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처음이드래요
특별한 타협
낭만적인 결혼 이야기를 뒤로 하고, 결혼이라는 것은 수많은 타협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수건 개는 방법, 된장찌개의 간 등 사소한 것부터 집을 어떤 형태로 구하고, 투자와 소비를 어디로 집중할지 까지 모든 것이 타협의 주제가 될 수 있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남편과 나라는 사람이 각자의 색은 분명 하나, 그것만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맞춰가려는 의지가 충만한 성향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얼핏 보면 이상적인 성향이나, 사실은 일방적 주장을 했을 때 차후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지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무엇이든 함께 이야기하고 공동의 답을 찾음으로써 책임을 분담하려 하는, 굉장히 공기업적인 마인드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본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지만, 우리의 직군은 사무/기술로 서로 다르다. 사무직은 본사에서, 기술직은 사업소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우리는 서로의 니즈를 합치시키기 위해 근무지에 대한 조율과 타협이 필요했다.
남편은 내게 본사에 남아있고, 혼자 사업소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고 돌아오겠다 했다. 내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탓에 그가 제안한 한시적 주말 부부 옵션이었지만, 내 마음이 당시 그러하지 않았다.(너무 사랑했었나보다;) 무엇이든 그와 함께 하고 싶었던 나는, 딱 2년만 사업소에서 같이 근무하고 다시 본사로 돌아오자 제안했고, 그는 (반가워하며) 받아들였다.
자칫 남편을 사랑하고, 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내 것을 양보한 것처럼 보이는 나의 결정의 이면에는 사실, 나를 위한 이유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
입사 후, 약 1년 반정도가 지나자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고, 조직이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인지가 되지 않았던, 낭만의 시절이었기에..시간이 갈수록 실망하는 이벤트가 많아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후배의 실적을 가로채 승진대열에 들어서는 선배를 보았고,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 훈계만 하는 무임 승차자 차장을 만났다. 업무에 있어서도 실무자 급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득히 머나먼 윗분들의 마음을 읽어내려 그것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능력만 늘어갔다.
이것은 내가 그렸던 회사생활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내가 소속된 부처가 좋지 못한 일에 휩싸여 대대적으로 개편되는 상황을 맞았다.
갑자기 닥친 변화에 우리 부처의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선배들은 발 빠르게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사수였던 차장님도,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배들도 각자의 살길이 바빠 나의 행보까지 신경을 써줄 수는 없었다. 부처 막내인 내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팀장님과의 마지막 상담에서 내가 현 소속 부서에 남게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을 신뢰했고, 그를 믿었지만 나는 결국 부처의 가장 마지막 바둑돌이 되어 그곳에서 튕겨져 나왔다. 마지막 바둑돌을 선정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나를 비롯한 모두가 지쳤있었다. 결정을 통보받던 날, 사실 잠시 후련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것이 나의 잘못도 아니고, 그의 잘못도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내게 지금, 그때와 같은 일이 닥친다면 나는 우리 팀의 막내를 어디까지 챙길 수 있을까 자문할 때, 나는 그들과 다를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조직이라는 곳은 밖에서 보면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만, 조직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직 내 모든 이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승진이든, 전보든, 급여든 누군가 웃으면 누군가는 울 수밖에 없는 제로썸 게임이다. 그리고 그 게임은 모두에게 공정하거나 합리적이지만은 않으며, 그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웃고 우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 걸고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사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아빠는 내게 조직이란 곳에 대한 환상을 빨리 깨야 한다며 냉정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어쨌든 그 외에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조직이 주는 소속감은 댓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든 일이든 큰 기대도, 뒤따르는 실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잠시 본사를 떠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모범생 기질을 놓지 못하고, 주류 부서에서 인정받으며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던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지배해서는 안되겠다는 본능적인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에너지는 가족에게 흘러갔다.
남편이 원하는 방향을 함께 따르겠다는 나의 결정은 사실 양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특별한 지방살이
부부가 함께 한 사업소로 발령받기 위해서는, 인기 많은 수도권은 아무래도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우리에게 남은 옵션은 회사 내에서도 오지라고 알려진 사업소 두 곳뿐 이었는데, 그 중에 내가 택한 곳은 강원도에 있는 사업소였다. 나는 주거 환경 등을 재거나 따지지 않고 그저 직감으로, "남들이 항상 여행으로만 가는 지역에 한번 살아보는 것도 인생의 즐거운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으로 그 지역을 선택했다. 그 사업소가 생긴 이래 손을 들고 간 사무직은 내가 처음이었다. 모두가 선택하지 않는 길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저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 재밌게 일해보겠다는 귀여운 희망을 품은 채 인사 발령을 (기쁘게) 받았다.
