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k Nov 13. 2020

죄송하지만 당신의 피드백은 사양합니다

색맹이 색을 평가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에 지원한 적이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와 팀을 한창 꾸리던 때였다. 어느 회사든 지원할 때면 그 회사의 문화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는데, 넷플릭스는 정말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가차 없이 피드백을 주고, 강도 높고 어색한 실시간 360도 평가’를 하는 문화였다. 넷플릭스는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 피드백을 자주, 솔직하고, 엄격하게 주고 있다. 이를 알고 입사하는 사람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둘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피드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피드백이 항상 긍정적인 내용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피드백을 준다'라고 했을 때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피드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피드백과 성장에 대한 환상이 깨지다


경력 차이가 거의 없는 두 직원 A와 B가 있다. A는 피드백을 거의 요청하지 않는 타입. 가끔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을 때만 요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반면 B는 수시로 피드백을 요청하는 타입.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려는 것처럼 잊을 만하면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났을 때, 피드백 없이 일한 A의 역량이 여러 방면에서 월등히 성장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피드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면서 예전에 읽었던 아티클이 떠올랐다. 바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읽었던 <피드백에 멍들다>라는 제목의 아티클이었다. 이 아티클을 처음 읽었을 때는 현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드백 없이 성장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면서 피드백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고 아티클을 다시 들춰봤다. 아티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바로 피드백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피드백은 자기중심적이다


피드백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평가'가 아닐까? 내 경우도 15년 직장 생활했으니 그 햇수만큼의 연말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평가가 좋았는지 나빴는지와는 별개로 그 많은 연말 평가에서 들은 피드백 중에 도움이 됐던 피드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피드백을 들었을 때의 내 감정만이 기억난다. 


'아니, 그건 팀장님 생각이고요. 제가 준비한 자료를 좀 보고 얘기하시라고요.'

'그렇게 임의로 평가할 거면, 대체 목표는 왜 정한 거죠?'


팀장님의 평가는 늘 내 기대와 달랐다. 내가 A등급을 기대하면 B등급을 주고, B등급을 기대하면 A등급을 주는 식이었다. 내 등급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어느 해는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이 생겨서 회사 일에 100% 집중하기 힘들었다. 나는 당연히 B등급을 예상했고 셀프 평가 역시 B등급으로 했다. 그런데 팀장님은 뜬금없이 A등급을 줬다. 기분은 좋았지만 평가 면담에서 팀장님이 내가 건넨 피드백은 실망이었다. 


"마크, 전사 전략 항목은 무난하게 잘했어. 올해 회사 실적도 좋아서 좋은 등급을 줄 수 있을 거 같아."


그해 전략 매니저로서 그 항목에 대한 나의 노력은 솔직히 충분하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 몇 배 더 잘할 수 있었다. B등급을 줘도 좋으니 나는 팀장님이 아래와 같은 피드백을 주길 바랐다. 


'마크, 전사 전략에서 마크의 역할은 수립, 트래킹, 리포팅 이렇게 세 가지잖아. 우선 칭찬하고 싶은 것은 한눈에 보기 힘들었던 기존의 트래킹 시스템을 대시보드로 만든 거야. 미진한 항목이 바로 빨간불이 들어오니 후속 조치가 바로 이뤄질 수 있었고. 이 부분은 앞으로도 다른 업무에도 적용해보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지난번에 의견 준 것처럼 아직도 직원들이 우리의 전략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 글로벌 전략, 국내 전략, 부서 전략이 서로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를 모르다 보니 관심 자체가 떨어지는 거지. 올해는 전체를 대상으로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내년엔 마크의 장점인 네트워킹을 잘 활용하면 좋겠어.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본인이 고민해봐야겠지만 많은 사람들 대상으로 하기보다 소규모 그룹으로 접근하면 좋지 않을까? 내년에는 한번 고민해보라고.'


피드백은 받는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병원에 입원해본 사람은 병실에 붙어 있는 '고통의 정도'를 읽어 봤을 것이다. 1에서 10점 척도로 10점이 가장 극심한 고통이다. 주사 맞을 때 고통이 3, 산통은 8 정도라고 한다. 자, 그렇다면 의사가 '지금 고통의 정도가 몇 점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환자가 '5점'이라고 답하면 의사는 어떻게 처방할까? 의사는 환자가 말한 '5점'에 맞는 치료법으로 처방할 것이다. 의사는 단지 환자 본인이 고통을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수치가 낮을수록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판단한다. 고통의 정도에 대한 평가는 의사가 아닌 환자가 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반영해 치료하듯 직장에서 피드백을 줄 때도 받는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색맹이 주는 피드백이 될 수 있다. 색맹인 사람이 석양의 빨간 정도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피드백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빨간 정도' 자체를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보팀 시절 언론담당이었던 내 평가 지표는 언론 보도와 기획 기사 건수, 보도된 자료의 가치 등이었다. 워낙 회사 관련 보도가 적었던 시절이었다. 언론 보도는 회사 안에 홍보할 거리를 부지런히 찾아서 알리는 것이 관건이었고, 기획 기사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특정 매체와 접촉해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보도된 자료의 가치는 매체력이 강한 언론에 회사 기사가 실리도록 노력해야 했다. 


연말 평가 시즌이 다가왔고 그 해의 보도 현황에 대해 정리해서 평가 자료를 준비했다. 성과는 꽤 괜찮았다. 언론 보도 건수는 무려 500% 증가했고, 기획기사는 S전자와 나란히 실리기까지 했다. 당연히 매체력이 좋은 언론에 많이 보도됐기 때문에 가치도 높았다. 


팀장님의 피드백이 어땠을까?


