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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배 May 29. 2020

자전가 태워줄까

   필자보다 열 살 많은 윗동서와 2월에 여행을 떠났다. 장고항으로 출발한 우리는 낚시도구들을 챙기고 필자의 고향인 조암 읍내 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이라 장터가 활기찰 줄 알았는데 코로나여파로 오일장이 열리자 않는다고 한다. 조암은 청소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추억도 많은 곳이다. 


 학생들에게 문구류와 서적류를 제공했던 유일한 문방구겸 서점인 학우당, 사거리 모퉁이에 아침저녁으로 고소한 냄새를 풍겨대던 치킨집, 청춘들의 집합소 분식집이었던 하얀집, 자전거 집합소인 화성 자전거 수리점들... 옛 기억을 떠올리며 조암 읍내 중심으로 들어섰다. 학우당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전거 수리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형님이 자전거 부품을 산다고 해서 자전거 점포를 들어섰다.     


   이 자전거 점포는 중고등학교 시절 4킬로미터 떨어진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이 곳에 정차시키고 학교 까지 걸어갔던 자전거 터미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시원함 속에 조암 읍내에 도착하면 자전거를 맡아주는 화성 자전거 점포에 세워두고 학교까지 10여분 걸어서 올라갔다. 화성자전거 점포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도록 무상으로 장소를 제공해주시고 빵구나 자전거 수리를 해주고 자전거를 판매하는 곳이다. 자전거 점포를 들어서면서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대중교통도 없던 시절, 중학교 고등학교를 동무들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남학생들은 자전거라도 있어서 타고 다녔지만 여학생들은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녀야 했다.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니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서 쌩쌩 달려도 두려움이 없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후배 녀석이 학교에 세워둔 자전거를 망가트렸는데. 사과 한마디만 받고 용서해줬다. 지금 같았으면 상상할 수 도 없던 사건이다. 그 이후로 학교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삼삼오오 걸어가는 여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세 살 위인 누나를 만나면 가방만 받아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버스가 우리마을까지 들어오면서 자전거 타는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가끔은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여학생 한 명이 가방을 둘러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같은 반 형옥이다. 같은 반이면서 말 한마디도 해보지 않았던 친구였는데 그날은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 내가 말을 걸었다.     

 “형옥아 집까지 태워줄까?”

 나의 느닷없는 질문에 형옥이는 망설임 없이 내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친구의 집과 우리집은 방향이 달랐지만 친절하게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집까지 데려다 줬다. 

 “이 친구는 누구니?” 친구의 아버님 말씀에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빨개지며 자전거를 타고 후다닥 집으로 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아무말도 안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쑥쓰러워서그랬을 것이겠지. 30여분 자전거에 친구를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 주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했을까? 지금의 기억으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친구가 힘드니까 집까지 데려다 줘야지 라는 마음만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35년이 지난 요즘. 그 친구는 서울에서 수원으로 출퇴근하며 사업을 하고 있다. 


 “사장님 요즘은 어떠신가. 어제 퇴근하다가 담벼락에 친구의 얼굴들이 걸려있던데”

라는 아제 농담에 친구는 폭소를 터트린다.


  친구는 장미꽃을 닮았다. 장미가 피어오르는 5월 말이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전거로 태워주면서 정말 아무말도 안했을까? 친구도 모르겠단다. 그래도 이렇게 나이 먹어서 농담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시작한다.    


                                         2020. 05. 29


                               행복진로학교 파워티처 김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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