내내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나 제법 크고, 인프라 환경이 다 갖춰져 안정된 도시에 살긴 했었고(그랬다는 사실도 그곳에 가고 나서야 인지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지방살이가 어떤 것인지 이해도가 부족했었다. 그저 막연히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마트든 공원이든 병원이든 어디든 자차를 이용해 다녀야 했고, 시내에 살았음에도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그런지 늘 조금은 황량하고도 적막한 분위기가 도시를 지배했다. 아쉬운 인프라 환경보다 내게는 그 도시 분위기가 훨씬 더 힘들었다. 활기차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나로서는, 척박한 그 도시에 쉽게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구 즐기고 놀러 다니자 했던 남편 역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본사보다 일의 무게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한 약속이었지만, 남편은 그곳에서 직장 생활 통틀어 그 어느 시기보다 바빴다. 그는 (본사에서와는 다르게) 유능하고 똑똑한 부장님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좋은 선배들을 만났다.
회사 풋내기 시절엔, 일을 일로써 하기보단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떤 프로젝트의 성과는 결국 승진이든, 파견이든 그 해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게 된다. 그렇기에 (주로 그 성과가 필요한) 처부장급의 높은 분의 앞날에 내가 기여하고 싶은 정도에 따라 일에 마음 쏟는 시간과 노력 투입량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따르고 싶은 훌륭한 리더 밑에서는 누가 채찍질하지 않아도, 그의 기대감을 충족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 발현됐다. 좋은 리더는 결국 품성이든, 능력이든 나 같은 병정들을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 믿었다. 남편은 그런 선배들을 그곳에서 만났고, 자의든 타의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매진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 남편도 없는 시간을 퇴근 후 홀로 보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본사에서 무능한 리더들 밑에서 고생한 남편이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고 배우며 좋은 인연을 쌓아가는 모습은 한편 다행으로 느껴졌다. 나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특별한 사업소
사업소에서 사무직이 하는 일은 주로 총무, 인사, 감사, 회계, 세무, 계약, 급여 등 그 사업소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이다. 나는 사업소 근무 첫날, 내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7개의 황화일이 자리 위에 얹어져 있는, 생경한 풍경을 맞이했다. 대충 처리했다가는 문제를 맞이할 수 있어 다들 회피하는 회계, 세무, 급여 등 주로 돈과 관련된 업무를 신참에게 몰아줬고, 그 타자가 이번엔 나였다. 우리 부서에는 내가 오기 직전에 세무 이슈가 터져 가산세를 크게 부담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는데, 담당자였던 막내와 당시 부장이 책임을 물었고, 원래도 좋지 않았던 분위기가 한층 더 가라앉았던 이유였다.
사업소마다 다르겠지만, 또 내가 있던 곳이 워낙 척박한 환경으로 유배지 역할을 하던 탓도 있겠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따를만한 선배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곳의 사무직은 주로 근무지를 선택할 수 없는 신입이나, 더 이상 승진의 가능성이 없는 차장 또는 과장, 그도 아니면 임피가 얼마 남지 않은 고참 선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주로 막내 직원들이 팀의 모든 업무를 분배하여 일했고, 고참들은 그들에게 얹혀가며 결재 창을 클릭하는 정도의 일(?)을 하였는데, 본사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배움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러한 종류의 불합리함을 매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본인의 몫을 안 하는 것은 어느덧 익숙해졌다해도(?), 본인 몫을 대신해주고 있는 후배를 괴롭히거나 훼방까지 다채롭게 놓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힘든 순간들도 있었다. 덕분에 남아있던 조직에 대한 소속감 한올마저 다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돈을 다루고, 그 규모 자체가 큰 탓에 오는 업무적 부담감도 힘들었지만, 본사와 다른 문화에 적응을 해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개중에 또 보석같은 사람들을 찾아내 마음을 터놓고 지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곳에서 만난 보석들은 결국 돌고 돌아 본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추억하기 때문인지 한층 더 공고한 인연으로 남게 되었다.
일도, 생활도 여유를 찾으며 즐겁게 지내고가자 생각했던 나의 사업소 생활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고, 사계절을 버티고 나는 이곳을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러던 와중에 전혀 다른 세계로 뛰어들 것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