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도시락은 사랑이고 추억이다

“여보, 내일 새벽 5시에 깨워줘”


아내는 아침잠이 많다. 맞벌이를 28년째 하면서 항상 내가 먼저 일어나서 씻고 아내를 깨웠다. 아이들 소풍 가는 날이면 아내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아이들 소풍 도시락은 전날 저녁부터 준비한다. 퇴근길에 김밥과 유부초밥 재료를 사서 집에 와서 저녁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미래 준비해둔다.

새벽 5시. 아내가 일어날 시간이다. 알람이 울리고 내가 깨우면 아내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아내는 김밥을 만들고 나는 유부초밥을 만든다. 재료 준비를 모두 해주면 나는 유부에 속을 넣는 정도다.


“맛이 괜찮은지 맛볼래요”


아내표 김밥은 맛있다. 두 아이 초, 중, 고등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항상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섞어서 도시락으로 만들어줬다. 김밥천국 등 김밥집이 많은 요즘 사서 보내도 될 텐데 아내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출근을 한다. 주방에서 김밥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도 내가 학창 시절 소풍이나 운동회를 하면 새벽부터 도시락 만드는 데 여념이 없으셨다.

나는 노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다닌 노진 국민학교는 전교생 1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시골 학교다. 김 씨 마을, 문 씨 마을, 박 씨 마을 등 씨족으로 이뤄진 공동체이다 보니 아저씨, 삼촌, 할아버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학교에서 소풍이나 운동회를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의 잔치로 동네가 들썩였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없던 시절이다. 시골은 더욱더 마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나도 초등학교 6년 동안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4킬로미터 떨어진 읍내로 나아가면서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소풍은 동네 분들도 같이 참여하는 여행프로그램이다. 항상 어머니는 소풍 때면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김밥을 준비해주셨다. 어머니도 같이 가야하고 누나와 동생도 같이 가야 함으로 김밥은 가족 여행가는 많이 쌌다. 여행이라 봐야 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이화리에 있는 남양방조제로 가서 잔디밭에서 학년별 장기자랑하고 공차고 놀이하는 것이 전부였다. 6년 동안 내리 여기로 소풍을 갔다. 그래도 학교를 벗어난다는 것이 즐거움이다.


국민학교 1학년이 2시간을 걷기가 힘들었지만 서서히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구경하면서 담임의 구령에 맞춰서 줄을 서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차량이 없던 시절이다. 시골에 자동차보다는 소가 끄는 달구지가 교통수단 전부였던 시절이다 보니, 도로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1학년 처음 소풍이라 설렘과 집에서 가장 먼 곳까지 나들이했다는 것에 설렜다. 점심을 각자 부모님들과 모여서 먹고, 오후 장기자랑이 시작됐다.

"누가 먼저 앞에 나와서 장기 자랑할까?"


그때 놀랍게도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동네 어른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란 표정이다. 나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서 두 손으로 동작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짝짝꿍 짝짝꿍 엄마앞에서 짝짝꿍 짝짝꿍 짝짝꿍 아빠앞에서 짝짝꿍

우리아기 잘한다 우리아기 잘한다 짝짝꿍 짝짝꿍 정말 잘한다.

짝짝꿍 짝짝궁 언니앞에서 짝짝꿍 짝짝꿍 오빠앞에서 짝짝꿍

우리아기 잘한다 우리아기 잘한다 짝짝꿍 짝짝꿍 정말잘한다

무용과 노래가 끝나자 어른들이 더 큰 환호성으로 답해주셨다.


"너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나에 물으셨다. 나는 집에서나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였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동네 어른들은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며 내가 제일 먼저 노래를 부른 것을 대견해하셨다.


소풍 때 어머님이 싸주신 김밥 도시락은 사랑이고 추억이다. 김밥 먹으면서 목메지 말라고 사이다도 한 병씩 챙겨주셨다. 아내도 아이들에게 사랑과 추억을 심어줬다.

“출근하는데 힘든데 그냥 김밥집에서 사서 줘도 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출퇴근하느라 아이들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소풍 갈 때만이라도 잘 챙겨줘야지. 친구들 맛나게 먹는데 우리 아이만 분식집에서 산 김밥 한 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내의 논리다. 예쁜 도시락에 김밥과 유부초밥, 작은 주먹밥이 담기고, 따뜻한 물 한 병,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수 한 병 챙겨서 식탁 위에 놓으면 아이들이 챙겨서 다녀온다.


자녀들 소풍 때 새벽부터 서둘렀던 어머니와 아내는 자식들에게 사랑을 도시락에 담아 준다.


소풍 때 도시락은 사랑이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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