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산 검은 피』 오봉옥

by 신재창

오봉옥 시인의 시집 『붉은 산 검은 피』가 온다. 33년 만에 만나는 개정판이다. 4.3 직전에 발생한 미군에 의한 화순 탄광 노동자 학살 사건을 시로 썼다는 이유로 필화 사건을 겪어야 했던 오봉옥 시인. 그의 큰아버지도 1946년에 일어난 그 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붉은 산 검은 피』가 실천문학에서 발간된 해는 1989년이다. 43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시로 썼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시인을 구속시켰으니 집권 세력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민중을 "개, 돼지' 취급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나 내 가족이 당한 일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적군도 아닌 아군에게 당한 일이니 그 고통과 억울함은 말로 해 무엇할까. 당시 이 시집의 파장이 얼마나 컸던지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지리산 갈대꽃의 1, 2부를 이루고 있는 '아버지' 연작을 출발점으로 해서 두 번째 시집 『붉은 산 검은 피로 정점에 다다른 오봉옥의 일련의 작업은 저 80년대 한국 사회의 성격 논쟁과 맞물리면서 문단 안팎으로 엄청난 충격을 가한 게 사실이었다."


두 번째 시집 이후로 8년 만에 발표한 오봉옥 시인의 시집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의 해설 중 일부다. 그 파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9개월 만에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실천문학 전 주간과 함께 연행되고 만다. 당시 사건을 다룬 연합뉴스 기사가 아직 남아 있어 옮겨 본다.



'붉은산 검은피' 시집 저자 吳봉옥씨 연행

입력 1990. 02. 21. 연합뉴스

治本,실천문학사 前주간 宋기원씨도

(서울=연합(聯合)) 치안본부는 21일 하오3시30분께 서울 은평구불광동484-13 도서출판 실천문학사 서적창고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이 출판사에서 발행한 시인 吳봉옥씨(29)의 시집 `붉은산 검은피'74권을 압수했다.

치안본부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7시께 광주(光州) 吳씨 집에서 吳씨를 연행,국가보안법위반 혐의(이적표현물제작)로 조사중이며 前실천문학사주간 宋기원씨(43)도 서울종로구 내수동4 목빌딩 405호 宋씨의 창작실에서 같은 혐의로 연행,조사중이다.

한편 한국출판문학운동협의회는 `오봉옥.송기원씨 연행과 실천문학사 압수수색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붉은산 검은피'는 1940년대 항일투쟁시기부터 46년 10월항쟁(대구폭동)까지의 민족운동사를 형상화한 시집으로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있다"고 주장하며 "吳.宋씨 연행과 실천문학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국민의 입과 귀를 봉쇄하려는 반민주 세력의 무모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붉은 산 검은 피'출판 宋基元씨에 징역6월

입력 1990. 05. 30. 연합뉴스

저자 吳奉玉씨는 징역8월에 집행유예 (서울=연합(聯合))서울형사지법 4단독 李昌學판사는 30일 시집'붉은 산 검은 피'를 출판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배포혐의로 구속기소된 실천문학사 前주간 宋基元피고인(43)에게 징역6월.자격정지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함께 기소된 이 시집의 작가 吳奉玉피고인(28)에게는 징역8월.자격정지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석방했다.

宋피고인등은 지난해 5월 이적성이 인정되는 시집'붉은 산 검은 피'1.2권을 각각 2천부씩 발간,대학가서점등에 판매한 혐의로 지난2월 구속기소돼 징역3년-2년씩을 구형받았었다.




나는 『나 같은 것도 사랑은 한다』로 오봉옥 시인을 접했다. 그의 간결하면서도 정감 있는 전라도 사투리가 좋았고 꾸미지 않는 그의 어법이 좋았다. 출간된 지 이십 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나의 최애 시집 중 하나다. 시집을 펴고 좋아하는 시 몇 편 적는다.




옥밥

/ 오봉옥


옥밥 한술 억지로 우겨넣다

생각하거니

엄니가 흙마당 멍석 위로 저녁을 나르실 때

풀물든 손을 툴툴 털어내던 아버진

어여 와 어여 와 하시었는데

그 엄니 오늘은 밥상머리 한 구석이 비어

된수저 치켜들다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아내의 눈

/ 오봉옥


1

아내가 누렇게 뜬 얼굴로

죽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뜨다 만 그 눈을

울음소리 한번 없이 다문 그 작은 입술을

죽어라고 낳았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내의 눈을 보니

보일 듯 말 듯 어두워만 가는

산기슭 같은 데서

홀로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2

영양실조라니요

못난 시인 만나

죽은 아일 낳았다니요

부르르르 떨고 있는 아내를 달래다가

그만 와락 안고 울어버렸어요.


