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 2년차, 엄마의 세계 (1)

by 단이
특별한 결심

여느날과 다름없이 눈뜨고, 회사 갈 채비를 마치고, 통근 버스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얘기를 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나의 회사다니는 소소한 낙중에 하나였는데, 사업소에 온 뒤로 그런 낙들마저 일상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기에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았는데, 그 시기 마저도 지나니 무료함이 찾아왔다. 그 곳에서는 사람이던, 일이던 내가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없었고, 나는 점점 생기와 활기참을 잃어갔다. 나는 그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상 속에서 내 에너지를 쏟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덜컥 아이를 가져야겠단 생각을 했다. 아니, 덜컥이라는 표현은 다소 극적이고,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관념에서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게 결혼 후 아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일은 사실, 그 시기만 미정인 인생의 과제로 늘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아이같은 내가, 진짜 아이를 잘 낳고 키울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 무거운 책임감에 자꾸 외면했었던, 그런 과제였다. 어쩌면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그 시절의 결핍감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다움을 많이 잃었던 흑백 사진 같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나고 나니 알 것 같다. 인생에 그냥 흘러가는 의미없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준 이 행복을 여전히 유예했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임신


아이를 갖자 계획하고 노력했지만 (당연히) 생각만큼 뚝딱 생기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이를 가지려 한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을 준비한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뜻 모를 조바심이 났다. 리고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는 걱정과 우려가 범벅된 집착이 시작되었던듯하다.


그렇게 몇 개월 뒤, 임신 테스기에 흐릿한 두 줄을 보고 흥분(!)하여 수정체에 태명(?)을 지어 부르고 설레발을 친 해프닝이 있었으나, 그 녀석은 임신 초기의 요동을 견디지 못하고 곧 우리를 떠났다. 마음 욱신한 기억이지만, 그 일을 통해 내가 아이를 얼마나 원하는지 그 마음의 깊이를 자각하게 되었으니 다시한번 세상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싶다. 무튼, 그 짧지만 묵직했던 사건을 계기로 건강한 아이가 우리를 찾아와 주길 바라는 절실함이 더 깊어졌음은 분명하다.


실망과 걱정을 오가는 기다림으로 또 한 계절을 보내고 여름의 초입에 다다를 무렵, 마침내 맘맘보(태명)가 우리 부부를 찾아주었다. 처음엔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기쁘고, 신기하고, 내 안에 생명체가 자라날 거란 사실에 흥분하여 경이로운 나날을 보냈다. 드라마의 흔한 장면을 벤치 마크하여 어떤 음식이 구미가 당긴다며 오빠에게 주문해보기도 하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배(그냥 내 똥배)를 괜스레 쓰담 쓰담하며 태중의 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설렘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나의 임신기간은 그리 따듯하고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엄마라는 존재로 변화해가는 몸과 마음의 동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남들보다(혹은 남들만큼)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보단 행동이 앞선 채 뛰어든 세계인지라 늘 물리적인 상황의 변화에 비해 정신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랬지 싶다.


아이 있는 삶을 결정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고 단순/대담하게 행동부터 옮긴 대가를 임신기간 내내 치른 셈이다.(先 행동, 後 생각의 폐해) 내 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해 본 이력이 매우 드문, 온전한 내 자유 의지로만 움직였던 나의 평탄했던 삶이 내가 불러들인 작은 존재로 인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발 들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체감해가며, 고작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변화를 감당해야 할지 앞당겨 걱정해가며 꽤 오랜 시간 정신적 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렇게 엄마 준비 신고식을 혹독히 치르는 나에 비해, 이전과 다름없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던 남편(잘못 1도 없음)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다음 생엔 해마로 태어나 내 기필코 임신만은 피하겠다며 씩씩거린 적도 더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맘보와 내가 한 몸이었던, 그 다사다난했던 10개월이 매우 특별했던 시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가끔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엄마 뱃속에 있었던 시절을 이야기해달라 조르곤 한다. 임신기간은 내겐 그저 힘들고 혼란스러운 기억으로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녀석에게 우리의 끈끈했던 공생기를 풀어가며 그 시간들이 얼마나 진귀한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임신 및 출산 관련 상세한 내용은 하기 글 참조)

임신은 처음이라(1)

임신은 처음이라(2)

3년 만에 다시 쓰는 출산일기


특별한 다짐


엄마가 되기 위한 40주(정확히는 38.4주)간의 신고식을 마쳤다. 태아와 교감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고, 불쑥불쑥 치미는 출산의 리스크를 상상하며 두려웠고, 몸과 마음의 변화가 야기하는 백만 가지 감정들 탓에 혼란스러웠다.


이 길고도 다사다난했던 임신기간 끝에 내가 배우고 다짐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 탓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에 아이를 불러들인 것은 온전히 나와 남편의 선택이었고, 아이는 감사하게도 그저 우리의 부름에 응해주었을 뿐이다. 때문에 아이는 언제나 무고하다.


처음 아이를 품었을 땐,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할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때때로 우울하기도,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녀석이 내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매 순간 나는 내 주체적인 판단으로 아이를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고 행했을 뿐이었다.


내 남은 인생에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택하는 길이 아이 낳기 이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또는 때때로 내게 옵션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있는 삶을 택한 결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아이 탓이 아니라는 것. 이 지당하고도 합당한 사실을 나는 임신기간 동안 내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음과 다짐은 후에 출산-육아-복직의 과정에서 내 멘탈을 단단히 부여잡아주는, 지속하여 행복한 육아를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임신기간의 종료와 함께, 나는 예비 엄마에서 진짜 엄마로 발을 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