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의 호출에 이번 가을 단풍구경도 고향에서 하게 됐다. 일주일 동안 학교 일에 힘을 모두 소진한 상태라 휴일은 쉬고 싶지만, 농군의 아들로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속으로 투덜대며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모든 것을 기계로 하는데, 굳이 내 도움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서울을 빠져나갈 동안 머릿속에서 맴매 돌고 있다.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면서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한껏 드리마셨다. 막혔던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다. 발안을 지나면서 길가의 코스모스와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논들이 드넓게 펼쳐졌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구나, 벌써 벼 이삭들이 노랗게 익었네’
파란 가을하늘과 노랗게 물든 벼이삭을 보니 가을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장마와 여름이 끝나면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면서 벼이삭들이 영글어간다. 이 시기에 비라도 오면 농사는 망치고 만다. 원래는 일주일 후 추수하기로 했는데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서 일주일 당겨서 온 동네가 추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넓게 펼쳐져 있는 벼 이삭들을 바라보자니 울적했던 기분이 풀렸다. 지난 5월에 모내기하고 장마를 잘 견디어낸 벼들은 농민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줬다.
시원한 바람과 노래를 들으며 논으로 바로 갔다. 탈곡기가 지나가면서 한 가마니씩 벼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지금이야 기계가 논을 돌아다니면서 벼를 수확하지만,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일렬로 낫을 들고 서서 두세 고랑씩 벼 이삭을 배고, 지게로 옮겼었다. 30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벼베기를 하려면 집집마다 날짜를 정해서 동네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서 품앗이를 해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계가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형수가 간식 광주리를 머리에 메고 걸어오고 있다. 아침부터 막걸리 한잔 마셔야겠다. 기계도 잠시 쉼이 필요하겠지.
“농사철에 일손이 부족해서 큰일이예요. 바쁜데 내려오라해서 미안해요”
논에서는 지금도 벼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변함없이 익어간다. 그런데 농촌 사정은 열악하다. 점차 일손이 부족해지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고, 평균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 집도 형님이 벼농사를 짓지 않은 것이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동네 다른 사람이 대신 농사일해주고 있다. 동네에는 청년이 없다. 65세 된 분들이 청년이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림어업에 종사자 중에 65세 이상이 42.1%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조사 때 보다 4.3% 늘어난 수치다. 평균연령도 65.9세다. 연령이 높아지면서 농사지을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촌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됐다.
코로나로 시골 안간지 2년이 되고 있다. 형님이 농사를 짓지 않음으로써 추수철에 내려가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이제는 가을들녘의 풍요로움을 볼 수 없다. 점차 더 그럴 것이다. 지금 계신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갈우물이라는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 도심 생활하는 사람들이 돌아온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한 대안이 없는 듯하다. 나 또한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내 꿈은 농사짓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풍년가를 부르며 품앗이로 농사짓던 옛 시절이 그립다. 힘은 들었어도 함께하고 나눠먹는 정이라는 것이 힘듦을 이겨내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