3

내가 바로 한 여자의 지아비란 말인가

반지하 다섯 평 골방에서 핏기 하나 없이 무너져내리도록

난 뭐 했을까 뭐 했을까

아내의 발꿈치도 못 헤아린 내가

다시금 반지하 어둠 속으로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하는 내가

정녕 한 여자의 지아비란 말인가.




기다림

/ 오봉옥


저것 보시라 티 하나 없는 하늘이 하룻밤에 꽃을 피워낸다

저것 보시라 검푸른 산이 하룻밤에 풀이란 풀 다 일으킨다

이쯤해서 다시 보시라 날 버릴 때의 그 미움 남았다면 보시라 다시 보시라

저무는 하늘가에 보이지도 않게 서 있는 나

한번 피워보지도 못한 내 얼굴

추하게만 시들어가는 내 손톱

십 년을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기다렸으니

또 십 년은 죄인처럼 엎드리고 기다릴란다

나 같은 것이 어찌······

나 같은 것이 어찌······ 하며 그저 기다리기만 할란다




살다가

/ 오봉옥


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




정다방 김양 2

/ 오봉옥


숫총각 하나 물어

시집 간다기에

오메 저년 오메 저년 했건만

석 달 만에 다시 돌아와

여그가 내 고향인갑다 하는

오메 저년 저 주둥이.




면 회

/ 오봉옥


뺑끼통에 앉아 서럽게도 울었나 보다 옥창에 기대어 발목만 슬쩍 담근 햇살이 정색을 하며 등을 돌린다.


감방에는 삼 년을 선고받은 절도범이 태평스럽게 코까지 골며 낮잠을 자고 건너 사동을 비껴보니 학생들이 좁은 옥창에 얼굴들 내밀고 조국이니 사상이며 하며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


지금쯤 면회를 마친 엄닌 무거운 몸 질질 이끌고 옥너머로 걸어가실 게다. 누가 쉽게 죽냐고, 난리를 세 번이나 겪은 몸이라고 주절주절 걸어가실 게다.


나는 지금 붉은 딱지로 사형 날짜 앞두고도 오히려 면회온 엄니부터 위로하셨다는 그 옛적 아비가 무지무지 보고 싶다.




내 몸

/ 오봉옥


싸움은 늘 나에게서 시작되거늘

무겁다 내가 눕힌 긴 그림자

아프다 아무렇게나 쓰러진 몸

울다가 웃다가

으흐흣 미친놈처럼 독을 삼키기도 하다가

죽을 몸

죽지 못해 다시 일어날 몸

일어나 사람들의 마을로 거리로 치달려

마침내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 엎드릴 몸

그렇게 한 오십 년 흐른 뒤

내 안에서 깊어질 대로 깊어져

알았다, 사람들을 알았다고 피식 웃을 몸

싸움은 늘 나에게서 시작되거늘.




낙엽

/ 오봉옥


제 몸 추스르기가 힘들어

누렇게 누렇게 뜬 얼굴로

저문 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만 툭 꺾인 낙엽이여

작업복 하나 아무렇게나 입고 가다 너를 본다

아 너도 보았는지

수은에 찌든 내 얼굴.




북녀에게

/ 오봉옥


어서, 어서 오세요

밤새 뒹굴어봅시다요

남사시럽네 남사시럽네 수줍음도 타다가

아따, 어떠냐 어떠냐 하며

꼬박 날을 샙시다요

그 아침 새끼손가락을 건 채로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시야 눈물이 났시야 하며

또 웁시다요.




첫눈 1

/ 오봉옥


첫눈이 나리면요

소구루마 끌고 간 아비, 짐꾼인 아비

눈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웅덩이에 빠지면 어쩌나

동구 밖 길 보다 보다 잠이 들었어요

장사 나간 엄니, 과일행상 울 엄니

얼어붙은 사과 다 못 팔고 눈물바람으로 오실까봐

자다가도 함께 울었고요.




