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자 계획하고 노력했지만 (당연히) 생각만큼 뚝딱 생기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이를 가지려 한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을 준비한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뜻 모를 조바심이 났다.그리고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는 걱정과 우려가 범벅된 집착이 시작되었던듯하다.
그렇게 몇 개월 뒤, 임신 테스기에 흐릿한 두 줄을 보고 흥분(!)하여 수정체에 태명(?)을 지어 부르고 설레발을 친 해프닝이 있었으나, 그 녀석은 임신 초기의 요동을 견디지 못하고 곧 우리를 떠났다. 마음 욱신한 기억이지만, 그 일을 통해 내가 아이를 얼마나 원하는지 그 마음의 깊이를 자각하게 되었으니 세상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싶다. 무튼, 그 짧지만 묵직했던 사건을 계기로 건강한 아이가 우리를 찾아와 주길 바라는 절실함이 더 깊어졌음은 분명하다.
실망과 걱정을 오가는 기다림으로 또 한 계절을 보내고 여름의 초입에 다다를 무렵, 마침내 맘맘보(태명)가 우리 부부를 찾아주었다. 처음엔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기쁘고, 신기하고, 내 안에 생명체가 자라날 거란 사실에 흥분하여 경이로운 나날을 보냈다. 드라마의 흔한 장면을 벤치 마크하여 어떤 음식이 구미가 당긴다며 오빠에게 주문해보기도 하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배(그냥 내 똥배)를 괜스레 쓰담 쓰담하며 태중의 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설렘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나의 임신기간은 그리 따듯하고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엄마라는 존재로 변화해가는 몸과 마음의 동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남들보다(혹은 남들만큼)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보단 행동이 앞선 채 뛰어든 세계인지라 늘 물리적인 상황의 변화에 비해 정신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랬지 싶다.
아이 있는 삶을 결정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고 단순/대담하게 행동부터 옮긴 대가를 임신기간 내내 치른 셈이다.(先 행동, 後 생각의 폐해) 내 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해 본 이력이 매우 드문, 온전한 내 자유 의지로만 움직였던 나의 평탄했던 삶이 내가 불러들인 작은 존재로 인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발 들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체감해가며, 고작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변화를 감당해야 할지 앞당겨 걱정해가며 꽤 오랜 시간 정신적 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렇게 엄마 준비 신고식을 혹독히 치르는 나에 비해, 이전과 다름없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던 남편(잘못 1도 없음)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다음 생엔 해마로 태어나 내 기필코 임신만은 피하겠다며 씩씩거린 적도 더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맘보와 내가 한 몸이었던, 그 다사다난했던 10개월이 매우 특별했던 시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가끔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엄마 뱃속에 있었던 시절을 이야기해달라 조르곤 한다. 임신기간은 내겐 그저 힘들고 혼란스러운 기억으로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녀석에게 우리의 끈끈했던 공생기를 풀어가며 그 시간들이 얼마나 진귀한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서 오직 녀석과 나만이 공유할 수 있는 교감으로 점철된 우리의 10개월. 이미 가물가물해진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기억의 파편 같은 기록들을 조각조각 붙여 나의 임신기를 적어 내려가 보고자 한다.
#초기 : 녀석과의 공생이 시작되다.
8주 차에 접어드니 티브이에서만 보던 입덧이 내게도 찾아왔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증상이 생겼는데, 원체 멀미가 없던 터라 그것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속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당히 배를 채워야만 그 불편함이 나아져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겨 먹으며(=먹덧) 극복했다. 그리 크게 힘들진 않았지만 임신 후 나타난 첫 번째 몸의 변화라 꽤 임팩트 있는 기억으로 남는데, 짧게나마 이 시기를 겪으며 두 가지를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내 몸은 어떤 상황에서도 음식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과(기특), 누군가 정말 내 몸 안에서 나와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신기)을 말이다.
녀석과의 슬기로운 공동생활을 위해 내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들은 아주 다채롭기도 했다. 특히 초기엔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은 이미 애초에 포기했다지만 염색을 하고 화장품을 고르는 일도, 무거운 물건을 든다거나 걸레질을 하는 일상 등도 모두 제약을 받을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몸무게의 변화는 미미했지만 이상하게 물먹은 솜처럼 행동이 둔해지고 쉽게 나른해지는 등 몸의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연해졌다. 임신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임산부 Do&Don't 리스트>를 찾아보기도 했는데(대부분 하지 말라함) 어느새 그것을 검색하고 있는 행위 조차 스트레스로 느껴져 그냥 최대한 조신하게 지냈다.