"언론 보도가 500% 증가한 것은 본인 노력보다는 신제품 출시 등 회사에 홍보할 거리가 많았던 영향이 컸고, 기획 기사 건수가 늘어난 것은 만족하지만 본인이 노력한 결과인지는 의문이고, 영향력이 강한 매체에 보도됐는지 여부로 그 가치를 평가하는 논리를 위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테니 다른 논리를 찾아봐요."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피드백에 익숙할지는 모르겠다. 식품기획팀장 출신이었던 팀장님은 당시로서는 엄밀하게 말해 언론홍보에 대해서는 색맹이었다. 피드백을 들여다보면 내가 한 해 동안 이룬 것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하나도 없고, 자기 생각만 가득했다. 이런 피드백은 자주 듣는다고 해서 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자기중심적인 피드백은 단지 자신의 감정, 경험만을 공유할 뿐이다. 


피드백으로 남을 성장시키겠다는 환상을 버려라


후배들에게 멘토링 해주는 것을 즐겨하는 내 경우를 봐도 피드백을 줄 때 마음속으로는 상대가 내 피드백을 듣고 정말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많은 경우 피드백은 상대를 탁월하게 하지 못했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마치 텅 빈 배에 연료를 채우는 것처럼 본인의 피드백이 듣는 사람의 역량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단점이나 실패를 중심으로 피드백을 할 경우 피드백을 받는 사람을 탁월하게 할 수 없다. 사람은 각자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야에서 더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단점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학습효과를 떨어뜨린다. 참고로 아티클에서는 탁월함이 실패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패를 공부한다고 탁월함에 이르는 방법을 알진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즐거움이 커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논리다. 오히려 탁월함과 실패는 공통점이 많다. 무능력한 리더는 자존심이 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뛰어난 리더는 자존심이 세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매우 유능한 리더들의 성격검사를 해보면, 그들 또한 자존심이 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심을 버려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오류 투성이의 피드백을 너무나 자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피드백이 효과적일까?


결과에 주목하고 잠시 멈춰 칭찬하자


정말 단순한 피드백이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피드백이 있다. 외국계 기업을 다닐 때, 자리가 마침 직속 임원실 바로 앞이었다. 하루는 임원이 임원실 문을 열어두고 직원과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무: 좋아. 그런데, 이 부분은 확인해봤어? 
직원: 아니요, 그 부분은 추가 자료가 필요합니다. 

상무: 자료 갖고 있나?

직원: 확인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마침 임원이 직원과 얘기하고 있는 그 자료를 내가 갖고 있었다. 나는 바로 자료를 임원에게 보냈다. 그리고 임원실을 노크하고는 '상무님, 말씀하시는 자료 보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임원은 환하게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마크 좀 보고 배워라."


정말 짧은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이 피드백은 내가 지금까지도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제공하게 하는 습관을 갖게 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직원이 크든 작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때 "그래, 그거지"라고 말하고, 잘한 부분에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효과적인 피드백 방법 중 하나이다. 


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피드백을 주기보다 직원이 내가 조언한 방식대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 '바로 그거야,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직원은 인사이트를 얻고, 성공했던 패턴을 자기 것을 만들어 성장한다. 이렇게 잘한 부분만 언급하는 것으로 직원은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데 이것이 진정한 학습이다.


어느 날 팀원의 탁월한 성과가 당신의 관심을 끌었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전해보자. 그 팀원에게 어떤 잠재력을 발견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해 주는 것만큼 피드백을 듣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는 것도 없다. 거기에 구체적인 예까지 덧붙인다면 더욱더 강력한 피드백이 된다.


현재, 과거, 미래 순으로 피드백을 주자


이제 곧 연말 평가 시즌이다. 팀원이 당신을 찾아와 업무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묻고, 조언을 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티클에서 주는 팁을 활용해 다음과 같이 해보면 어떨까? 


대화는 현재 상황부터 시작하자. 팀원이 당신을 찾았다는 것은 현재 직면한 문제가 있다는 뜻.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바로 해결해주기보다는 먼저 팀원에게 현재 잘되고 있는 부분 세 가지를 물어보자. 물론 세 가지가 직면한 문제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대신 잘하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면 팀원은 해당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게 된다. 직면한 문제와 달리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팀원의 자세가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뀐다. 


자,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보자. "과거에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했더니 잘 해결이 되었나요?”라고 물어보자. 업무에는 패턴이 있어서 똑같은 문제를 여러 번 직면하게 되는데, 이번 문제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경험에 대해 대화하면서 연결고리를 찾아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로 질문의 방향을 돌리자. 팀원에게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죠?”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서 생각을 구체화하도록 돕는 것도 좋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를 바라나요?”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죠?” 같은 질문들을 한다면 팀원은 구체적인 솔루션이 떠오르고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에 맞춰 일을 처리할 것이다.   




피드백은 필요하다. 대신 피드백이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올바른 해결방법을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그래서 많은 경우 피드백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색맹에 가까운 사람이 현 상황을 진단하고,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에 자신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 경험을 공유하고, 느낌을 말하고, 잘하는 부분에 대해 말해 주게 되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소식 #1. 10월까지 썼던 글 중에 23개를 발췌해 매거진과 같은 이름의 브런치 북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발간했습니다. 발간을 하고 보니 부족한 부분이 너무 잘 보여서 부끄러운 마음에 최근 글이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ompanyplaylist 


소식 #2. 제 글은 공식적으로는 웹진 ㅍㅍㅅㅅ와 일부 뉴스레터에서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가끔씩 조회수가 많은 날 경로를 검색해보면 저도 모르는 곳에서 제 글을 발행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괜찮으니 마음껏 퍼가셔도 좋다는 말씀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BTS와 빅히트에게서 전략을 배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