첫눈 2

/오봉옥


첫눈이 나리면요

나만한 애들 몰려나와 와와 소리지르고요

누나만한 계집애들 어머어머 껑충거려요

우린 두 발을 동동거리는데

꽁꽁 얼은 사과 누가 사갈끄나

엄니도 저만치서 동동거리고 섰는데


난 첫눈이 싫은 열다섯

두 살 터울 누나도 첫눈이 싫대요.




/ 오봉옥


설사도 똥이라고 석삼 년을 누다 보니

이 몸으로 무얼 하겠나 싶은 게

내리내리 부끄러웠거늘

오늘에야 누런 똥 누고 보니

옹골지구나 그놈

날 닮아 어미 속 어지간히 끓인 놈

속이 다 타서 없어지것시야 할 때까지

속 썩인 놈.




/ 오봉옥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들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삶의 아픔이 진주를 길어 올리는 자양분임에는 틀림없으나 이제는 좀 안 아팠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몸은 성치 않다. 최근에도 큰 수술을 받았다. 아픔을 싸지른 미군도 독재도 군부도 세월도 아득히 멀리 가버렸지만 몸에 남긴 생채기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누가 보상해 줄까 이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비명횡사한 그의 큰 아버지를, 빨갱이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할까 전전긍긍해야 했던 남은 가족들을, 그 사건을 시로 썼다고 지명수배 당해 도망 다니다가 결국 옥살이까지 하며 몸까지 망가진 그의 삶을. 어느 누구 하나 그와 그의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었을까? 1980년 5월 현장에 오 시인도 있었다. 무엇이 시인에게 무기를 쥐도록 만들었으며 무엇이 그를 그 죽음의 현장에 밀어 넣었을까. 오봉옥 시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화순 사건을 몰랐다. 이 땅에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내 무심함이 미안할 따름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때로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그 매듭 한 마디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눈물이 섞여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고마운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아픔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33년 만에 다시 나오게 되는 시집 소식을 듣고 그의 삶과 그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며 며칠 마음이 짠했다. 새 음반 출시를 앞두고 바쁜 나날이지만 간략하게라도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 일도 아니지만 돈이 안될 것을 알면서도 개정판을 내는 솔 출판 임우기 대표에게도 그냥 고마운 마음이 든다. 후원 기간이 짧아 4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이렇게나마 마음의 부채를 덜어본다. 짐꾼 아비와 과일 행상 엄니를 생각하면 첫눈이 얼마나 미웠을까. 아버지는 일찌감치 떠나시고 어머니도 몇 년 전 아버지 곁으로 가셨으니 이제 첫눈이 싫지 않은 세상이겠다. 이제 좀 첫눈이 살가운 세상이겠다. 누이도 오 시인도······





세상은 언제나 겨울이어서

가도 가도 외롭고 추운 곳이지만

내 가진 작은 등불을 밝혀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다면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어서

함께 살아가고

아직은 훈훈한 사람이 있어

따뜻해지네


「아직은」 中 부분 / 삶의 시, 삶의 노래 2집 『모래내 종점』 수록곡

문철수 시, 신재창 곡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과연 모두 좌익이나 빨갱이여서 그 자리에 나갔나. 아니지 않나. 촛불이라도 하나 밝혀야지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방 직후의 상황도 비슷했을 것이다."


해방된 나라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가고 싶었던 마음,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고 싶었던 마음,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생존의 절규가 바로 너릿재 고개를 넘던 대부분의 이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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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화순칸데라 1946>의 한 장면 ⓒ KBS


화순 그리고 이어진 여순 사건 그리고 제주 4.3까지 우리의 역사는 그 모든 것을 묻어 버렸다. 1989년 오봉옥 시인은 <붉은 산 검은 피>를 통해 비로소 역사의 행간에 묻혔던 화순 사건을 세상에 드러냈다. 자신의 큰아버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쓴 시였다. 그러나 오봉옥 시인은 '이적 출간물 출간'이라는 이유로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제 제주 4.3 71주년을 맞았다. 늦었지만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역사의 행간 속에 묻혀 있던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복기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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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기간: 2022.4.25(월)~5.15(일)

후원 금액: 1구좌당 15,000원

후원 계좌: 국민은행 185801-01-002862 임양묵(도서출판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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