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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배 Oct 20. 2024

[독서칼럼 5]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숲을 만들어주자

매년 3월 중학교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2주일 정도 지나면 아이들의 본성이 나타난다. 2월쯤 신입생 인적성 검사를 통해 성향들을 분산시켜서 반 배정을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마저도 효과가 없다. 외향적이고 활달한 아이들이 한 반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선생님, 이제 시작인데 진이 때문에 미치겠어요. 매일 아이들과 투닥거려요"

"부모님과 상담해 봐요"

"어제 부모님과 상담했거든요. 근데 엄마랑 아이랑 똑같아요. 얘기가 통하지 않아요"

새 학기 시작하고 1달이 지나는 시점에서 1학년 담임이 교무실에서 하소연한다. 수업 들어가는 선생님들이 모두 이 반만 힘들다고 말한다.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활달하고 장난치고 정신없다. 아이들이 인적성 검사를 장난으로 찍은 것일까? 어떻게 한 반으로 몰릴 수가 있을까?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인적성검사가 문제가 아니라 요즘 아이들의 성향이 대부분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담임과 상담을 하고 나서 가정에서 교육 방식이나 부모가 변하려는 노력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 부모는 제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소위원회와 선도위원회 열려야만 그제야 조금 아이에게 대해 상황을 인지할 뿐인 것 같다. 가정마다 자녀들이 한두 명이다 보니 귀하고 귀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을 부모는 가르쳐야 한다. 

수업 중에 친구들에게 욕하는 아이가 있다. "미래야 수업 시간에 욕하면 안 되지, 왜 자꾸 욕을 하지"라고 지적을 했다. 아이의 반응은 별로 반성의 기미는 없고 "이번 한 번만 했는데요"라고 말한다. 순간 화가 나서 수업 중 몇 번 했는지 알려줬는데도 아이는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한 행동에 항상 정당성을 주장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본인의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는 것은 부모들의 역할이 크다. 어려서부터 누굴 보고 배웠을까? 당연히 부모를 통해 아이는 성장하는 것이다. 말할 때마다 욕하는 부모의 자녀는 당연히 친구들이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역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며,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악몽은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다칠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부모와 아이는 속상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달라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가 배우고 커가는 모습을 보려고 해야 한다. 

부모가 항상 옆에서 잡아주고 앞에서 끌어주면 아이는 편할지 몰라도 자기의 힘과 능력을 확인할 기회를 읽게 된다. 부모의 자리는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한다. 담임이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요, 그런 행동 절대로 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기보다는 한발 물러나서 학교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인지하고 가정에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담임과 상의해야 한다. 

오늘의 돌이 내일 산이 될지 모르나 자녀들 스스로 등반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앞날에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를 부모가 만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돌을 만나게 해줘야 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내 아이가 갈 길을 비로 쓸어주고 장미꽃을 뿌려놓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 거친 길을 그대로 두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떤 것을 기억할까? 성인이 되어서 실패하고 힘들 때 부모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어렸을 때 돌에 부딪혀 넘어졌는데 엄마가 꼭 안아줬던 기억을 할 것이다. '내가 정말 아팠을 때 엄마가 나를 꼭 안아줬어', '내가 시험을 망쳤을 때 아빠는 나에게 맛난 빵을 사주면서 위로해 줬어' 이런 기억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면서 다시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 아이들은 잠시 엇나갈 수 있다. 부모는 기다려주고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이 시기의 잔소리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집에 오면 따뜻하게 밥 먹게 해주고, 늦게 들어오면 '어서 씻고 자거라 오늘도 고생했구나'라고 한 마디만 해줘라. 부모가 제대로 살아가면 아이는 잠시 다른 길로 갔다가 부모의 뒤를 밟으며 성장할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포근한 숲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잘 살아야 하고 보여줘야 한다. 

첫째, 사랑의 경험을 많이 받게 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을 말로도 표현하고 행동으로도 보여줘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부모의 잔소리보다는 애정 어린 눈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집에 들어오면 포근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가 사랑한다고 말해도 아이들은 반응하지 않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뇌속으로는 무한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풍요롭게 성장할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와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행동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성장해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 한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나 또한 힘들고 슬프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잔소리하지는 않는다. 이런 시련도 삶의 일부분이며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심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오늘 맛있는 것 사 먹어'라며 문자도 보내고, 책 속의 좋은 문장들도 보내주면서 이겨낼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부모는 보여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용기와 재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의 친구들고 비교하지 말고, 항상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려고 해야 한다.

공자는 제자 염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힘이 부친다는 것은 힘껏 길을 달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너는 마음으로부터 선을 긋고 있구나"

제자 염유가 힘에 부치며 투덜대는 모습을 보면서 공자는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위축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너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공자는 묻는 것이다.

아이가 하기 싫다고 부모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줘서는 안 된다.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고 환경만 만들어줘야 한다. 너무 관심 가져도 안되고, 너무 관심 없어도 안 되는 것이 자녀 교육이다. 

부모는 아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숲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지 말자.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2024.10.20.

작가 김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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