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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Nov 29. 2020

담배회사 직원은 자녀에게 담배가 안 좋다고 말하나요

민감한 주제다. 부디 건네고 싶은 이야기와 드러내고픈 마음을 글에 잘 담아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사실 새로운 주제가 아닌 직장 생활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외국계 기업에서 헬스케어 사업 전략기획 매니저로 일했을 때 일이다. 하루는 영혼이 털털 탈리면서 퇴근하고 있었다. 회사 로비를 나오는데,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 뭔가 스스로에게 위로할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크, 그래도 넌 환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다니잖아. 너의 모든 노력이 결국은 환자들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아무런 의미 없는 것 같았던 하루가 의미가 있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헬스케어 분야에 있어서 가능했지, 만약에 담배회사에서 일했다면 이런 위로도 불가능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과 생각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바탕엔 이 질문이 있었다.

"회사가 만드는 가치와 나의 가치가 상관있을까?"




제품, 회사, 그리고 직원


세상에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회사가 존재하고, 회사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하는 다양한 직원이 존재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제품은 모든 직장인의 노력의 결과다. 이런 연결 고리로 인해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인 제품과 나의 가치를 연관 지을 때가 있다. 특히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이전 회사처럼 사람들의 병을 예방하고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필요한 진단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MRI, CT 장비를 생산해서 판매할 때가 그러했다.  


애매한 경우도 있다. 설탕과 밀가루 등 식품으로 많이 알려진 첫 회사를 다닐 때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회사를 다닌다는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을 뿐, 그게 다른 고민을 덮을 만큼 크지 않았다. 지금처럼 데이터 분석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애매하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사들이 디지털 마케팅 비용을 허투루 쓰지 않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컨설팅하는 일을 하는데, 데이터라 그런지 뭔가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고객사들이 비용을 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정도의 보람은 있다.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직 시장에 노크할 때다. 현재 회사에 오기 전에 글로벌 회사의 한국 법인 디지털 임원 포지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의 주요 제품이 다름 아닌 보톡스, 필러, 가슴성형 보형물이었다. 디지털 임원 포지션의 특성상 성형 분야에 전문성이 없어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난 결국 지원하지 않았다. 당시 어떻게 제안을 거절했는지 찾아보니 '평소 관심을 갖던 제품군이 아니어서 이번 건은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라고 회신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해당 산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불편함의 원인을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우선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산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비슷한 것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이라는 이질감과 비슷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결이 맞고 이루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을 위한 포지션이라 생각했다.


이런 거부감과 이질감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담배회사에서는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를 통해 내가 고생하는 것이 위로를 받기 어렵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해묵은 고민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꼰대처럼 비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에 대한 고민은 신입사원 때부터 시작된 해묵은 고민이다.


첫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장수 기업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장수 회사가 벗어날 수 없는 이슈가 있다. 바로 친일 행적에 관한 이슈다. 식민지 시절 회사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친일 행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드러난 부분도 있었다.


입사하고 나서 이 사실을 알았다. 하필 나는 홍보팀에서 언론담당 업무를 했는데, 이런 이슈들이 공론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회사의 논리는 간단했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 스스로에게 '친일 논란이 있는 회사인걸 알았다면 지원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 지원하지 않았을 거야'일 것이다. 아직도 내 동기들이 회사에 남아 있고, 좋아하는 선배들은 팀장, 임원이 되었는데 내가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최우선 가치의 다름


직장과 할 일을 정하는 데에서는 서로가 다른 최우선 순위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하나, 특정 직업에 소명을 둔 경우로 예를 들면 경찰관, 소방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둘, 특정 직무에 최우선 순위를 둔 경우로 데이터 전문가, 컨설턴트, 영업 등 원하는 직무만 할 수 있다면 산업군이나 회사는 덜 중요한 사람이다.

셋,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에 최우선 순위를 둔 경우로 직무와 상관없이 해당 분야의 최고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다. 예를 들면 어려서부터 아이폰에 열광했던 사람이 애플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경우이다.

넷, 취직 자체가 최우선인 경우이다. 앞의 세 개와 결이 다르지만 생각보다 취직이 최우선인 경우인 사람이 많다.

소방관과 같은 소명이 있는 직업의 경우 이슈의 여지가 없다

이런 최우선 가치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도 우선순위가 개개인마다 다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다양한 산업의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하면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담배회사를 예로 들었지만 이와 비슷한 이슈가 있는 산업이나 회사들은 많다. 사실 여러 경로로 검색했지만 담배회사 현직에 있는 분들이 말하는 '담배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은?'에 관한 허심탄회한 글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고민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그런 고민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하나


담배회사 말고도 이슈가 될 수 있는 회사는 많다. 그래도 담배회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앞서 걸어가며 담배 피우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심지어 어린 자녀들도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분노하는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남들에게 피해를 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담배회사 직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리고 기호식품으로 분류되는 담배를 생산해서 파는 것, 그리고 기호에 맞게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다.


그래서 이 질문이 궁금해진 것이다.

"담배회사 직원들은 자녀들에게 담배가 안 좋다고 말하나요?"


오지랖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나, 직장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문제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걸까?


직업 선택의 자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나는 이것이 사람의 생명이 동일하게 귀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각자의 직업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 선택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고민했던 이슈들을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나의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나만 이런 걸 고민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건가?' 지금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직업 선택은 자유라는 것이 우문현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고민과 현상들이 직장인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의 숙명과 부러움


이런 모든 고민과 현상이 직장인의 숙명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지고 재고할 것 없이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하고, 필요한 물질을 벌어야 하고,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 역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처럼, 대부분 각자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이 복잡한 세상을 덜 복잡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일 때가 있다.


고민이 길어지면서 작년과 올해 주변에서 창업한 지인들이 부럽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본인이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꿈, 전하고 싶은 가치를 위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굳이 회사와 자신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서두에서 회사가 만드는 가치와 나의 가치가 상관있을 지에 대해 물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질문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가치는 회사가 만드는 가치에 영향을 받을 성격의 것이 아닐 것이다. 회사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에 큰 관심 없듯이, 개인의 가치도 회사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고민이 일반적인 것인지 유별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해결되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아갈 때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이슈이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유행어 한마디가 떠올랐다.


"소는 누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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