그렇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지라 때때로 그 제약들이 속박같이 느껴져 갑갑했고, 무엇보다 그러한 제약들이 의미하는 바가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의 종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기분이 급격히 울적해지기도 했다. 초음파로 본다 해도 손가락 한마디를 넘지 않는 크기의 작은 존재가 내 몸과 마음을 (당당하게) 공유하고 (때때로) 지배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던 임신 초기. 마음의 리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내렸지만 그럴 때면 눈을 감고 조용히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날들의 내 마음을 떠올렸다. 매번 통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떠올리면 혼란스럽던 마음의 동요가 이내 잠재워지곤 했다.
임산부 대상 단축근무 제도를 운영(임신 초기 및 말기에 限함)하는 회사 덕에, 임신 초기에 급격히 몰려오는 피곤함 등 몸의 변화에 대응하기 수월했다. 두 시간 이르게 집에 도착하여 영양 가득한 저녁상을 차려 먹기도 하고, 임신 관련 서적을 읽는다거나 태교 활동 등을 했어야 했는데...(전혀 안 함) 대부분의 날들을 몸이 무겁고 심란한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로 그저 푸-욱 쉬기만 한 것 같아 그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초기에 가시적으로 행한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태아보험을 가입한 일이다. 아직 태어나기는커녕 젤리 곰 형태를 띠고 있는 녀석의 보험 서류를 작성하며(계약 만료일 2046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아마도 그 서류는 내가 아이의 보호자로서 처음으로 서명한 서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맘맘보가 서류상으로도 존재하는 개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듯하다. 더불어 나이 서른 먹도록 회사 단체보험 외에 무보험으로 살고 있는 나와 견주어 비교하며 요즘 아이들은 팔자 좋게 태어나기도 전부터 다 갖춰 태어나는구나 라는 꼰대 어린 생각도 스쳤던 것 같다 후훗.(꼰대 새싹반)
#중기 : 임신 중기가 되면 날아다닌다고 말한 사람 누구냐.
초기에 유난스럽게 감정의 동요를 굵직하게 겪어서 그런지, 중기들어선 한결 마음이 가뿐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이제 현실을 인지하고 내 상황을 받아들이기 수월해진 마음가짐으로 변화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주수가 다르게 커져가는 녀석 덕에 배도 제법 나와, 어디에서도 임산부 대접(?)을 받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시기가 도래했다.
흔히들 임산부들이 날아다닌다고 표현하는 임신 중기. 그러나 내게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일은 애석하게도 방광염에 걸린 일이다. 방광염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 밤중 난데없이 증상이 발현하여 나와 남편을 매우 당황시키더니(응급실 2회 출석), 몇 주 후쯤 별다른 조치없이 또 완전히 사라졌다. 임신 중엔 어떠한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선배맘들의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일어나는 일도 있나 싶어 두려움이 엄습했다. 쫄보 엄마는 이것이 혹시 중기에 접어들었다 해서 작정하고 나댈 계획을 잡고 있던 내게 적당히 자중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의미부여하며 희망차게 기획했던 태교여행 (to 괌)도 이를 계기로 포기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들 뿐이라지만 녀석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포기하는 것(ex. 회+쏘맥, 엎드려 누워 책 보기, 해외여행 등)들이 늘어갈 때마다 스트레스 비슷한 압박을 받았다.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최고조에 달할때쯤, 첫 태동을 경험했다. 사실 태동을 느끼기 이전까진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 보는 초음파 외에 녀석을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태동을 느낀 이후,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진 않으나 녀석이 분명 실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보다 여실히 들었달까.
매일 거세져 가는 녀석의 힘찬 발길질이 마치 나에게 '나 여기 잘 있어요 엄마~'하며 소통(?)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직 모성이라고 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애착이 깊어져 갔다. 그리고 차곡히 쌓인 애착 덕인지, 언제부턴가 녀석때문에 행동의 제약을 받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들이전처럼 그리 힘들게만 느껴지진 않았던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