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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Jan 26. 2021

떠난다 했을 때 모두가 아쉬워하는 존재로 살았다

"그래도 자기가 떠난다고 하니 다들 아쉬워하네."


주말 늦은 오후 산책하던 아내가 말했다. 그랬다. 두 달 후면 나는 인생의 2막을 먼 곳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현재의 직장뿐 아니라 활동 중인 모든 커뮤니티를 떠나야 한다. 사랑하는 부모님, 큰 힘이 되어준 지인들, 가족처럼 지냈던 교회 식구들과도 기약 없는 이별을 할 것이다. 주위에 이 소식을 알리고 있는 요즘, 내 마음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 감사하다. 떠난다 했을 때 모두가 아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면서도 모두들 진심으로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고 심지어 붙잡는 이들도 있다.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또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마크, 그냥 안 가면 안돼요?"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렸을 때 선배 임원이 나에게 처음 했던 말이다. 말투에서 그냥 허투루 뱉은 말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계획했고, 코로나로 인해서 늦춰졌던 일정이라 지금 가지 못하면 모든 것이 꼬이게 돼요."


이미 코로나로 인해서 반년 이상 미뤄진 계획이어서 더 이상 늦춰질 경우 많은 것들이 애매해질 수 있었다. 내 경력을 고려했을 때도 어차피 가야 하는 거라면 하루라도 먼저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선배도 이를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혹시 경력 문제라면 글로벌 본사와 얘기해서 최대한 도와줄 테니 남으면 안 되냐고 재차 물었다.


"가기로 했으니 일단 갔다 오겠습니다."


난 웃으면서 대답했고, 일단 가야겠다는 말에 선배는 아쉬워했다. 그래도 고마웠다. 선배는 내가 남겠다고 하면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줄 마음이었다. 물론 나는 그 마음만 받고 갈 길을 떠나야 한다.  


누군가 떠날 때 아쉬워하는 마음

선배 임원과의 대화 이후 내 머릿속에 오버랩이 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얼마 전 이직을 고민하던 팀원 중 하나가 대기업에 합격했다. 합격은 했으나 최종 수락 메일을 써야 했고 그전에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당장 아쉬워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대신 하루를 고민한 다음 팀원이 대기업으로 이직했을 때와 현재 직장에 계속 다닐 때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알려줬고, 종합해본 결과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원은 며칠이 지나 이직을 확정했다.


그때 일이 왜 오버랩되었을까? 나는 아끼는 팀원이 이직을 거의 확정하는 순간에도 아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선배 임원이 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한 것과 달리, 나는 떠나는 팀원에게 너무 이성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조언마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팀원이 나에게 진짜 듣고 싶었던 말은, 나에게 원했던 반응은 이성적인 조언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떠나보내더라도 그에게 나의 아쉬움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뒤늦은 장탄식을 내뱉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잘 보내주는 편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며 붙잡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늘 본인의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떠나는 당사자가 되어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껴보니 그동안 내가 조금은 모질게 사람들을 떠나보냈다는 자책 아닌 자책을 해본다. 이렇게 또 한 번 철이 들어가는가 싶다.


아쉬워하는 마음에 보답하는 나만의 방법

나는 여러 커뮤니티에서 파트너, 멘토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번 겨울까지만 활동할 예정이다. 커뮤니티의 리더들은 나의 새로운 도전을 축하해주는 동시에 '이제 진짜 가는 거네요'라며 아쉬움 가득한 말을 건넸다.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5년 가까이 활동한 곳들인 데다 내가 진행하는 세션을 거쳐간 사람만 해도 500명 가까이 된다. 그리고 그중에 많은 분들과 지금까지도 교류하고 있다. 사실 최근 5년을 돌아보면 직장보다는 이런 커뮤니티를 통해서 많은 인사이트와 성장의 기쁨을 누렸기에 떠나는 나야말로 이렇게 좋은 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아쉬움이 커서일까?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세션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멀리 떨어져서도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전용 세션을 기획하고 있다. 이렇듯 아쉬움이 크면 간절함도 커져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속한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 경험을 살려 교회에서도 기획하는 일과 초등부 교사를 맡아서 해왔다. 교회도 직장이나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기획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사람들을 모으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그러했다. 기획하는 사람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보니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로 인한 상처에 아파하기도 했다. 교회 직분은 온전히 무보수 봉사직인데 가끔은 내가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속한 곳에서 묵묵히 내 장점을 살려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살고자 했다.


"마크가 없으면 여러 면에서 추진력이 떨어질 거 같아요. 마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많이 차이가 날 거 같거든요."


7년 동안 맡았던 초등부 선생 역할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 후배 선생님이 건넨 한마디에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난 7년간 내가 오히려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함께 놀면서 배울 수 있었고 행복한 기억들이 가득했다. 새로운 곳에서도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곳에서 또다시 묵묵히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할 것이다. 당장에 기회가 없으면 아이들 운동 교실을 만들어서라도 해볼 생각이다.


잊혀지겠지만 잊혀지지 않기  


물론 내가 없어도 회사도, 커뮤니티도, 교회도 잘 돌아갈 것이다. 내가 했던 역할은 어느 한 사람이 담당하거나 여러 사람이 나눠 맡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내가 속한 곳에서 중요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주위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나간다고 흔들릴 정도의 조직이면 망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 조직 생활이 그랬다. 회사든 커뮤니티든 어느 조직이든 존재감이 있는 누군가가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다. 하지만 언제나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조직이든 조직의 구성원이든 절박한 상황이 되면 이를 극복하고자 재빨리 움직였고 얼마 가지 않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조직이 굴러갔다.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 떠난다고 해서 받을 영향은 적을 것이다. 나 역시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주위 사람들이 이 순간만큼은 내가 떠난다 했을 때 아쉬워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다. 바로 새로운 곳에서도 변함없이 내가 속한 곳에서 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나와 조직 모두가 윈윈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나는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잊혀지겠지만 또 몇몇 사람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존재로 남고 싶다.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


신기한 것은 나는 인생을 묵묵히 걸었을 뿐인데 사회생활 초기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만 15년을 넘기고서야 느낀다는 것이다. 두 번의 이직을 했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봤었고, 도시를 바꿔 살기도 했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나의 빈자리를 아쉬워해주는 것은 솔직히 처음이다.


'왜 그럴까?' 고민했다. 답은 '누적된 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과의 소통이, 사귐이, 교류가 쌓이면서 나를 둘러싼 분들에게 나의 진심이 전달되기까지는 '누적된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까지는 나 역시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고, 내 주위 사람들도 '마크'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참으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인생을 걸어온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훨씬 길다. 인생의 1막에서 깨달은 것들을 인생의 2막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아쉬워하는 마음을 전달하자. 아쉬워하는 마음만큼 떠나는 이에게 큰 선물은 없다. 나 역시 이렇게 큰 선물을 받은 것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2막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비록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도전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떠난다 했을 때 아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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