라고 주장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자주 마주한다. 상대방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치부하며 거리를 두기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내가 바라던 어른 상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와 상반된 내 모습을 친구와의 통화에서 단적으로 마주하니 그것이 몹시도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20년 지기 친구의 관점조차 제대로 존중해주지 못하는 편협한 내 모습에 대한 실망감, 어쩌면 바로 이 포인트가 나를 잠 못 들게 한 진짜 이유일 것이다. 


꿈꾸던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나이를 더할수록 끊임없이 늙고 경직되어가는 내 마음을, 내 세계를 열어두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2시간 42분 55초간의 긴 통화 끝에 새삼 깨닫는다. 계절이 바뀔 무렵 우리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의 통화를 이어갈 것이다. 추억 속의 소녀들처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쌓아온 시간의 가치와 우정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 분명하다. 다음 통화를 할 때 즈음엔 내가 좀 더 꿈꾸던 어른 상에 가까워져 있을 수 있을까? 부디 그러하길, 그리하여 그녀도 나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통화를 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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